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한류’로 진화
- 필리핀 최대 서점 중심에 자리 잡은 ‘서울의 이야기’ -

< 필리핀 최대 서점인 내셔널 북스토어 - 출처: 통신원 촬영 >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에 열광하던 필리핀 대중들 시선은 이제 한국 ‘활자’로 향하고 있다. 웹툰을 비롯하여 한국 문학 등 이른바 ‘케이 도서’가 필리핀에 진출한 가운데, 주필리핀 한국문화원과 필리핀 최대 서점 체인 내셔널 북스토어(National Book Store)가 함께하는 기념비적인 협력 사업이 그 결실을 맺었다. 2026년 9월 1일, 마닐라(Manila)의 핵심 상권인 에스엠 몰 오브 아시아(SM Mall of Asia) 내셔널 북스토어 슈퍼브랜치에 한국 도서 특화 공간 ‘서울의 이야기(Seoulful Stories)’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양측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도서 유통을 넘어, 한국 문화가 필리핀 일상 공간 속으로 한 발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기존 필리핀 서점가에서 한국 도서들은 아시아 문학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에 조성된 ‘서울의 이야기’는 내셔널 북스토어 매장 내에 독립된 한국 도서 전용 공간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할 수 있다. 이는 필리핀 내 한류 콘텐츠가 기존 시청각 중심 대중문화에서 문학과 철학 등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내셔널 북스토어에 마련된 ‘서울의 이야기’에는 영어로 번역된 다양한 한국 도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최근 여러 나라 출판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한국 소설을 필두로, 탄탄한 현지 독자층이 있는 웹툰 및 자기계발서 등이 비치되어 있다.

< 한국 도서 특화 공간인 ‘서울의 이야기’ - 출처: 통신원 촬영 >
‘서울의 이야기’ 공간은 한국적인 느낌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1년 내내 여름인 필리핀 마닐라, 그것도 거대한 규모와 현대적인 실내장식을 자랑하는 에스엠 몰 오브 아시아 내 서점 사이에서 빛나는 청사초롱은 단연 돋보인다. 전통 한옥의 창호 문양을 세련되게 재해석한 격자무늬 목재 구조물과 은은한 조명은 지나가는 쇼핑객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번화하고 현대적인 쇼핑몰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이 고즈넉한 한국적인 공간은 현지인들 발길을 자연스럽게 한국 문학의 세계로 이끄는 매력적인 초대장이 되고 있다. 시각적 호기심에 이끌려 공간으로 들어선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는 것은 영어로 번역된 다양한 한국 도서들이다.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Cursed Bunny)』,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Love in the Big City)』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 문학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자리를 통해 드라마와 음악을 향한 관심이 한국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지 독자들의 관심은 한국의 현대 대중문화를 넘어 전통과 역사로까지 뻗어 있다. 제임스 에이치. 모리스(James H. Morris)의 『초자연적인 한국: 도깨비, 용, 악마 그 외에 관한 마술적 이야기들(Supernatural Korea: Magical Tales of Goblins, Dragons, Demons and More)』라는 책이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 그 예다. 도깨비, 용, 귀신 등 한국 내 전설과 설화를 영문으로 소개하는 이 책은, 최근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한국 문화에 매료된 필리핀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적인 한국 대중문화를 넘어, 한국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한 필리핀 사람들의 호기심이 얼마나 뜨거운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 (좌) 한국 전설과 설화를 소개하는 제임스 에이치. 모리스 저작 / (우) ‘저주토끼’, ‘대도시의 사랑법’ 등 인기 한국 서적 - 출처: 통신원 촬영 >
