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크라쿠프(Kraków)의 와지니아 노바 극장(Teatr Łaźnia Nowa) 무대에 한국 동시대 공연예술의 중요한 흐름을 대표하는 작품이 올랐다. 구자하 작가의 공연 <쿠쿠(Cuckoo)>가 2026년 4월 24일과 25일 양일간 관객과 만난 것이다. 이번 공연은 주폴란드 대한민국 대사관과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며, 국제적 문화 교류의 맥락 속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번 공연이 열린 와지니아 노바 극장(Teatr Łaźnia Nowa)은 폴란드 현대 연극의 중요한 거점 중 하나다. 2005년 설립된 이 극장은 과거 산업 시설이었던 공간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로, 지역 공동체와 예술을 연결하는 실험적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창립자인 바르토시 시들로프스키(Bartosz Szydłowski)와 마우고자타 시들로프스카(Małgorzata Szydłowska)는 예술가와 지역 주민이 함께 호흡하는 극장을 지향하며, 사회적 이슈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또한 이 극장은 디바인 코미디 국제 연극 페스티벌(Divine Comedy International Theatre Festival)의 중심지로서 국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동시대 공연예술의 흐름을 이끄는 역할을 해왔다.
<쿠쿠(Cuckoo)>는 단순한 연극의 범주를 넘어선다. 음악, 영상, 퍼포먼스를 결합한 이 작품은 동시대 사회를 감각적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복합적 무대 언어를 보여준다. 특히 무대 위에서 서사를 이끄는 존재가 '말하는 전기밥솥'이라는 점은 이 작품을 독보적인 위치에 올려놓는다. 하나(Hana), 두리(Duri), 세리(Seri)라는 이름을 지닌 이 오브제들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을 전달하는 주체로 기능한다. 인간과 사물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 설정은 현대 사회에서 기술이 차지하는 위치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작품의 중심에는 '고립무원'이라는 감각이 자리한다. 이는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못하는 절대적인 고립 상태를 의미한다. 구자하 작가는 어느 날 전기밥솥의 음성을 듣는 순간 이 감각을 강렬하게 체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간이 아닌 기계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오히려 자신의 고독을 자각하게 되는 경험은 기술 중심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보편적 정서를 건드린다. 이 작품은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가 겪어온 구조적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외환위기 이후 이어진 신자유주의적 재편은 청년 세대의 삶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취업 불안, 경쟁 심화, 사회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점점 증가하는 고립과 우울의 문제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구조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다. 구자하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자신의 경험과 결합해 풀어내며, 개인의 서사를 어떻게 사회 전체의 이야기로 확장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폴란드 크라쿠프의 와지니아 노바 극장(Teatr Łaźnia Nowa)에서 소개된 구자하 작가의 쿠쿠 - 출처: 와지니아 노바 극장 페이스북(@laznianowa)>
<쿠쿠(Cuckoo)>는 하마르티아 3부작(Hamartia Trilogy)의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삼부작은 <롤링 앤 롤링 (Lolling & Rolling)>, <쿠쿠(Cuckoo)>, <한국 서양극의 역사(The History of Korean Western Theatre)>로 구성되며, 각각 한국 사회의 특정한 역사적·문화적 단면을 탐구한다. ‘하마르티아(hamartia)’는 그리스 비극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개인이나 사회를 파국으로 이끄는 ‘치명적 결함’을 의미한다. 구자하 작가는 이 개념을 현대적으로 확장하여, 제국주의와 글로벌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구조적 모순과 그로 인한 개인의 고통을 탐색한다. 특히 이 삼부작은 동서양의 문화적 충돌과 권력 관계를 중요한 축으로 삼는다. 서구 중심의 가치 체계가 비서구 사회에 미치는 영향, 언어와 신체, 경제 구조에까지 스며든 보이지 않는 권력은 작품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예컨대 영어 발음을 위해 신체를 교정하는 극단적인 사례나, 국제 금융 시스템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이 작업이 단순한 자전적 이야기를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은 유머와 비극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관객은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곧바로 불편한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이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구축한 감정의 리듬이다. 반복적으로 쌀을 주무르는 행위와 같은 장면은 현대인의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삶을 상징하며,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해외 평단 역시 이 작품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토론토(Toronto) 중심의 라이브(Live) 공연 후기·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인 무니 온 씨어터(Mooney on Theatre)의 레이첼 슈워츠 페이건(Rachel Schwartz Fagan), 2012년 설립된 온라인 출판 플랫폼인 미디엄(Medium)의 로렌조 벨렝게르(Lorenzo Belenguer)는 <쿠쿠(Cuckoo)>가 정치·경제적 현실과 ‘행복’이라는 이상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며, 비인간적 사물을 통해 오히려 인간의 감정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고 분석한다. 또한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과장되지 않은 방식으로 전달하는 균형감 역시 중요한 특징으로 언급된다. 공연 시간 약 55분의 이 작품은 영어와 한국어로 진행되었으며, 폴란드어 자막이 제공되었다. <쿠쿠(Cuckoo)>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선 하나의 경험이다. 기술과 인간, 개인과 사회, 동양과 서양 사이의 균열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현실을 낯설게 만든다. 그리고 그 낯섦 속에서 관객은 스스로에게 우리는 과연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 아니면 점점 더 고립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