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경기장이 아닌 도시에서 열린다"… 뉴욕이 보여준 월드컵 문화정책

< 뉴욕 록펠러센터에 설치된 월드컵 팬존 - 출처: 통신원 촬영 >
2026 북중미 월드컵이 오는 6월 11일부터 7월 19일까지 미국·캐나다·멕시코 3개국 16개 도시에서 열린다. 사상 처음으로 48개국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는 총 104경기가 펼쳐지는 역대 최대 규모의 월드컵이다. 개막전은 멕시코시티 에스타디오 아스테카에서, 결승전은 미국 뉴저지주 이스트러더퍼드의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은 행정구역상 뉴저지에 위치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은 경기장 자체보다 뉴욕 대도시권(New York Metropolitan Area)이다.
대부분의 월드컵 개최 도시는 '어떻게 더 많은 관중을 경기장으로 유치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뉴욕시는 다른 접근을 택했다. '어떻게 도시 전체를 월드컵의 무대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에 따라 뉴욕은 경기장 중심의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문화와 역사, 지역경제, 도시의 다양성을 연결하는 문화정책을 추진하며 월드컵을 도시 전역이 참여하는 축제로 확장하고 있다.
2026 월드컵, 뉴욕은 축구대회가 아닌 ‘도시 경험’을 설계했다.

< 월드컵 기간 발행된 여권 형태의 문화 패스 '뉴욕 동네 여권 여행(NYC Neighborhood Passport)' - 출처: 퀸즈 뮤지엄(Queen's Museum) >
대부분의 월드컵 개최 도시는 경기장 인근에 대규모 팬존(Fan Zone)을 조성하고 거리 응원 공간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방문객을 유치한다. 그러나 뉴욕시는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는 대신 도시 곳곳으로 분산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뉴욕 동네 여권 여행(NYC Neighborhood Passport)' 프로젝트다.
뉴욕시와 뉴욕시 관광청(NYC Tourism + Conventions)은 월드컵 기간 방문객들이 뉴욕의 다양한 지역을 직접 둘러볼 수 있도록 여권 형태의 문화 패스를 제작했다. 관광객들은 이 패스를 들고 맨해튼, 브루클린, 브롱크스, 퀸즈, 스태튼아일랜드 등 뉴욕 5개 자치구의 문화 시설과 미술관, 공연장, 도서관, 지역 상점 등을 방문하며 스탬프를 모을 수 있다.

< 월드컵 기간 동안 발행된 여권 형태의 문화 패스 '뉴욕 동네 여권 여행(NYC Neighborhood Passport)' - 출처: 뉴욕시 관광청 (NYC Tourism + Conventions) >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뉴욕의 유명 관광지만 소개하는 데 있지 않다. 타임스스퀘어와 자유의 여신상처럼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소는 물론, 한국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코리아타운과 인도계 커뮤니티가 형성된 리틀 인디아, 도미니카·콜롬비아·세네갈 등 다양한 이민 공동체가 자리한 지역까지 월드컵 방문 대상에 포함했다. 도시의 가장 큰 자산인 ‘다양성’을 월드컵이라는 글로벌 이벤트와 연결한 것이다.
특히 패스포트에 사용된 스탬프 디자인은 한국, 브라질, 멕시코, 인도, 베트남 등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뉴욕의 예술가들이 제작했다. 이를 통해 관광객들은 경기 관람에 그치지 않고 도시 곳곳을 둘러보며 다양한 문화와 지역 공동체를 함께 경험하도록 했다. 결국 뉴욕은 월드컵을 계기로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문화 공간으로 확장했다.

< 뉴욕 록펠러센터에 설치된 월드컵 팬존 - 출처: 통신원 촬영 >
록펠러센터, 축구와 문화가 만나는 새로운 광장
뉴욕은 경기장 밖에서도 월드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맨해튼의 상징적인 랜드마크인 록펠러센터에는 FIFA 특별전 '챔피언들의 유산(Legacies of Champions)'이 마련됐다. 이 전시는 피파 뮤지엄(FIFA Museum)이 기획했으며, 피파의 공식 파트너인 현대자동차그룹(Hyundai Motor Group)이 주요 후원사로 참여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FIFA 공식 파트너로서 경기 후원을 넘어 월드컵의 역사와 문화를 연결하는 다양한 팬 체험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전시장에는 역대 월드컵 우승 트로피와 전설적인 선수들의 유니폼, 각국의 축구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기록물이 전시된다. 무료로 운영되는 이 공간은 축구팬뿐 아니라 일반 시민과 관광객까지 자연스럽게 월드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 뉴욕 록펠러센터에 마련된 피파 뮤지엄(FIFA Museum) - 출처: 록펠러센터(Rockefeller Center) >

< 뉴욕 록펠러센터에 마련된 피파 뮤지엄(FIFA Museum) - 출처: 록펠러센터(Rockefeller Center) >
하지만 록펠러센터의 변화는 단순한 전시에 그치지 않는다. 겨울철 아이스링크로 유명한 ‘더 링크(The Rink)’는 월드컵 기간 대형 스크린과 인조잔디를 갖춘 축구 체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이곳은 전 세계 팬들이 함께 경기를 관람하는 공식 팬 빌리지 역할을 맡는다. 뉴욕시티FC와 고담FC 코치들이 진행하는 축구 클리닉을 비롯해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 영화 상영, 인터랙티브 게임, 포토존, 공식 굿즈 판매 공간 등이 운영되며 록펠러센터는 도심 속 축제 공간으로 거듭난다. 이처럼 뉴욕은 월드컵을 단순히 경기를 관람하는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시민과 관광객이 직접 참여하는 도시 문화 행사로 확장하고 있다.

