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9일, 튀르키예 이스탄불 베식타시 사나틀라르 파크(Beşiktaş Park)에서 ‘제3회 코리안 페스티벌’이 열렸다. 케이팝 커버댄스 경연대회와 한국 음식, 한국 뷰티 체험·판매,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 사진전과 고지도 전시를 한 공간에 배치한 이번 행사는 단순한 한인 문화 행사의 틀을 벗어나 현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소비하고 기억하는 구조를 갖춘 축제로 진행했다. 행사 주최 측 집계 4만 명이 참석한 이날 ‘코리안 페스티벌’은 튀르키예에서 한류가 그 동안 어떤 방식으로 뿌리내려 왔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현장이었다.
▲전통놀이로 하나 되고, 한류로 세상과 만나다
이번 ‘제3회 코리안 페스티발’의 하루는 크게 두 개 갈래로 구성됐다. 오전에는 튀르키예 한인동포들과 다문화 가정, 그리고 주이스탄불 대한민국 총영사관 관계자들이 함께 어울리며 하는 체육대회로 문을 열었다. 제기차기, 비석치기, 딱지치기, 투호 던지기, 줄다리기 등 한국 전통 놀이로만 종목을 정해 체육대회에 참가한 모든 이들에게 깊은 의미를 전했다. 오랜 기간 고국을 떠나 해외 생활을 해 온 동포들과 해외에서 나고 자란 한인 2세대에게 낯선 한국 전통놀이가 이날 현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소통의 매개가 됐다.

<튀르키예 한인사회를 하나로 묶어준 한국 전통놀이>
평소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소통이 쉽지 않았던 다문화 가정 부모와 자녀들도 이날만큼은 우리나라 전통 놀이를 함께 하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엄마와 아들이 서로 다른 편이 돼 투호와 비석치기 대결을 펼쳤고, 튀르키예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가 서로 다른 편이 돼 줄다리기로 맞서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이스탄불 총영사관 관계자들도 동포들과 한 팀이 돼 한국의 전통 놀이를 즐겼으며, 전통 놀이를 통해 정을 나누며 빠르게 교감했다.
김문정 튀르키예 한인회장은 인터뷰에서 “요즘 같이 바쁜 일상에 젖다 보니 서로 함께 할 수 있는 장이 굉장히 좁다”며 “오늘 페스티벌의 자리를 통해 동포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정과 화합을 이루는 행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오후가 되자 축제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케이팝 커버댄스 무대 앞으로 사람들이 몰렸고 한국 음식과 한국 뷰티 부스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또한 튀르키예 한국전쟁 참전용사 사진전 앞에서는 조용히 발걸음을 멈춰 지난 시간 전쟁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현지인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김문정 21대 튀르키예 이스탄불 한인회장>
무대와 부스, 전시 공간은 따로 떨어진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페스티벌 참가자들은 케이팝 커버댄스 공연을 보다가 한국 음식 부스로 이동해 한식을 즐겼고, 한식을 맛본 뒤에는 다시 전시 공간으로 향했다. 이어 한국 뷰티 부스로 이동해 체험과 구매를 진행했다. 이날 자리가 가능했던 이유는 튀르키예 한인회와 월드 옥타(세계한인무역협회) 이스탄불이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이 협력 구조는 이번 축제의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였다. 튀르키예 한인회가 한류 문화의 토양을 마련했다면, 월드 옥타는 그 문화적 관심이 실제 소비와 시장 반응으로 이어지도록 역할을 했다. 케이팝에 대한 관심이 한국 음식과 한국 뷰티의 구매와 체험으로 연결되고, 한국에 대한 호감이 추상적인 인상에 머물지 않고 생활 속 소비로 옮겨가는 모습은 이번 페스티벌이 단순한 문화 행사가 아니라 소비와 교류가 함께 움직이는 입체적인 축제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케이팝, 보는 문화에서 참여하는 문화로 바꾸다
행사장의 열기를 직접적으로 보여준 공간은 케이팝 커버댄스 무대였다. 총 10개 팀이 경연에 나서 경쟁을 벌였는데 현장의 분위기는 경쟁보다 축제에 가까웠다. 참가자들은 안무와 의상, 표정까지 세심하게 준비했고 객석은 단순한 관람석이 아니라 함께 환호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참여 공간으로 기능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캐릭터 복장을 하고 행사장에 참석한 어린아이들, 신나는 케이팝의 흥에 온몸을 던지며 춤을 춘 노년 여성, 무작위(랜덤) 댄스 시간이 되자 객석에서 올라와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로제의 <아파트(APT.)>에 맞춰 능숙한 안무를 보여준 관객들까지 무대는 그야말로 케이팝 축제의 현장이었다.

<’제3회 코리안 페스티벌’ 현장을 뜨겁게 달군 케이팝 커버댄스 경연대회 현장 다양한 장면들>
우승은 블랙핑크(BLACKPINK)의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을 커버한 팀이 차지했다. 이날 무대엔 특별한 손님도 함께 했다. 전 세계 20개국 100여 개 도시 광장과 골목을 누비며 자신만의 음악 활동을 펼치는 대한민국 출신의 유랑 싱어송라이터 조제가 무대 위에 올라 케이팝의 열기를 더했다. 2024년도에 발매한 대표곡을 노래했다. 조제는 ‘길 위의 뮤지션’이란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예술가(아티스트)답게 페스티벌 무대 위에서 처음 만나는 관객 앞에서도 자신만의 음악을 펼치며 관객의 호응을 이끌었다.

