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 작가의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Simple Heart, 심플 하트)』 영어판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 행사가 지난 23일 캐나다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열렸다. 행사가 열린 장소는 토론토의 대표적인 예술 허브로, 약 130년 전 양철 인쇄 공장을 복원해 현재 150여 명의 예술가와 문화 단체가 입주해 활동하고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이번 행사는 한국에 있는 조해진 작가를 실시간 화상으로 연결해 현지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행사는 제뉴인 케이(Genuine K Entertainment)가 주관하고, 펭귄 랜덤 하우스 산하 '본드 스트리트 북스'(Bond Street Books)'와 캐나다 최대 아시아 영화제인 '릴아시안(Real Asian) 국제 영화제'가 공동 주최했다. 특히 현지 문화계에 아시아계 서사를 꾸준히 소개해 온 대표 문화단체인 '릴아시안'이 공동 주최에 참여하면서, 이번 행사는 단순한 한국 문학 소개를 넘어 다양한 배경의 현지 독자들과 디아스포라와 인간 보편의 서사를 함께 나누는 문화 교류의 장으로 마련됐다.

< 조해진 작가의 '단순한 진심' 영문판 - 출처: 통신원 촬영>
『단순한 진심』은 2019년 한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6년 만에 영어판으로 출간돼 현지 독자들과 만나게 됐다. 조해진 작가는 신동엽문학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현대문학에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깊이 있게 그려온 작가로 평가받는다. 지난 2월 캐나다 일간지 «더 글로브 앤 메일(The Globe and Mail)»은 이 작품을 한국 페미니즘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소설로 소개했다. 신문은 주인공 '나나'가 서울의 한 영화감독으로부터 다큐멘터리 제작 제안을 받고 친모를 찾아가는 여정을 따라가며, 전쟁과 독재, 빈곤의 유산을 세대를 넘어 엮어낸 작품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도 작품의 핵심은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생명을 지켜내려는 여성들의 연대와 삶의 의지를 담아낸 데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현지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듯 지난 23일 열린 북토크 행사에는 다양한 배경의 참가자 60여 명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행사는 작품과 관련한 이야기로 문을 연 뒤, 화상으로 연결된 조해진 작가가 작품 일부를 한국어와 영어로 낭독하고 참석자들과 깊이 있는 질의응답을 나누는 순서로 진행됐다.

< 캐나다 독자들과 화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조해진 작가 - 출처: 통신원 촬영>
조해진 작가는 한국의 해외 입양 역사와 소외된 이들의 서사에 주목하게 된 창작 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입양인 출신 작가 제인 정 트렌카(정경화)의 자전적 논픽션 『피의 언어』를 읽으며 입양인의 삶을 깊이 상상하게 됐고, 이후 한국어 강사로 일하며 만난 입양인들의 이야기가 더해져 소설 『단순한 진심』의 세계를 구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회적 결핍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그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본질적인 애정을 언급했다. 그는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좋아했던 이유는 세상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이름이 불리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었다"며 "타인을 바라볼 때 그가 마주한 가장 고독한 순간을 상상하는 오랜 습관이 작품 속 인물들에게도 그대로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조해진 작가는 '정체성'은 신분증이나 사진, 명함 같은 물질적인 요소가 아니라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관계 속에서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로 입양된 인물을 설정한 배경에 대해서는 "영화감독인 양아버지 '앙리' 등의 인물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프랑스라는 공간을 상상하게 됐다"며 "전쟁 직후의 빈곤을 넘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1990년대까지도 해외 입양이 이어졌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분명히 부끄러워하고 깊이 되짚어봐야 할 역사"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평소 글을 쓸 때마다 걸으면서 인물의 마음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한다고 소개했다. 영어판 출간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는 "『심플 하트(단순한 진심)』는 결국 존재와 생명,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연대에 대한 진심"이라며, "그 진심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답해 참석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 행사를 마치고, 참가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행사를 마친 뒤에는 다과를 나누며 참가자들이 서로를 소개하고 작품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도 이어졌다. 캐나다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온 경험을 비롯해 집과 고향,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소속감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던 중 우연히 행사를 알게 됐다는 한 중국계 참가자는 디아스포라의 삶과 정체성 문제에 깊이 공감했다고 전했다. 옥빌의 한 독서모임에서 온 참가자는 다양한 배경의 캐나다인들과 한국 작가의 작품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 의미 있었다며, 앞으로도 이러한 자리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동시대 작가와 비록 온라인이지만 직접 만나 작품에 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점과 조해진 작가가 이 작품을 '생명에 대한 찬가'라고 표현한 부분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날 행사를 위해 협력한 펭귄 출판사 관계자들도 독자의 입장에서 작품이 아름답고 애잔하다고 평했다. 영문판에 일부 한국어 단어와 개념이 그대로 남아 있어 뜻을 따로 찾아봐야 했지만, 작품의 세계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특히 캐나다에서 한국 작가의 영어판 출간을 기념해 원작자와 직접 소통하는 행사가 마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언어의 장벽으로 작가와 교류할 기회가 적었던 현지 출판사 관계자들에게도 이번 온라인 만남은 작가의 따뜻한 태도와 진정성이 작품에 어떻게 투영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낯선 땅 캐나다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집과 고향, 정체성을 고민해 온 참가자들에게 이날의 대화는 서로의 흔들림을 보듬는 시간이었다. 독자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동시에 자신의 모습을 다시 돌아봤다.
이처럼 『단순한 진심』은 그동안 세상에 충분히 들리지 않았던 소외된 이들의 서사에 주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의 이야기가 우연한 만남과 연대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소설 속 나나가 새로운 생명을 품으며 비로소 자신의 존재와 마주할 힘을 얻었듯, 생명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때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힘을 얻게 된다. 다양한 이주민이 함께 살아가는 캐나다에서 한국 작가가 전한 연대의 메시지는 현지 독자들이 자신과 타인의 삶을 한층 깊이 들여다보게 한 뜻깊은 저녁을 만들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