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의 시차를 둔 두 장면을 겹쳐 놓으면 한 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지난해 여름, 한중 여성 공상과학(SF) 작가들의 공동 앤솔러지 『다시, 몸으로』 (중국어판 제목 『身体,再来』)는 상하이도서전(上海书展)과 상하이문학주간(上海文学周)의 열기 속에서 ‘신간’으로 중국 독자와 처음 만났다. 그 무대를 마련한 것은 상하이역문출판사(上海译文出版社)와 미래사무관리국(未来事务管理局)이라는 중국의 출판·기획 주체였다. 그런데 1년이 지난 2026년 8월, 같은 책이 같은 도시에서 다시 독자를 만났다. 이번에 무대를 편 곳은 주상하이 한국문화원(驻上海韩国文化院)이었다.
화제성이 정점에서 내려올 무렵, 같은 책이 이번에는 다른 성격의 주최자와 함께 돌아온 것이다. 지난해 이 지면에서 다룬 상하이 도서전 행사가 ‘한중 합작 출판, 여성 작가, 공상과학(Science Fiction)’이라는 세 키워드로 이 책의 출발을 기록했다면, 이번 글은 같은 책이 1년 뒤 중국 현지에서 어떻게 다시 호명되고 수용되는가에 주목한다. 이 재회는 두 가지 흐름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주최 구조가 중국 출판사 주최에서 ‘한국 정부 기관 주최로 옮겨 간 사실은 한국문학이 중국에 전파되는 통로가 하나가 아님을 보여준다. 둘째, 같은 책, 같은 주제로 1년 만에 작가 초청 독자교류회가 다시 성사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현지 수용이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음을 시사한다. 작품에 대한 창작관과 여성 창작 담론은 이미 일전에 짚어낸 바 있으므로 주로 이 두 흐름이 그리는 지형에 초점을 두어 현장을 취재했다.

< 주상하이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한중 청년 작가의 밤’ 포스터 - 출처 : 주상하이 한국문화원 제공 >
지난해 이 책이 중국 독자와 처음 만난 자리는 2025 상하이 국제 도서전에 연계된 신간 소개 활동에서였고, 당시 이 책은 도서전 현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팬들에게 사랑받았다. 올해 8월 13일과 14일 이틀에 걸쳐 두 차례 열린 이번 교류의 밤은 한국 공공기관인 주상하이한국문화원이 마련한 무료, 비영리 행사였다. 문화원 관계자는 이 자리를 두고 “문학과 공연예술을 결합한 프로그램으로 현지 독자의 관심을 높이고, 한중 청년 작가와 독자가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주체가 바뀌자 행사의 무게중심도 출간 홍보에서 창작과 대화로 옮겨 갔다.
두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한국문학(특히 공상과학)이 중국에 스며드는 통로가 최소한 두 갈래로 작동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하나는 중국의 출판사·기획사와 팬덤, 소셜미디어와 평점 사이트 더우반(豆瓣)이 주도하는 ‘시장 경로’다. 미래사무관리국과 상하이역문출판사의 기획, 출간, 더우반(豆瓣)과 위챗독서(微信读书)에 축적되는 독자 반응, 상하이도서관 등에서 이어진 관련 강연이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한국 공공기관이 이끄는 쌍방향 교류가 돋보인 공공 외교 경로일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쌍방향 교류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 장치는 한국 문학을 무대로 옮기는 실험이었다. 작가 대담에 앞서 참석 작가 세 명의 수록작을 한국 공연팀이 낭독극으로 먼저 선보였고, 이어 작가 대담과 독자 질의응답, 사인회가 이어졌다. 이 낭독 공연에는 극단 대표이자 연출가인 오세혁을 비롯한 작가, 연출, 배우진이 한국에서 함께 참여했다. 문학 텍스트(Text)가 번역되어 소개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텍스트를 무대화하는 한국의 공연예술 역량까지 동반해 상하이로 건너간 셈이다. 이튿날 현장에 참가한 중국 독자는 한국어를 몰라도 배우들의 대사에 몰입해 “책 속 인물들이 걸어 나온 것 같았다”고 소감을 남겼고, 문화원의 소박한 무대에서도 음악과 조명, 연기가 빼어났다며 한국에 뛰어난 뮤지컬이 많은 까닭을 알겠다고 덧붙였다. 활자로만 유통되던 이야기가 목소리와 몸짓이라는 형식으로 한 번 더 풀리면서 문학의 문턱이 낮아졌고, 이는 단순한 도서 홍보와는 결이 다른 융합형 교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무리 발언에서 문화원 측은 “문화원의 역할은 일방적 소개가 아니라 쌍방향 교류에 있다”며 이번 자리를 “문학과 공연을 융합해 본 실험”으로 규정하면서 이번 한중 문학의 교류 취지를 강조했다.