실제 평일 한산한 시간대임에도 ‘서울의 이야기’ 구역에서 발걸음을 멈춘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서점을 찾은 대학생 마리아(Maria) 씨는 “기사와 함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서 청사초롱 사진을 보고 궁금해서 와봤다. 평소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으며, 한국 소설과 설화들을 직접 찾아 읽으며 드라마 속 문화와 정서를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매장 직원 마크(Mark) 씨 역시 “해당 공간이 문을 열면서 ‘서울의 이야기’에서 사진을 찍고 책을 넘겨보는 고객들이 늘었다”며 “평일에도 특정 한국 작가의 책이나 한국어 학습 교재가 어디 있는지 묻는 질문을 꾸준히 받고 있다”라며 활기찬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처럼 현장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낸 ‘서울의 이야기’는 주필리핀 한국문화원과 내셔널 북스토어 간의 탄탄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장기적인 협력에 따른 결과물이다. 9월 1일 개관식 현장에서는 양 기관의 업무협약 체결식이 함께 진행되기도 했다. 이는 단발성 팝업스토어나 일회성 전시가 아닌, 현지 서점 유통망에 한국 문학이 장기적으로 들어설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하고 이를 확산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내셔널 북스토어의 아드리안 라모스(Adrian S. Ramos) 최고경영자(CEO)는 “내셔널 북스토어를 단순한 소매 공간을 넘어 사람들이 머물고 교류할 수 있는 ‘제3의 공간’이자 활기찬 문화 거점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서점이 온라인 상거래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는 시점에, 매력적인 한국 문학을 자사 핵심 전략으로 내세운 것이다.
주필리핀 한국문화원 김명진 원장 역시 “도서를 매개로 한국과 필리핀 간 문화교류를 확대하는 데 내셔널 북스토어와의 협력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양국의 상호 이해 증진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번 협약에 따라 ‘서울의 이야기’는 이달 중 개관하는 페스티벌 몰(Festival Mall) 슈퍼브랜치를 비롯해 2027년까지 필리핀 전역의 주요 지점으로 순차 확대될 예정이다.
이러한 공간 구축과 함께 한국 작가와 필리핀 독자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기회 확대는 한국 문학에 대한 인기를 드러내는 좋은 사례이다. 양 기관은 이미 지난 수년간 한국 작가 초청 행사를 공동 기획하며 현지 독자들의 갈증을 해소해 왔다. 2024년 『대도시의 사랑법』의 박상영 작가, 2025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황보름 작가 초청 행사는 뜨거운 현지 반응 속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지며 한국 문학의 잠재력을 입증한 바 있다. 이러한 열기를 이어받아, 올해는 『불편한 편의점』의 김호연 작가가 마닐라를 다녀갔다. 김호연 작가는 2026년 9월 12일 파사이시티(Pasay City) 에스엠엑스(SMX)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되는 제45회 마닐라국제도서전(Manila International Book Fair)에 참석하여 작가와의 대화 및 사인회를 통해 필리핀 독자들과 함께했다.
필리핀 최대 서점에 둥지를 튼 ‘서울의 이야기’는 한국에 대한 인기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필리핀 대중의 일상과 지적 영역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유통망 확장, 매력적인 실제 공간 경험, 그리고 작가와의 직접적인 교감이라는 삼박자가 어우러진 이러한 기획을 통해, 필리핀 내 ‘읽는 한류’의 토양은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더 많은 필리핀 독자들이 ‘서울의 이야기’를 통해 다채로운 한국의 서사를 만나고, 양국 간의 문화적 공감대가 더욱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인터락션(Interaksyon)≫ (2026. 09. 01). 'Seoulful Stories' opens new avenue for Filipino readers to discover Korean literature,
https://interaksyon.philstar.com/trends-spotlights/2026/09/01/318552/seoulful-stories-opens-new-avenue-for-filipino-readers-to-discover-korean-literature/
- ≪인터락션(Interaksyon)≫ (2026. 09. 11). Here's how to meet 'The Second Chance Convenience Store' author Kim Ho-yeon at MIBF 2026,
https://interaksyon.philstar.com/hobbies-interests/2026/09/11/319079/heres-how-to-meet-the-second-chance-convenience-store-author-kim-ho-yeon-at-mibf-2026/
- 주필리핀 한국문화원 공식 웹사이트,
https://phil.korean-culture.org/ko/338/board/153/read/147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