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6일,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 위치한 한국문화원에서 <제7회 글꽃 그룹 서화전>이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강애희 작가의 서화 강좌 초급·중급·고급 과정을 모두 수료한 졸업생들과, 이후 전문 작가반에서 지속적으로 지도를 받으며 한국서예협회 공모전에 도전하는 등 작가로 활동 중인 튀르키예 앙카라 서예·전통예술 교육 프로그램/전문반(USTA) 전문반 ‘글꽃 그룹’ 제자들이 함께 참여한 자리다. 참여 작가들은 한국 전통 서화 기법을 바탕으로 튀르키예의 말과 튤립, 기마 여성, 아나톨리아 문양 등을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두 문화의 이미지를 하나의 화선지 안에 결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박생 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장은 “글꽃 그룹 전시는 한 해 동안 정진해 온 서화 강좌 수강생들의 결실을 확인하는 자리이자 한국 전통 예술의 가치를 현지에 소개하는 소중한 문화 교류의 장”이라며, “사군자의 우아한 멋과 붉은 말의 역동성이 어우러진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이들이 한국 서화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함께 느끼길 바란다”고 밝혔다.

< 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 전경 및 전시 포스터 - 출처: 통신원 촬영 >

< 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제7회 글꽃 그룹 졸업 전시회' 전경 - 출처: 통신원 촬영 >
필자가 현장에서 마주한 ‘글꽃 그룹’ 전시는 더 이상 한국 서화를 기술적으로 재현하는 단계에 머물지 않았다. 튀르키예인들의 언어와 일상, 그리고 현지에서만 포착할 수 있는 정서와 이미지를 새로운 서화 양식으로 토착화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러한 인상을 바탕으로 전시장을 둘러보니, 매화·난초·국화·대나무 등 사군자를 주제로 한 작품들과 한국 작가들에 뒤지지 않는 수준의 서예 작품들이 문화원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특히 올해는 60년 만에 돌아온 병오년을 맞아 붉은 말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이 다수 출품돼 눈길을 끌었다. 사군자의 우아한 선과 말의 역동적인 기운이 한 공간에서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중앙아시아 튀르크 문화권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열두 동물 주기를 사용해 왔다는 점에서, 올해가 양국 모두 ‘붉은 말의 해’에 해당한다는 사실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한국의 사군자 전통과 튀르키예 작가들의 감성으로 재해석된 붉은 말의 형상은 서로 다른 역사와 정서가 ‘서화’라는 매개를 통해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 병오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아 표현한 글꽃 전시회 다양한 작품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지도자를 업은 말(‘Lider Taşıyıcı’)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그림 속 인물이 누구인지 명확히 단정할 수는 없지만, 군복을 입고 말을 타고 있는 용맹한 모습에서 튀르키예인들의 영원한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또한 ‘아나톨리아의 불꽃(Anadolu Ateşi)’이라는 제목의 작품 속 불타오르는 말은 수많은 전쟁과 지진, 정치적 격변을 겪으면서도 꺼지지 않고 강렬하게 이어져 온 튀르키예인들의 정신과 심장을 상징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번 <글꽃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은 이처럼 소재 면에서는 튀르키예인의 삶과 정신세계에서 얻은 현지적 요소를 담고 있으면서도, 표현 방식과 제작 기법에서는 한국 전통 서화의 미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이러한 결실의 배경에는 2012년 튀르키예에서 한국 전통 서화라는 낯선 장르를 처음 소개하고, 붓을 처음 잡은 현지 수강생들을 오랜 시간 헌신적으로 지도해 온 강애희 작가의 노력이 있었다. 문화원에서 운영된 강 작가의 서화 강좌는 회차당 3시간 수업으로 진행되며, 초급·중급·고급 과정을 각각 12회씩 이수해야 졸업 자격이 주어지는 총 108시간의 장기 과정이다. 끈기와 꾸준한 노력이 요구되는 과정인 만큼 모든 교육을 마친 졸업생들의 얼굴에는 어느 때보다 큰 성취감과 기쁨이 묻어났다. 전시를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관람객들 역시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완성된 작품들을 차분히 감상하며 깊은 감동을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고대 돌궐 제국의 성지 ‘외튀켄의 딸’ 작품 설명 - 출처: 통신원 촬영>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 후손 자매 '글꽃 그룹' 졸업전에 축하 나누는 장면 - 출처: 통신원 촬영>