< 소설 ‘다시, 몸으로’의 낭독극 무대 막이 올랐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출판계에서 신간을 매개로 한 행사는 보통 출간 시점에 집중되고, 1년쯤 지나면 열기가 잦아든다. 그런 통례로 보면 『다시, 몸으로』의 출간 1년 뒤 같은 책, 같은 주제로 작가 초청 교류회를 다시 성사된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호일 수 있다. 이 앙코르(encore)는 여러 층위에서 읽힌다.
우선, 콘텐츠(Content)의 지속성과 확장성이다. 이 책은 일회성 신간에 머물지 않고 되풀이해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틀’로 기능하고 있다. 현장에서 천선란 작가는 원년 작가들이 그대로 모여 2탄을 내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고, 왕칸위 작가는 여러 나라 작가가 한 주제로 함께 쓰는 공동 창작 방식을 어렵겠지만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매체 전환의 여지도 넓다. 이번에 글이 낭독극으로 옮겨진 데 더해,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이 이미 한국에서 연극과 뮤지컬로 각색된 전례가 있는 만큼, 한국문학 콘텐츠가 현지에서 ‘번역서 판매’ 단계를 넘어 ‘다매체 재해석’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둘째, 독자층의 두께와 다양성이다. 행사 직후 중국 소셜미디어 샤오홍슈(小红书)에 참가자들이 남긴 후기들은 이 점을 생생히 전한다. 한 독자는 ‘책 읽는 사람이 줄고 문학이 밀려난다지만, 긴 사인 대기 줄에서 문자와 문학을 향한 젊은 독자들의 열기를 보았다’고 적었다. 대기 줄에서 만난 독자층도 예상보다 다양해서, 공상과학 애호가만이 아니라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의대생처럼 폭넓게 읽는 이들이 섞여 있었다고 전한다. 나아가 “현장 인원 100여 명 가운데 예약 인원은 50명뿐이고 나머지는 초청 좌석이어서, 정작 이 책을 아는 독자에게 더 열려야 한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비판적 목소리가 독자에게서 자발적으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수용 공동체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방증이다. 이튿날 후기에서는 그 성숙이 감상의 깊이로도 드러났다. 한 독자는 김초엽의 작품을 ‘체현된 인지(具身认知)’라는 틀로 해석하며, 거창한 기술 설정 없이 일상을 살짝 뒤집는 것만으로 가장 무거운 생존의 물음을 건드린다고 평했다. 감상을 넘어 개념적 독해로 나아가는 반응인 것이다.
