추사 김정희부터 현대 예술에 이르기까지, 벨기에에서 만나는 한국화의 과거와 현재
- 주벨기에유럽연합한국문화원 전시회 '다시 그린 세계 2026: 순수와 혼종' -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Bruxelles)에서 겸재(謙齋) 정선과 추사(秋史) 김정희 등 조선 후기 거장들의 작품부터 전통 회화의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까지, 한국화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이 벨기에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주벨기에유럽연합한국문화원(원장 안세희)과 일민미술관(관장 김태령)이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회 '다시 그린 세계 2026: 순수와 혼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이 후원하는 '2026 투어링 케이-아츠(Touring K-Arts)'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한국화 작품 46점을 벨기에에 처음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9월 17일부터 11월 13일까지 주벨기에유럽연합한국문화원에서 열리고 있다.




< '다시 그린 세계 2026: 순수와 혼종' 전시회 현장 – 출처: 통신원 촬영 >
전시장에서는 진경산수화의 개척자 겸재 정선의 '숙몽정'을 비롯해 표암(豹菴) 강세황의 '표옹선생서화첩', 추사 김정희의 '사시묵죽도사폭병', 원교(圓嶠) 이광사의 서체 등 조선 후기 문인들의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과 절제된 붓놀림, 글씨와 그림에 담긴 선비들의 정신은 한국 전통 회화가 지닌 미학적인 깊이를 보여준다. 전시의 또 다른 축은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예술 철학으로 새롭게 풀어낸 현대 작가들의 작품 37점이다. 송지인의 '첫 번째 창', 최수련의 '장엄연습', 최해리의 '지금 장미와 백합이 시들어버렸었네', 황규민의 '모임방 회화-런던 용' 등이 대표적이다.
일민미술관에 의하면 "이 현대 작가들은 전통과 현대 사이의 공백을 정직하게 직면하다. 이들의 작업에는 전통의 원리를 충실히 따르는 순간과 그 원리가 다른 시대와 문화의 양식에 부딪혀 도약하는 순간이 공존한다"면서, "'순수와 혼종'은 전통 예술과 동시대 한국화를 나누는 경계가 아니라 '전통'이 특정한 문화 체계로서 변천해 온 고유한 구조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고전 작품과 현대 작품을 한 공간에 나란히 배치한 전시 구성은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며, 전통은 과거에 머무는 유산이 아니라 현대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재해석하는 창작의 기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해당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주벨기에유럽연합한국문화원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한 관람객은 "한국의 전통인 만큼 아름답다, 아름답지 않다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 국가의 유산인 것이다"고 말했다. 이는 작품을 개인적인 취향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축적된 유산으로 이해한다는 의미이며, 예술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과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구분하는 시선도 드러난다. 또 다른 관람객은 "어떤 작품이 오래전 작품이고 어떤 작품이 현대에 그려진 작품인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보관이 잘 되어지고 전통 유지가 잘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감상을 전했다.
한편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관람객도 있었으며, 그는 "한국 전통 드라마에서 보는 작품들을 실제로 보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반응은 한국 문화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케이팝과 한국드라마를 넘어 전통 예술과 미술 분야로 넓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중문화가 한국을 처음 접하는 통로라면, 미술 전시는 그 문화가 형성된 역사와 미학을 보다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또 다른 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화 전시가 벨기에에서 열린다는 사실은 한국 작품을 단순히 해외에 선보인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유럽의 관람객에게 한국의 전통 예술을 직접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한국 미술을 서양미술과 구별되는 낯선 전통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동시대 예술의 일부로 이해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전시회 '다시 그린 세계 2026: 순수와 혼종'은 조선의 붓끝에서 출발해 오늘날의 예술적인 실험으로 이어지는 한국화의 여정을 통해, 전통과 현대가 서로를 비추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화가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과 변화의 가능성을 벨기에에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을 세계와 나누고, 서로 다른 문화가 예술을 통해 만나는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