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문화 평권 정책
- 향후 한국 문화 수출에 있어서도 시사점을 남기는 문화 평권 정책 –
대만 문화부가 문화정책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개념 가운데 하나는 ‘문화평권(文化平權)’이다. 대만 문화부가 2025년 11월 13일 개정한 문화부 문화평권 보급 보조사업 요점(文化部推廣文化平權補助作業要點)에 따르면, 문화평권 관련 정책은 대중의 평등한 문화 참여와 문화 접근권(文化近用權)을 보장하고 특정 신분, 성별, 심신 상태, 연령, 지역, 족군 등의 조건으로 인해 문화 참여에 차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화 향유는 의식주나 의료, 이동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필요와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간과되기 쉬운 영역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는 문화생활에 참여하고 문화를 향유하는 것 역시 기본적인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2009년 시에스시알(CESCR,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이 발표한 「일반논평 제21호(General Comment No. 21)」는 문화적 권리를 인권의 불가분한 일부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문화적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방해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점에서 장애인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문화 접근성을 구체적인 정책의 영역으로 다루고 있는 대만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대만에서는 문화 향유의 영역까지 접근성과 포용의 문제로 다루고 이를 문화정책과 실제 문화시설 운영에 반영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대만에서 소수자의 권리와 사회적 포용에 관한 논의가 문화와 여가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대만의 문화시설에서도 이러한 정책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3월 발표된 대만 학자 린충시(林崇熙)의 논문 「박물관의 성찰적 관점(博物館的反身式觀點)」은 대만 박물관이 문화평권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시행해 왔다는 점을 전제로, 기존의 접근방식만으로는 사회적 약자가 경험하는 ‘문화불리(文化不利)’를 충분히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박물관이 일방적으로 문화와 지식을 제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회집단이 문화 생산과 해석의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문화 접근성에서 중요한 것은 장애인이 문화시설에 단순히 ‘들어갈 수 있는가’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실제로 콘텐츠를 이해하고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가이다. 다시 말해 장애인을 특별한 상황에서 찾아오는 예외적인 관람객이 아니라 처음부터 문화시설과 문화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여러 관람객 가운데 하나로 상정하는 것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대만 사회의 이러한 문화 접근성에 대한 논의는 한류 콘텐츠의 해외 진출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시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올해 초 타이베이(Taipei)에서 열린 한국 가수의 콘서트에서 발생한 사건을 살펴볼 수 있다. 지난 1월 17일 타이베이 아레나에서 공연을 진행하던 한국 아티스트는 공연 도중 관객들에게 함께 춤을 추며 호응할 것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춤을 추지 않고 있던 한 관객을 발견하고 직접 “왜 춤을 추지 않느냐”는 취지로 말을 건넸다. 그러나 해당 관객은 청각장애인이었다. 아티스트의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관객들과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해당 관객에게 청각 장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아티스트는 공식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 사건에서 주목할 부분은 한 연예인의 실수 자체라기보다 문화콘텐츠의 생산자가 어떠한 사람을 자신의 관객으로 상정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다. ‘내 말을 들으면 관객이 함께 춤을 출 것’이라는 생각에는 공연장에 있는 관객이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전제가 존재한다. 음악을 듣고, 가수의 말을 이해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며 호응하는 것이 일반적인 공연 관람 방식이라는 전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화평권이 보급될수록 실제 공연장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공연을 경험하는 관객들이 존재하게 된다. 이는 장애인의 문화 향유를 특별하거나 예외적인 활동으로 상정하기보다 다양한 관객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동일한 문화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문화 접근성을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향후 한국 문화콘텐츠의 대만 진출 과정에서는 ‘누가 이 콘텐츠를 향유할 것인가’의 범위를 넓혀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공연의 실시간 자막과 수어통역, 음성해설, 이동 동선과 좌석 배치와 같은 기술적·제도적 접근성뿐 아니라 아티스트와 현장 운영 인력이 다양한 방식으로 공연을 경험하는 관객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 역시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어떤 콘텐츠를 수출할 것인가’와 함께 ‘누구나 그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가’ 역시 앞으로의 문화 수출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 랩퍼 제이민의 대만 공연 현장 - 출처: 통신원 촬영 >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 ≫ (2026.01.21). Rain apologises to fan with hearing loss after calling her out for not dancing at his concert,
https://www.straitstimes.com/life/entertainment/rain-apologises-to-fan-with-hearing-loss-after-calling-her-out-for-not-dancing-at-his-show
- 林崇熙 (2022). 「文化不利與文化不力:博物館的反身式觀點」,『科技博物』 26(1), pp. 5-28.
-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2009), General Comment No. 21: Right of everyone to take part in cultural life
- 文化部主管法規共用系統 (2013), 「文化部推廣文化平權補助作業要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