셋째, ‘한녀문학(韩女文学)’이라는 수용 범주의 정착이다. 지난해 현지 대담이 ‘여성으로서 쓴다는 것’을 작가들의 목소리로 짚었다면, 올해 더 뚜렷해진 것은 독자 쪽에서 자리 잡은 소비 범주였다. 「다시, 몸으로」의 후기 게시물마다 ‘한녀문학’,‘한녀작가’ 같은 해시태그가 반복해 달렸고, 「다시, 몸으로」도 개별 작품의 기호를 넘어 하나의 한녀문학 읽기 장르로 소비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정작 이 범주가 지닌 비대칭성이 이튿날 대담에서 뚜렷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한 독자가 두 한국 작가에게 “한녀문학이 중국에서 인기인 것을 아느냐,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두 작가는 한국에서는 한녀문학이 그리 특별한 화제가 아니라고 답했다. 두 사람이 문단에 들어오기 전부터 한국에는 이미 여성 작가가 많았고 지금은 온갖 장르를 넘나드는 여성 작가들이 ‘백화제방(百花齐放)’을 이루고 있어 굳이 하나로 묶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왕칸위 작가는 한국 여성문학의 저력을 두고 “너무 강하다”고 표현했다. 요컨대 ‘한녀문학’은 한국 쪽의 자기규정이라기보다 중국 독자 쪽에서 형성된 수용 범주에 가깝다. 하나의 흐름으로 소비하려는 현지의 시선과, 그 범주화를 오히려 낯설어하는 창작자의 시선이 같은 자리에서 만난 셈이다.
넷째, 번역이라는 매개를 둘러싼 심화와 쟁점이다. 이번 교류에서 번역은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화제가 되었다. 번역가 춘희(春喜)가 더우반 독자평을 갈무리해 작가에게 전하며 작가와 독자 사이의 피드백이 순환하고 있다는 점, 나아가 한 중국 문예지 문학보(文学报)에 실린 번역가의 글은 한국 여성주의 문학의 번역에서 떠오르는 쟁점을 짚었다. 이를테면 원문의 ‘영웅(英雄)’을 정확히 옮길 것인가, 아니면 여성 독자의 기대에 부응해 ‘영자(英雌)’ 같은 표현을 택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이는 한국 여성 공상과학 소설이 중국에 자리 잡으면서 번역 층위에서 새롭게 대두하는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한편 천선란 작가가 한국 독자들이 왕칸위(王侃瑜) 등 중국 작가에게 관심을 갖고도 번역본이 없어 읽지 못하는 아쉬움을 언급한 대목은, 이 교류가 아직 한쪽으로 기운 비대칭 구조임을 드러낸다.
다만 성숙의 이면에는 성장통도 보인다. 현지 후기들은 한 시간에 걸친 통역가의 노고를 인정하면서도 한국 작가의 말을 누락하거나 오역이 있었다는 점을 소셜미디어에 공개적으로 한 지적은 동시에 이 교류의 장을 ‘진짜 독자의 자리’로 다듬어 가고자 하는 현지 독자들의 애정 어린 기대로도 읽힌다.

< 행사가 끝나고 세 작가의 사인회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왜 신작 홍보 없이 세 작가가 1년 전의 소설로 다시 뭉쳤는지 그 이유를 종합하면, 한 권의 책이 지닌 콘텐츠로서의 생명력과, 이를 반복해 소환할 만큼 두터워진 현지 수용 생태계, 그리고 교류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공공기관의 문화 전파 의도가 맞물린 결과다. 중국의 출판, 팬덤이 다져 온 시장 경로 위에 한국 공공기관이 문학과 공연을 결합한 교류의 장을 얹으면서, 같은 콘텐츠가 시차를 두고 반복과 재해석되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다. 작가들이 내비친 공동 창작 지속 의지와 현지 독자들의 성숙한 반응은 이 교류가 앞으로도 이어질 여지가 크다는 점을 말해 준다.
지난해 이 지면에서 ‘『다시, 몸으로』를 시작으로 한중 합작은 어떤 새로운 방향을 맞이하게 될까’라는 물음으로 글을 맺었다. 1년 뒤의 이 재회는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잠정적 답을 얻었다. 곧, 한 권의 책이 일회성 상품을 넘어 무대에서 공연으로, 더 두터워진 독자와 다시 만나며 한중 문학 교류의 지속적 매개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주상하이 한국문화원 제공
- 샤오홍슈(小红书) 웹사이트,
https://buly.kr/AwhvNFd
- ≪위챗(WeChat)≫ (2026. 07. 19). 读韩国科幻女作家金草叶新作:作为读者,作为译者,
https://mp.weixin.qq.com/s/7Qb8vUPwARuwUE-ul8em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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