< 뉴욕 록펠러센터에 설치된 파니니(Panini) 스티커 축구 스티커 교환 행사- 출처: 통신원 촬영 >

< 뉴욕 록펠러센터 내 피파 뮤지엄 후원사 현대자동차그룹이 마련한 월드컵 게임 행사 - 출처: 통신원 촬영 >
문화정책은 곧 지역경제 정책이었다.
뉴욕이 월드컵을 문화정책으로 접근한 이유는 명확하다. 스포츠 이벤트의 경제 효과를 특정 지역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도시 전역으로 확산하기 위해서다. 뉴욕·뉴저지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이번 대회 기간 12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뉴욕·뉴저지 지역을 찾고, 약 33억 달러(약 4조 5,000억 원)의 경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 2만 6,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약 17억 달러의 직접 소비가 지역 상권으로 유입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이에 따라 뉴욕시는 관광객을 경기장으로만 유도하지 않았다. 소상공인을 위한 월드컵 비즈니스 가이드를 제작하고 다국어 관광안내 서비스를 확대했으며, 수백 개의 레스토랑이 참여하는 특별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관광객이 타임스스퀘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섯 개 자치구 곳곳에서 식사하고 공연을 관람하며 지역 상점을 방문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문화정책을 통해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를 도시 전역으로 확산하려는 전략인 셈이다.

< 뉴욕 록펠러센터에 마련된 레고(Lego) 월드컵 벽 만들기 체험 - 출처: 통신원 촬영 >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Bloomberg)»도 뉴욕의 이러한 전략에 주목했다. 블룸버그는 뉴욕시가 월드컵을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도시의 브랜드와 매력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경기장 밖에 마련된 무료 응원 공간과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뉴욕의 문화적 다양성과 지역경제의 활력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른 개최 도시와 무엇이 달랐나
2026 월드컵 개최 도시들은 각자의 강점을 활용하고 있다. 필라델피아는 대규모 팬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시민 참여형 축제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는 할리우드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결합한 독창적인 이벤트를 준비했다. 하지만 뉴욕의 접근 방식은 조금 다르다. 뉴욕은 경기보다 도시를 앞세웠다. “어디에서 경기를 봤는가”보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어떻게 경험했는가”를 기억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이는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이기도 하다.

< 뉴욕 록펠러센터에 마련된 가족 체험 행사 - 출처: 통신원 촬영 >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그동안 국제 행사를 준비하면서 경기장 건설과 교통망 확충, 숙박 시설 확보 등 물리적 인프라 구축에 집중해왔다. 물론 이러한 기반 시설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뉴욕이 보여준 것은 그다음 단계였다. 도시가 가진 문화와 이야기를 어떻게 세계 각국의 방문객에게 전달할 것인가, 경기장 밖에서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 그리고 그 경험을 어떻게 지역경제와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다. 뉴욕은 도시의 문화와 지역 자산을 월드컵의 핵심 콘텐츠로 활용하며 문화를 하나의 도시 경쟁력으로 확장했다.

< 뉴욕 록펠러센터에 마련된 경기 관람존 - 출처: 록펠러센터(Rockefeller Center) >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의 주소는 뉴저지다. 하지만 2026 FIFA 월드컵이 남길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경기장 안이 아니라 뉴욕 곳곳에서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뉴욕이 준비한 것은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라 세계인이 도시의 문화와 일상을 함께 경험하는 방식이었다. 국제 스포츠 이벤트의 성공 기준도 이제는 얼마나 큰 경기장을 건설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도시의 이야기를 경험하고 오랫동안 기억하는가로 확대되고 있다. 뉴욕의 사례는 국제 스포츠 행사의 성공이 경기장과 기반 시설을 넘어 도시의 문화와 지역 자산으로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록펠러센터 홈페이지, https://www.rockefellercenter.com/events/world-cup-2026
- 록펠러센터 홈페이지, https://www.rockefellercenter.com/events/fifa-museum-presented-by-hyundai
- «블룸버그(Bloomberg)» (2026.04.27). New York City to Host Free Outdoor World Cup Viewing Sites, https://buly.kr/58UmMAO
- 뉴욕 관광청 홈페이지, https://www.nyctourism.com/worldcup26/the-nyc-neighborhood-passport-world-cup-program/
- 퀸즈뮤지엄 홈페이지, https://queensmuseum.org/event/nyc-neighborhood-passport-program-already-home-fifa-world-cup-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