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오랜 시간 인류의 보물창고이자 박물관으로서 그 위상을 지켜왔으나, 최근 예술의 역할을 과거의 '유산 보존'에서 시민의 '사회적 웰빙(well-being)과 치유'로 확장하려는 전략적인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탈리아 문화부(Ministero della Cultura, MiC)는 '국가 회복·복원 계획(PNRR)'의 흐름 속에서 문화 예술이 보건 및 복지와 결합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환경을 조성해 왔으며, 이러한 흐름은 2026년 현재 '예술 처방(Art Prescription)'의 제도적인 기틀을 마련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이는 의료 현장에서 환자의 정신적, 신체적 회복을 돕기 위해 박물관 관람이나 연극의 워크숍 참여와 같은 예술적인 경험을 치료의 보완재로 활용하려는 시도이다. 특히 ‘컬처 앤 헬스 플랫폼(Culture And Health Platform)’을 통해 추진되는 다양한 공모 사업들은 예술 활동이 공공 보건 체계 내에서 실질적인 사회적 처방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정책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러한 민관 협력을 통해 예술을 시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새로운 복지 모델로 편입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정책적인 기조를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실증적인 사례는 최근 발표된 '콜 포 아티스트 2026 - 컬처 앤 헬스 이탈리아(Call for Artists 2026 – Culture And Health Italia(Bando per artisti 2026)‘ 공모 사업이다. ’컬처 앤 헬스 이탈리아(Culture And Health Italia)‘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 공모 사업은 비영리 단체인 아소차지오네 올트레(Associazione Oltre APS)가 주관하고, 풀리아 주(Regione Puglia)의 청년 정책 네트워크인 ’갈라티카(Galattica - Rete Giovani Puglia)‘와의 긴밀한 협력 아래 추진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예술 지원금을 넘어, 지역 사회의 보건 시스템과 예술적인 자원을 결합하려는 이탈리아 지자체의 강력한 의지가 투영된 결과다.
해당 공모 요강의 핵심 목적은 일회성 공연이나 전시와 같은 단발적인 문화 향유를 지양하고, ’참여적 예술 실천(Pratiche artistiche partecipative)‘을 통해 시민의 실질적인 웰빙(well-being)을 증진하는 데 있다. 공모 지침에 따르면, 선정된 예술가나 단체는 창작의 전 과정을 대상자와 공유하는 프로세스 중심의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세부 실행 요건 중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는 ’최소 15회 이상의 세션(almeno 15 sessioni)'과 같은 의무화 규정이다. 공모안은 선정된 프로젝트가 단순한 체험을 넘어 지속적이고 실험적인 워크숍을 수행해야 함을 명문화하고 있으며, 이는 정책의 실효성과 시민과 예술가 사이의 정서적인 유대감을 담보하기 위한 강력한 제도적인 장치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 ‘컬처 앤 헬스(Culture And Health Platform)’ 공모 사업의 포스터 - 출처: ‘마르케 스펫타콜로(Marche Spettacolo)’의 웹사이트 >
프로젝트의 수혜 대상은 지역 공동체 내의 취약 계층이나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군 등으로 정밀하게 설정되어 있다. 예술을 매개로 사회적 연결(Social Connection)을 강화하고 심리적 회복을 도모하는 이 사업의 취지는 현대의 이탈리아가 직면한 고독과 고립이라는 사회적 질병에 대한 '비의료적 처방'으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한다.
이번 공모와 이탈리아 정부의 정책적인 변화가 시사하는 가장 큰 지점은 예술가와 시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재설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예술이 완성된 결과물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다면, 현재 이탈리아가 지향하는 모델은 예술가가 시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함께 치유의 경로를 설계하는 것'으로 이동하고 있다.

< 폰테데라(Pontedera) 지역 축제에서 사진 작가들과 시민들이 함께 사진전을 열고 있는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
특히 공모 사업의 15회 이상의 세션 의무화 규정은 예술이 더 이상 장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물리 치료나 심리 상담처럼 반복적이고 체계적인 치료의 과정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즉 예술가에게 창작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경청하고 시민과 사회를 매개하는 사회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탈리아의 이러한 시도는 예술이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넘어 국가의 정신적 안전망으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며, 이는 전 세계가 주목해야 할 예술의 새로운 사회적 책무라 할 수 있다.
이탈리아 문화부와 주요 국립 문화 기관인 우피치 미술관(Le Gallerie degli Uffizi) 등이 추진하는 '펠리치타(Felicità, 행복)' 캠페인 역시 이러한 정책적인 맥락과 궤를 같이 한다. 해당 캠페인은 박물관과 유적지를 단순한 과거의 유산 보존 공간이 아닌, 시민들의 정신적인 건강과 행복을 증진하는 능동적인 복지 공간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탈리아 정부는 이러한 정책적인 노력을 통해 코로나19 이후 심화된 사회적인 고립 문제를 해결하고, 예술을 매개로 한 공공 서비스의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 ‘펠리치타(Felicità, 행복)’ 캠페인을 추진 중인 우피치 미술관 - 출처: 통신원 촬영 >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마르케 스펫타콜로(Consorzio Marche Spettacolo)의 웹사이트 (2026.01.08.).
Call for Artists 2026: CultureAndHealth, una chiamata tra arte, comunità e benessere,
https://marchespettacolo.com/posts/call-for-artists-2026/
- 컬처 앤 헬스 플랫폼(Culture and Health Platform) (2026.01.15).
National call for proposals #2 – Supporting new arts and health projects in ITALY,
https://www.cultureandhealth.eu/calls/pre-announcement-national-call-for-proposals-2-supporting-new-arts-and-health-projects-in-italy/
- 갈라티카 레테 조바니 푸질라(Galattica Rete Giovani Pugila) (2026.02.05).
Bando per artisti 2026 – Culture And Health Italia,
https://galattica.regione.puglia.it/opportunita/altre-misure/call-for-artists-2026-cultureandhealth-italia
- ≪위 더 이탈리안스(We the Italians)≫ (2026.02.10). Art and culture as social prescriptions: Italy moves toward a national model,
https://www.wetheitalians.com/news/art-and-culture-as-social-prescriptions-italy-moves-toward-a-national-mod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