붉은 색 전통 의상을 입고서 잘생긴 백마 위에 탄 튀르키예 여성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보고 있던 한 관람객은 '고대 돌궐 제국의 성지 ‘외튀켄의 딸’이란 작품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튀르키예 전통 의상을 입은 소녀의 모습 속에서 우리 민족의 자유로운 얼과 미의식이 아주 깊이 스며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말을 사랑해 온 우리 민족의 정서까지 한 작품 안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고 하며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자신을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딸이라고 밝힌 또 한 관람객은 '언니의 졸업 작품을 보기 위해서 왔는데요. 언니가 일년 반을 공을 들여서 완성한 매화 그림을 보니까 너무 감동입니다. 먹으로 표현한 작품을 보고 있으니까 제가 마치 아버지가 참전하셨던 한국에 가서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강애희 선생님과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진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한국어로)
그날 전시장에 걸린 모든 작품들에는 졸업생들의 이름이 각각 적혀 있었다. 이들은 한국문화원 서화 강좌를 통해 처음 붓을 잡고 선 하나 긋는 법을 배웠던 수강생들이다. 그 사이 14년이 지나 서화 예술인으로 성장한 제자들이 이제는 튀르키예 내에서도 ‘앙카라 아트 박람회 전시회’, ‘아르트노바 예술 박람회 전시회’, ‘앙카라 국립 민속박물관 박람회 전시회’와 같은 굵직한 전시회들에 참가하며 한국의 서화 예술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해 오고 있다.

< '2025년 글꽃 그룹, 다수 전시회에 출품 작품들 (왼쪽)광복 80 주년 기념 특별전, (중앙)한국-튀르키예 보자기 전시회, (오른쪽)뱀의 해 글꽃그룹 작품전 -
출처: '강애희' 작가 >
더 나아가 강애희 작가의 글꽃 그룹 제자들은 ‘서울서예가협회 공모전’, ‘전북비엔날레 공모전’, 그리고 ‘프랑스 리옹 국제전’ 등에 작품을 출품하며 꾸준히 경험을 쌓아 왔다. 특히 서울서예가협회 공모전에는 매년 작품을 출품해 입선 점수를 축적한 결과, 정식 프로 작가로서 협회 회원 자격을 부여받은 제자도 현재까지 세 명에 이른다. 이는 튀르키예인이 한국의 전문 서예 단체로부터 공인 작가로 인정받은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에 통신원은 튀르키예에서 한국 서화 예술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부터 현지 교육과 창작 활동을 통해 오늘의 성과를 일궈 온 강애희 작가를 직접 만나, 그간의 과정과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기로 했다.
< 혜원 강애희 작가가 별도로 선발해 양성해 온 글꽃 전문가 그룹 - 출처: 통신원 촬영 >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서화 강좌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강애희 작가를 만난 곳 역시 그녀가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 강의실이었다. 통신원이 방문한 날에는 서화 전문가 과정인 ‘글꽃 그룹’ 강좌가 진행되고 있었다. 글꽃 그룹 수강생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중년층까지 다양했으며, 대부분 튀르키예에서 이미 예술 분야의 전문 직업을 가진 이들이었다. 이는 단순한 취미 교육을 넘어, 현지 전문 예술인들이 강애희 작가를 통해 한국 전통 서화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정식 작가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튀르키예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한국 서화 예술의 창작 주체로 자리 잡고, 나아가 스스로 이를 현지 사회에 확산시키는 토착화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 혜원 강애희 작가와 인터뷰 - 출처: 통신원 촬영 >
아래는 강애희 작가와 가진 인터뷰다.
Q1. 작가님은 한국문화원에서 서화 강좌를 하는 강사로 일하고 계신데요. 강의실 안에서의 교육을 넘어 다양한 전시회와 한복 패션쇼, 기부 활동 프로젝트 등으로 튀르키예에서 한류 문화 전반으로 활동을 확장하고 있으신데 비전은 무엇인가요?
제가 문화 전도사 같은 꿈이 있다기 보다 당위성을 먼저 생각한 거 같아요. 예술이란 건 단지 강의실 안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데 머무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아! 한국에 이런 게 있구나’ 하면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 그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러려면 강의실 밖으로 나가야 해요. 전시회든 퍼포먼스든 패션이든 현장에서 여러 형태로 보여지는 것들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Q2. 제자들의 작품을 졸업 전시회에 그치지 않고 실제 판매 현장인 아트페어에 내세우셨다고 했는데 계기가 궁금합니다.
