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베트남에서 출간된 역사서 한 권이 한국어로 번역되며 주목받고 있다. 남프엉 황후와 바오다이 황제의 발자취를 따라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를 다룬 작품으로, 베트남 여성출판사가 펴냈다. 이 책은 응우옌 왕조 마지막 시기를 살아간 남프엉 황후와 바오다이 황제의 삶을 3년에 걸친 국내외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입체적으로 복원한 현장 조사 기반 역사서다. 이번 번역서는 베트남 역사서를 외국어로 출판한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한국어 번역 출간을 통해 한·베 문화 교류가 대중문화뿐 아니라 역사·출판 분야로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지 반응도 뜨겁다. 해당 도서는 출간 직후 호치민 북스트리트 메인 거리에서 전시되며 눈길을 끌었다. 특히 한국어 전공 학생들과 베트남 거주 교민들을 중심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향후 한국에서의 정식 출판도 추진될 예정이다.

< 호치민 북 스트리트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번 번역에는 한국과 베트남의 학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배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가, 베트남에서는 응우옌 티 투 번(Nguyễn Thị Thu Vân, 하노이 국립외국어대학교 교수)와 레 투이 둥(Lê Thuỳ Dung)이 공동 번역자로 참여했다. 원저자인 빙 다오(Vĩnh Đào)와 응우옌 티 타인 투이(Nguyễn Thị Thanh Thúy), 그리고 응우옌 티 투 번 교수를 직접 만나 이번 작업의 의미와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번역가 - 응우옌 티 투 반 교수 인터뷰

< 번역가 응우옌 티 투번 - 출처: 통신원 촬영 >
Q1. 이번 책의 한국어 번역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의미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배양수 교수님과 레 투이 둥 번역가와 함께, 이 책이 지닌 역사적·인문학적 가치에 깊이 공감하면서 번역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남프엉 황후와 바오다이 황제의 이야기는 베트남 역사 속 한 단면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복잡한 전환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은 저희에게 단순한 번역을 넘어, 역사와 기억을 매개로 베트남과 한국이라는 두 문화 공간을 연결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베트남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데 작은 기여를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Q2. 한류가 확산된 상황에서, 베트남 역사와 문화를 한국어로 소개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나요?
“한류가 강한 영향력을 지닌 오늘날,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를 한국어로 소개하는 일은 일종의 ‘양방향 문화 대화’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일방적인 수용에 머무른다면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라는 매개를 통해 한국 독자들이 직접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는 보다 친근하고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이는 또한 글로벌화의 흐름 속에서 베트남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Q3. 역사서 번역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나 특히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역사서 번역은 정확성과 전달력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요구합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역사적 사실의 정확성을 유지하면서도, 한국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번역팀은 특히 용어 선택과 문화·역사적 개념의 표현 방식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원문의 의미에 충실하면서도 한국 독자의 인식 체계에 부합하도록 번역하고자 했으며, 사회적 맥락과 의례, 역사적 호칭과 관련된 세부 사항들도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신중하게 처리했습니다.
특히 저와 레 투이 둥 번역가는 배양수 교수님과 함께 공동 번역자로 작업에 참여했으며, 배 교수님은 감수도 맡아 주셨습니다. 풍부한 경험을 지닌 전문가인 배 교수님 덕분에 저희는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Q4. 한국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베트남을 어떻게 이해하길 바라시나요?
“한국 독자들이 베트남을 단순한 관광지나 경제적 파트너로서만이 아니라, 깊은 역사적 배경을 지닌 나라로, 그리고 중요한 역사적 순간 속에서 각기 다른 삶과 선택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남프엉 황후와 바오다이 황제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 책임, 명예와 같은 보편적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인간이 마주하는 다양한 선택과 삶의 변화를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이해가 단순한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공감의 차원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합니다.”
■ 저자 - 빙 다오, 응우옌 티 타인 투이 인터뷰

< (좌)빙 다오 , (우)응우옌 티 타인 투이 인터뷰 장면 - 출처: (좌)'빙 다오' , (우)'응우옌' 제공 >
Q1. 베트남 역사에서 남프엉 황후의 이미지를 ‘복원’하기로 결심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남프엉 황후는 베트남에서 매우 사랑받는 역사적 인물입니다. 저희 역시 그녀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 관련 전기를 찾아 읽었지만, 기존의 얇은 책들은 내용이 매우 피상적이었고, 서로 다른 책에서 반복적으로 옮겨 적은 정보가 많았습니다. 이를 뒷받침할 역사적 근거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저희는 검증된 자료와 사실에만 기반한 새로운 전기를 집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나 모호한 이야기는 최대한 배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남프엉 황후에 관한 역사 자료는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저희는 도서관에 보관된 디지털화된 옛 신문과 잡지, 수도원과 교회의 자료 등을 수집·연구했고, 당시를 함께 살았던 인물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등 다각적인 방법으로 자료를 확보했습니다. 그 결과, 독자 여러분이 손에 들고 계신 이 책은 매우 높은 정확성을 갖춘 역사 자료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Q2. 3년에 걸친 연구 과정에서 알게된 사실이나, 황후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남프엉 황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했고, 이는 그녀에 대한 존경심을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인식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위상이 더욱 분명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베트남 왕실에서 황후는 궁궐 안에 머물며 제례와 의례를 담당하는 역할에 국한돼 있었고, 사회 활동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프엉 황후는 최초로 궁 밖으로 나와 사회복지 시설을 방문하고, 개인 재산을 활용해 사회사업에 기여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진정한 공감과 연민을 바탕으로 활동한 최초의 ‘퍼스트레이디’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세계 주요 국가에서도 이와 같은 수준의 사회 활동을 펼친 퍼스트레이디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즉, 남프엉 황후는 현대적 의미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최초로 제시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3. 오늘날의 시각에서 남프엉 황후는 어떤 인물로 볼 수 있을까요?
“오늘날의 사회적 맥락에서 보더라도, 남프엉 황후는 매우 자주적이고 세련된 여성의 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잘 드러납니다. 외국어에 능통하고 서구 문명을 깊이 이해한 현대적 여성임과 동시에, 자신의 문화적 뿌리를 존중하고 베트남의 유산과 정체성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약 한 세기 전, 그녀는 유럽에서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를 알린 문화적 사절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자녀 교육에 있어 매우 진보적인 사고를 지닌 어머니로, 아이들이 삶의 도전에 당당히 맞서고 자립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길렀습니다.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뛰어난 지성과 통찰력, 빠른 판단력을 지녔으며, 자존감이 높고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저희에게 남프엉 황후는 시대를 초월한 지성인이자, 품격과 주체성을 갖춘 사회 활동가의 이상적인 모델입니다.”
Q4. 한국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베트남에 대해 무엇을 이해하길 바라시나요?
“<남프엉 황후와 바오다이 황제의 발자취를 따라>가 배양수 교수님과 두 공동 번역자인 응우옌 티 투 번 박사, 레 투이 둥에 의해 정성껏 한국어로 번역된 점을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이 책은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베트남 역사에서 매우 격동적인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군주제의 마지막 시기와 혁명,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 세계대전 등 굵직한 사건들이 이어진 시대입니다. 이를 통해 한국 독자들은 베트남 현대사의 중요한 한 단면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간 매우 특별한 인물인 남프엉 황후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현재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자리한 부지가 과거 남프엉 황후 가문의 저택이 있던 곳이라는 점입니다. 이곳은 바로 황후가 태어나고 성장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빙 다오, 응우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