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시장이 하나의 산업 모델로 정착된 한국과 달리, 인도네시아의 걸그룹 시장은 서로 다른 기획 방식과 문화적 기반이 혼재하는 구조를 보인다. 현재 인도네시아 걸그룹 시장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나뉜다. 일본식 아이돌 시스템, 케이팝을 벤치마킹한 퍼포먼스형 그룹, 그리고 글로벌 프로젝트형 그룹이 동시에 존재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가장 먼저 자리잡은 모델은 제이케이티48(JKT48)로 대표되는 일본식 아이돌 시스템이다. JKT48은 일본 에이케이비48(AKB48)의 공식 자매 그룹으로, 2011년 데뷔 이후 인도네시아 아이돌 산업의 기반을 구축한 팀으로 평가된다. 다수 멤버가 순환하며 활동하고 총선거, 악수회 등 팬 참여형 시스템을 운영하며 현지 대규모 팬덤 형성과 아이돌 문화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케이팝의 영향을 받아 퍼포먼스 완성도를 높이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장형 아이돌’이라는 일본식 특성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 제이케이티48(JKT48)의 '드카트 나문 자우(Dekat Namun Jauh)' 뮤직비디오 장면 캡처 - 출처: 제이케이티46(JKT48) 유튜브 채널(@JKT48) >
이후 등장한 두 번째 축은 케이팝 스타일을 현지화한 그룹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스타비(StarBe)이다. 서자바 반둥 출신의 4인조 걸그룹 스타비는 2019년 데뷔 이후 한국식 트레이닝 시스템과 퍼포먼스를 적극 도입하며 ‘아이팝(I-Pop, 인도네시아형 아이돌 팝)’의 대표 사례로 자리 잡았다. 멤버 구성과 역할 분담, 뮤직비디오 연출, 안무 중심의 무대 구성 등에서 케이팝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롤모델로 블랙핑크(BLACKPINK)를 언급한다.
스타비는 단순한 스타일 모방에 그치지 않고, 현지 시장과의 접점을 유지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SNS와 틱톡(TikTok)을 중심으로 팬층을 확대하며 인도네시아 젊은 세대와 밀착된 이미지를 구축했고, 한국 체류 트레이닝 프로그램 참여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 진출 가능성도 모색해왔다. 특히 2025년 이후에는 대형 음악 페스티벌 참여와 함께 케이팝 스타일에 코플로(Koplo) 같은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 요소를 결합하는 실험도 시도했다. 이는 글로벌 지향성과 로컬 정체성을 동시에 추구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스타비는 현지에서 ‘인도네시아의 블랙핑크’로 불리고 있어 케이팝 현지화의 대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 스타비(StarBe)의 '바이 바이 드라마(Bye Bye Drama)' 뮤직비디오 장면 캡처 - 출처: 아쿠아리우스 무시킨도 유튜브 채널(@AquariusMusikindo) >
세 번째 축은 글로벌 기획사 중심의 프로젝트형 그룹이다. 대표 사례는 노나(no na)이다. '노나(no na)'는 젊은 여성 또는 10대 소녀를 뜻하는 표현이다. 이 그룹은 글로벌 레이블 88라이징(88rising)이 제작한 4인조 걸그룹으로, 2025년 데뷔 이후 초기부터 해외 시장을 주요 활동 무대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스타비(StarBe)와 차별화된다. 멤버 전원이 인도네시아 출신이지만 활동 전략은 글로벌 중심이며, ‘헤드 인 더 클라우즈(Head in the Clouds)’ 등 일본과 미국을 포함한 해외 대형 페스티벌에 참여하며 국제 팬층을 확보해왔다.
노나의 음악적 특징은 알앤비(R&B)와 팝 기반 사운드에 인도네시아 전통 요소를 적극적으로 결합한다는 점이다. 가믈란(gamelan)이나 쳉쳉(ceng-ceng) 같은 전통 악기를 현대적인 프로덕션과 접목하고, 무대 의상에서 바틱(batik)을 활용하는 등 문화적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는 케이팝 스타일 차용을 넘어서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적 색채를 글로벌 음악 시장에 제시하려는 전략’이다. 이들은 해외 활동 중심의 커리어를 쌓으면서도, 인도네시아를 ‘돌아가야 할 집’으로 인식하며 대규모 자국 콘서트를 추진하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글로벌 활동과 로컬 정체성이라는 두 방향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 노나(no na)의 '롤러블레이드(rollerblade)' 뮤직비디오 장면 캡처 - 출처: 노나 유튜브 채널(@nonawav) >
스타비와 노나의 구성과 음악에는 일정부분 블랙핑크의 영향이 반영돼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두 걸그룹 모두 블랙핑크를 벤치마킹한 4인조 여성 그룹으로, 일부 뮤직비디오에서는 블랙핑크의 <마지막처럼>이나 <붐바야>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와 멜로디 전개가 나타난다는 반응도 존재한다.
다만 스타비와 노나는 모두 4인조, 걸크러시 콘셉트, 케이팝 영향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전략적 위치는 서로 다르다. 스타비가 인도네시아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해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는 ‘로컬 중심형’이라면, 노나는 글로벌 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한 뒤 자국 시장으로 확장하려는 ‘글로벌 프로젝트형’에 가깝다. 전자는 팬과의 밀착성과 현지화 전략에서 강점을 보이는 반면, 후자는 제작 규모와 국제 네트워크 측면에서 강점을 가진다.
이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걸그룹이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활동 중이다. 지걸스(Z-Girls)처럼 한국 기획이 주도한 다국적 프로젝트 그룹이 있으며, 피르스트(V1rst)와 글라스(GLAS) 같은 팀들도 밝은 콘셉트나 보컬 중심 퍼포먼스를 내세우며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 플랫폼 기반 프로젝트형 그룹들도 등장하고 있지만, 지속성과 대중적 인지도 측면에서는 아직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인도네시아 걸그룹 시장은 일본식 아이돌 시스템에서 출발해 현재는 케이팝 현지화 단계를 거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인도네시아 특유의 정서를 녹여낸 글로벌 프로젝트형 모델로 확장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다만 한국처럼 대형 기획사가 산업 전반을 주도하는 구조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다양한 실험과 협업 모델이 병존하고 있는 만큼, 국제적인 마케팅과 공격적인 콘서트 투어 역시 구조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스타비는 로컬과 글로벌을 연결하는 중간 단계의 상징적 존재로 평가된다. 노나는 글로벌 네트워크 기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리 잡고 있다. 두 그룹은 서로 방향성을 지니고 있지만, 현지화된 케이팝 모델에서 글로벌 협업 모델로 이동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재 인도네시아 걸그룹 문화를 이끌고 있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씨엔엔 인도네시아(CNN Indonesia)» (2026.04.23). no na Ingin Konser di Indonesia: Kembali ke Rumah, https://buly.kr/A47cxqh
- 케이프로파일즈(Kprofiles) 스타비 관련 게시글, https://kprofiles.com/forums/threads/starbe-news-thread-indo-pop-indonesia.50308/
- 제이케이티48(JKT48) 공식홈페이지, https://jkt48.com/
- 노나(no na) 공식 유튜브(Youtube)의 <롤러블레이드(rollerblade)> 뮤직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UCDI0rblZQs
- 스타비(StarBe)의 <바이 바이 드라마(Bye Bye Drama)> 뮤직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61PXYaRU54M
- JKT48 공식 유튜브(YouTube)의 <드카트 나문 자우(Dekat Namun Jauh)> 뮤직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QtdsUJxiw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