문화원에서 초∙중∙고급 과정을 거치면서 민화와 문인화도 배우고 재료를 달리해 가면서 깊이가 쌓이잖아요. 그 다음 단계는 제자들이 실제 작품을 사고 파는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에 나가서 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개인 자격으로 아트 페어에 가서 작품을 판매하는 건 공간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문화원과 협력해서 담당자를 찾아가서 자리를 받을 수 있도록 했죠. 저는 5일 동안 하루에 100명씩 관람객 이름을 한글로 써 드리기로 했죠. 재능 기부도 하면서 족자 작품도 판매하고 튀르키예 문체부 차관이 오셔서 학생들 작품을 구매하시기도 했습니다.
Q3. 서화 예술이 심리치료로서 갖는 효과는 무엇인가요? ADHD 연구논문과 교도소 서화 수업 경험을 들려주세요.
‘서화 예술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아동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논문을 썼어요. 병원과 협력해서 서화 교육을 통해 실제 임상을 통한 객관적 통계 처리까지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는 걸 확증 했죠. 튀르키예에서 특별한 계기로 교도소에서 서화 강좌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는데 바로 하겠다고 했죠. 재소자 분들한테도 서화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종강 후 전시회를 열었는데 재소자 분들이 ‘동양의 캘리그라피가 정말 좋았어요.’고 했어요. 교도소에서 예술가를 양성하는 게 목적이 아니잖아요. 서예와 그림을 그려가면서 갇힌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어요.
Q4. 한국 서화 예술을 튀르키예에 토착화 하기 위해서 튀르키예부터 독학하셨다고요?
한국의 서화 예술을 해외에 전파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토착화예요. 현지인들이 서화를 이해하고 자신의 언어와 감성으로 스스로 표현하고 그려낼 수 있어야 해요. 의미도 모른 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것은 진정한 예술 전파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현지에서 서화를 가르치기 위해 먼저 독학으로 튀르키예어부터 배웠어요. 지금은 모든 수업을 제가 직접 튀르키예어로 진행합니다. 수업에서는 한국 속담과 뜻이 비슷한 튀르키예 속담을 찾아 그 느낌을 서화로 표현해 보게 해요. 예를 들어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의 우리나라 속담과 튀르키예 속담 ‘Zeytin sabır ister, sonu bereket getirir’(올리브는 인내를 필요로 하고 끝은 풍요를 가져온다)'의 뜻이 같아요. 그런데 같은 뜻이라도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해 보면 튀르키예인의 정서로 전혀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거든요. 그때부터는 서화라는 장르만 빌리고 나머지는 현지인들의 감성으로 새로운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게 바로 토착화입니다.
통신원은 튀르키예에서 지난 십수 년간 한국 전통 서화를 현지에 뿌리내리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 온 혜원 강애희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예술 교육 이전에 상대를 먼저 존중하는 태도에서 출발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교육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교육 방식 때문인지 강 작가의 글꽃 그룹 제자들은 자신의 작품을 소개할 때 단순한 기법 설명에 그치지 않고, 작품에 담긴 감정과 경험을 함께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지 카라바작(Inci Karabacak) 경제기술대학교 시각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TOBB) 학과장 은 “서화의 여백은 빈 공간이 그림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전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데리아 아라스(Derya Aras)는 “먹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천천히 번져 나가며 사람에게 평온함을 주는 부드러운 여성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선이 거칠고 날카로울 때는 사람을 설레게 하면서도 두렵게 만드는 남성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라고 전했다.

< 2026년 독일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들을 최종 점거하는 ‘글꽃’ 그룹 제자들 - 통신원 촬영 >
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이번 <제7회 글꽃> 그룹전은 단순히 문화원 강좌 교육 과정을 마친 수강생들의 연례 졸업 전시회를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는 자리였다. 다음 <글꽃 전시회>는 한국서예협회 베를린 명예회장 라오랑 볼프람 비케르트의 초청으로 오는 7월 3일부터 24일까지 독일 국회 언론정보국 전시실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문화원 강의실에서 한 획부터 배우기 시작한 수강생들은 이제 서울서예가협회 정식 작가로 활동하며, 프랑스와 독일 등 해외 전시에 초청받아 한국 서화 예술을 알리는 단계에 이르렀다. 튀르키예에서 토착화의 결실을 맺고 있는 한국 전통 서화가 앞으로 더 넓은 세계로 확산되어, 붓과 먹이 닿는 자리마다 새로운 문화적 뿌리를 내려가길 기대해 본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강애희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