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주중국 한국문화원 예운갤러리에서 한국 전통과 현대미술을 함께 볼 수 있는 특별전이 열렸다. 전시는 4월 10일부터 7월 29일까지 진행된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이 기획했으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과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구성한 자리다. 이 전시는 단순히 전통 유물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한 현대 작업을 나란히 배치해 관람객들이 한국미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전시에는 박종규, 김근태, 김춘수, 우종택, 하태임, 신제현 등 6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상감청자, 분청사기, 청화백자, 추사 김정희의 서예, 단청, 고려불화, 나전칠기 등 한국 전통미술의 주요 요소를 각자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전시장에 선보였다. 전통의 형상을 직접 재현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감각과 리듬, 색채와 여백의 미를 동시대의 조형 언어로 풀어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 넓은 여백 속에 작품들이 배치된 예운갤러리 전시 전경 - 출처: 통신원 촬영 >
전시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공간이 주는 여유였다. 많은 작품으로 압도하기보다는 작품 하나하나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간격을 두고 배치한 구성이 특히 눈에 띄었다. 흰 벽과 넓은 바닥, 그리고 작품 사이의 적절한 거리 덕분에 전시장은 전체적으로 편안하면서도 정돈된 인상을 줬다. 복잡한 설명이 없어도, 이번 전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한국미’의 감각이 공간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제목에 들어 있는 '레이어(Layer)', 즉 '층'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오래된 유물과 현대미술을 따로 분리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함께 보여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통 유물이 한국미의 바탕을 보여준다면, 현대 작가들의 작업은 그 위에 새롭게 쌓인 또 하나의 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전시를 보고 나면 한국미가 박물관 속에 머무른 과거의 미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변화하고 확장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 김근태 작가의 작품 '디스커션 2024-89(Discussion 2024-89)' - 출처: 통신원 촬영 >
실제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이러한 흐름을 어렵지 않게 보여준다. 옅은 색조와 절제된 화면은 한국미 특유의 비움과 여백의 미를 떠올리게 했고, 강렬한 색의 곡선이 중첩된 추상화에서는 전통의 색감이 현대적으로 다시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힘 있는 검은 붓질이 화면을 가로지르는 작업에서는 서예의 기운이 느껴졌으며, 금빛과 점무늬가 겹친 화면에서는 화려함과 깊이가 함께 드러났다. 표현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전통이 더 이상 먼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작업 안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만큼은 공통적으로 느껴졌다.

< 하태임 작가의 작품 '언 패시지 No.241020(Un Passaage No.241020)'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 작품 앞에 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색의 흐름이었다. 보랏빛 바탕 위를 지나가는 초록, 붉은색, 흰색의 곡선들이 서로 부딪히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화면을 채워 나간다. 색감은 분명 선명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시원한 느낌을 준다. 흔히 떠올리는 전통미가 차분하고 정적인 이미지에 가깝다면, 이 작품은 그 안에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더한 듯한 인상을 남겼다.

< 신제현 작가의 작품 '히든 사이드27' - 출처: 통신원 촬영 >
신제현 작가의 작품에서는 불상이나 도자 같은 익숙한 전통적인 이미지 위에 문자와 기호를 더해, 과거의 상징을 오늘의 시각 언어로 다시 번역하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단순히 옛것을 반복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감각으로 새롭게 꺼내어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통이 지닌 동시대적인 가능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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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종택 작가의 작품 '메모리 오브 오리진(memory of origin)' - 출처: 통신원 촬영 >
우종택 작가의 작품은 단순한 구성 안에서 오히려 더 오래 시선을 붙든다. 흰 바탕 위에 단번에 그은 듯한 검은 선은 멀리서도 분명한 형태감을 드러내고, 가까이 다가가면 번짐과 흐름의 흔적이 살아 있다. 절제된 화면이지만 결코 비어 보이지 않으며, 선 하나만으로도 공간이 충분히 채워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수묵의 감각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표현 방식은 훨씬 자유롭고 현대적이어서, 익숙함과 새로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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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규 작가의 작품 '버티컬 타임(Vertical time)'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번 전시가 베이징에서 열렸다는 점 역시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중국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 안에서 한국미를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익숙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선의 흐름이나 여백을 사용하는 방식, 색을 절제하는 태도에서는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러한 차이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작품을 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는 단순한 문화 소개를 넘어 서로의 미감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자리로 보였다.
'한국미의 레이어'는 전통과 현대가 결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전통적인 감각은 지금의 작품 안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고, 현대 작업은 그 위에서 새로운 시도를 더하고 있었다. 베이징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한국미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감각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이런 전시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진다면, 한국 미술에 대한 이해 역시 더욱 넓어지고, 문화 교류 또한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한국미의 레이어 전시 도록
-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