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출판 박람회인 '제63회 볼로냐 아동 도서전(BCBF)'이 지난 4월 13일부터 16일까지 이탈리아 볼로냐 피에레(BolognaFiere) 전시장에서 개최됐다. 이번 도서전은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1,500개 이상의 출판사와 수만 명의 출판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한국 그림책의 압도적인 성과였다. 한국 작품들은 아동 출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라가치상(Bologna Ragazzi Award)의 주요 부문을 석권하며 현지 출판 관계자들과 비평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제 63회 볼로냐 아동 도서전' 포스터
- 출처: 볼로냐 아동 도서전(Bologna Children’s Book Fair) 공식 홈페이지 >
올해 라가치상 심사위원회는 인류 보편의 서사인 '우화와 옛이야기(Fables and Fairy Tales)'를 특별 부문으로 선정하여 전 세계의 전래 서사를 검토했다. 해당 부문에서 영예의 대상(Winner)을 차지한 작품은 한국 사계절 출판사의 『오누이 이야기』(글·그림 이억배)이다. 이 작품은 한국의 전형적인 전래동화인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심사위원단은 공식 평론을 통해 이 작품이 숲이라는 공간적인 배경과 위협적인 맹수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차용하면서, 어머니로 변장한 호랑이를 통해 인류가 공통으로 느끼는 '잡아먹히는 것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를 밀도 있게 구현했다고 평가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오누이 이야기』는 한국 전통 산수화의 미학적인 특징과 현대적인 삽화(illustration) 기법을 성공적으로 결합했다고 분석한다. 심사평에 따르면, 이억배 작가는 틀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역동적인 화면 구성과 한국화 특유의 여백의 미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서사의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또한 비극적인 공포가 지배하는 서사 속에서도 곳곳에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시각적인 장치들을 배치하여 한국적 해학의 정수를 보여줬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전통적인 회화 기법과 동시대적인 만화 감수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독창적인 미학"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 라가치상을 수상한 '오누이 이야기'
- 출처: 이탈리아의 아동 문학 및 그림책 후기 전문 플랫폼 '스카팔레 바쏘(Scaffale Basso)' >
신인 작가의 첫 행보를 주목하는 '오페라 프리마(Opera Prima)' 부문에서도 한국의 약진은 이어졌다. 토끼섬 출판사에서 출간된 전보라 작가의 『마음 그릇』은 해당 부문의 '스페셜 멘션(Special Mention, 공모전이나 시상식에 본상에 오르지 못했으나, 매우 독창적이거나 특별한 가치를 지녀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은 특별상을 의미)'을 수상하며 한국 신진 작가들의 역량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 작품은 표지에서부터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놓인 단 하나의 그릇을 통해 독자에게 강렬한 시각적인 질문을 던진다. 도입부에서 보여준 빈 옷장이 마지막 장에 이르러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 채워지는 그림은 인간의 내면적인 성장과 감정의 변화를 은유적으로 시각화한 결과물이다.
심사위원회는 『마음 그릇』이 지닌 섬세하고 절제된 색채 사용과 정교한 삽화가 인간의 복잡한 감정 체계를 성찰하게 만든다고 평했다. 특히 이탈리아어 제목인 '라 초톨라 델 쿠오레(La ciotola del cuore)'로 소개된 이 작품은 자연 세계와 자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철학적인 도구로서 그림책의 가능성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지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주는 고요하지만 묵직한 울림이 아동을 넘어 성인 독자들에게까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번 도서전 기간 중 현지에서 관찰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한국 그림책을 대하는 유럽 시장의 시각이다. 과거 한국 그림책이 이색적인 동양의 콘텐츠로 소비되었다면, 2026년 현재 이탈리아 내에서 한국 그림책은 이미 '골드 스탠다드(Gold Standard, 어떤 분야에서 가장 훌륭하고 모범이 되는 절대적인 기준이나 표준)'로 자리 잡았다. 볼로냐 도서전 현장에서 만난 이탈리아의 한 대형 출판사 편집자는 한국 그림책의 강점으로 탁월한 인쇄 품질, 종이의 질감에 대한 집요한 탐구, 그리고 무엇보다 아동 도서의 경계를 허무는 깊이 있는 서사 구조를 꼽았다. 이제 이탈리아 서점가에서 한국 그림책은 단순한 아동용 도서를 넘어, 소장 가치가 충분한 '예술적 객체(Art Object)'로서 성인 독자들의 수집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지난 수년간 한국 정부와 출판계가 지속해 온 국제 교류 및 저작권 수출 지원 사업의 결과물로도 분석된다. 특히 올해 특별 부문에서의 대상 수상은 한국적인 정체성이 담긴 콘텐츠가 세계적인 보편성을 확보했음을 의미하며, 이는 향후 유럽 전역으로 한국 출판의 저작권 수출이 가속화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장 시상식이 끝난 후에도 한국관 구역에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주요 출판사 거래처들의 회의 요청이 쇄도하며 식지 않는 열기를 보여줬다.
결론적으로 '제63회 볼로냐 아동 도서전'은 한국 그림책이 지닌 세계적인 경쟁력을 물리적인 수치와 심사위원단의 극찬으로 증명해 낸 자리였다. 이억배 작가와 전보라 작가와 같은 각자 다른 두 세대의 작가들이 탄 조화로운 수상 소식은 한국 그림책의 탄탄한 허리와 밝은 미래를 동시에 보여줬다. 이번 볼로냐 도서전에서의 승전보는 오는 5월 중순에 개최될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토리노 국제 도서전(Salone Internazionale del Libro)'으로 이어져, 이탈리아 내 한류의 흐름이 대중문화를 넘어 순수 문학과 출판 예술로 더욱 깊게 뿌리 내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볼로냐 아동 도서전 공식 홈페이지,
https://www.bolognachildrensbookfair.com/
- ≪일라이브라이오(ilLibraio.it)≫ (2026.03.03.). Bologna Children’s Book Fair 2026: programma e novità della fiera dell’editoria per ragazzi,
https://www.illibraio.it/news/editoria/bologna-childrens-book-fair-2026-programma-1488139/
- ≪스카팔레 바쏘(scaffale basso)> (2026. 04. 09), BOLOGNA RAGAZZI AWARD (BRAW) 2026,
https://www.scaffalebasso.it/bologna-ragazzi-award-braw-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