▲케이팝, 한국 음식, 한국 뷰티에 한복 입기 체험과 네 컷 사진... 오감을 즐긴 체험형 한국 콘텐츠
케이팝이 사람을 불러 모았다면 한국 음식과 한국 뷰티는 그 관심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줬다. 한국 음식 코너에는 김밥, 떡볶이, 잡채, 소떡소떡, 불닭볶음면, 닭갈비, 부침개 등 다양한 한국 음식이 관람객을 맞았다. 한국 음식 코너의 영ㄹ기는 케이팝 무대 못지 않았다. 수많은 인파가 몰리며 미처 한식을 맛보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예상을 웃도는 반응에 일부 메뉴는 개장 직후 동이 나기도 했다.

<한복입기 체험과 인생 네 컷 사진>


<제3회 코리안 페스티벌 한국 음식과 한국 뷰티 부스를 가득 메운 행사 참가자들 모습>
한국 뷰티 부스에서도 마스크팩과 기초화장품, 비비(BB)크림, 클렌징폼, 핸드크림, 선크림 등을 직접 살펴보며 성분과 사용법을 묻는 관람객의 손길이 이어졌다. 이미 한국 드라마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보던 제품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려는 방문객도 적지 않았다. 이스탄불에서 10년째 거주 중인 한 교민 여성은 “올해는 출입구에서부터 많은 사람이 밀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다”며 “이웃에게 한식을 대접하면 무척 좋아하고, 대화하려면 이젠 아이돌을 공부해야 할 정도로 한국 문화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다문화 가정으로 이날 행사에 참여한 교민 여성은 “아이들이 오늘 코리안 페스티벌을 통해 모국의 문화를 더 많이 접하고 음식도 맛보고 전통 게임도 하며 한국을 느낄 수 있어 유익하고 즐거웠다”고 전했다.
▲사진 앞의 침묵, 한국전쟁의 기억이 축제의 결을 바꾸다
한국 음식이 즉각적인 체험을 통해 진입 장벽을 낮춘다면, 한국 뷰티는 한류를 지속적인 일상 소비 습관으로 연결하는 통로다. 이날 부스 앞의 풍경은 한류가 ‘보는 문화’에서 ‘체험하는 문화’로 옮겨가는 단계를 명확히 드러냈다. 방문객이 한복 입기 체험을 하고 한국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네 컷 사진’을 체험하며 한국 콘텐츠가 라이프스타일 체험형으로 확장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케이팝과 한국 음식, 한국 뷰티의 활기 한가운데 행사장 한편에 자리한 튀르키예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 사진전은 축제의 결을 깊이 있는 차원으로 이끌었다.
〈튀르키예 한국전참전용사 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이 전시는 참전 용사들의 흑백 사진과 전쟁 당시 기록, 지금도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들의 현재 사진을 함께 배치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억의 공간을 조성했다. 참전용사 기념사업회 이태영 회장은 기념사에서 “튀르키예는 6·25 한국전쟁 당시 참전용사들을 많이 파병해 대한민국에 큰 힘과 용기를 준 나라”라며 “그분들의 희생과 고마움을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 전쟁 당시의 사진과 현재 사진을 함께 전시하고자 기획했다”고 밝혔다.

<’튀르키예 한국전참전용사 기념사업회’가 주관한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 사진전>
▲2027년 수교 70년, 이스탄불에 참전 기념비 세운다
이번 ‘코리안 페스티발’에서 가장 주목할 발언은 역사 기억의 미래를 향한 것이었다. 이우성 총영사는 “2027년은 한국과 튀르키예 양국의 외교 관계 수립 70주년을 맞는 해인데 이스탄불에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건립하기 위해 한인사회와 총영사관이 합심해서 노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념비 건립이 실현된다면 두 나라의 역사적 기억은 이스탄불이란 공공 공간 안에 영구적인 형태로 새겨지는 의미를 지닌다. 사진전 한 켠에 담겼던 참전의 기억이 도시의 풍경 속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주이스탄불 총영사관 이우성 총영사>
▲한인사회가 닦고 공공이 확장한 한류 축제의 힘
이번 행사의 성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재외동포청과 주이스탄불 대한민국 총영사관,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이스탄불 등 재외공관과 유관 기관, 현지 베식타시 시청, 튀르키예 한인회, 월드옥타 이스탄불 지회까지 다층적 협력 구조 위에서 이루어진 튀르키예 한인 사회 대규모 한류 문화 축제로 기록된다. 이 다층적 협력 구조의 바탕에는 1989년 창립 이후 37년 가까이 교민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이스탄불 한인회의 축적된 역량이 자리한다. 2023년 한인회관 개관을 계기로 안정적인 물리적 기반도 갖추게 됐다. 이 회관 안에는 동포들의 공동체 공간과 함께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기념 공간도 함께 조성돼 한인 사회의 현재와 두 나라의 역사적 기억이 한 건물 안에 공존하는 구조를 이룬다.
현지 지방자치단체의 참여는 눈에 띄는 변화였다. 베식타시 시청 시장이 올 연말 한국어 수업 개설 계획을 밝힌 것은 한류가 특정 팬층의 관심을 넘어 현지 지역사회 전체가 주목하는 문화 수요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황리에 열린 '제3회 코리안 페스티벌'은 과거의 연대를 현재의 경험으로 다시 연결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증명했다. 튀르키예에서 한류는 이제 낯선 외래 문화가 아니다. 튀르키예 시민이 함께 즐기고, 먹고, 소비하며, 배우고, 다시 기억하는 사회적 경험으로 변화한다.
-사진출처: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