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연말, 싱가포르 서점가에서는 한국 작가들의 에세이가 비소설(non-fiction) 부문에서 두드러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기자가 싱가포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문구 용품 판매점이자 서점으로 알려진 '파퓰러(Popular)'를 방문한 결과, 비소설(non-fiction) 베스트셀러 상위 10 (Top 10) 순위 상당수를 한국 저작물이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확인됐다. 특히 자기 성찰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한국 에세이들이 현지 독자들 사이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 연말 방문한 파퓰러 매장 - 출처: 통신원 촬영 >

< 서점에 위치한 베스트셀러 도서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파퓰러 매장에서 확인한 비소설(non-fiction) 차트에 따르면, 한국 작가 혜민 스님의 에세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When Things Don’t Go Your Way)』가 3위를 기록했으며, 또 다른 작품인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The Things You Can See When You Slow Down)』은 6위에 올랐다. 또한 황보름 (Hwang Boreum) 작가의 에세이 『매일 읽겠습니다』의 영어판 『I Will Read Every Day』가 7위를 기록하며 비소설(non-fiction)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일상의 독서 경험 쌓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이 책은 독서를 통해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돕는다. 전체적으로 비소설(non-fiction) 차트들의 책들은 경쟁적인 도시 환경 속에서 정서적 여유를 찾고자 하는 싱가포르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는 책들로,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들 모두 빠른 성취나 자기 계발을 강조하기보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감정을 돌아보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는 우리나라 작가들의 도서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러한 흐름은 싱가포르 독자층의 독서 취향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경쟁이 치열한 도시 환경 속에서 성과 중심의 서적보다 정서적 안정과 자기 위안을 제공하는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에세이는 비교적 짧은 문장과 명확한 감정선, 그리고 종교나 문화적 배경을 넘어 공감 가능한 서사를 통해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한국 에세이에 대한 관심은 대형 서점 차트에서도 확인된다. 싱가포르 유력 일간지인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가 발표한 12월 27일 자 주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따르면, 한국 작가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비소설(non-fiction) 부문 6위를 기록했다. 이 작품은 단기적인 유행을 넘어 싱가포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100주 이상 이름을 올리며 장기적인 독자층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 12월 27일 논픽션 부분 주간 베스트셀러 차트 - 출처: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 주간 차트 뉴스 기사 >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는 최근 해당 작품과 관련해 백세희 작가와 영어 번역가 안톤 허(Anton Hur)의 공동 인터뷰 영상을 공개했다. 이 기사에는 작가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애도의 뜻을 표하는 독자 댓글들이 다수 달렸다. 특히 "이 책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해준 작품"이라는 내용의 댓글이 이어지며 싱가포르 독자들 사이에서 이 작품이 단순한 에세이를 넘어 정서적 지지의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었다.

< 백세희 작가 인터뷰 영상에 달린 싱가포르 사람들의 댓글 - 출처: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 유튜브 계정(@straitstimesonline) >
백세희 작가의 에세이는 정신 건강, 불안, 우울과 같은 개인적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함께 담아낸 점에서 큰 공감을 얻었다. 이는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점차 확장되고 있는 싱가포르 사회의 흐름과도 맞물린다. 특히 젊은 독자층을 중심으로,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공유하는 서사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지면서 한국 에세이가 하나의 정서적 언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처럼 싱가포르 서점가에서 나타나는 한국 에세이의 강세는 한국 콘텐츠 소비의 확장이 영상과 음악을 넘어 출판 분야로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케이팝과 드라마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류에 이어 이제는 글과 문장을 통해 감정을 나누는 '읽는 한류'가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한국 에세이는 서구식 자기 계발서와 달리 실패와 불완전함을 전제로 한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어 싱가포르 독자들에게 비슷한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한국의 정서가 이곳에서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은, 한국 에세이가 단순히 국가적 정체성을 넘어 하나의 보편적 위로의 언어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말을 맞아 싱가포르 서점가에서 확인된 한국 에세이의 존재감은 한국 문학이 번역과 출판을 통해 현지 독자와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가 주를 이루는 시대 속에서도 한국 작가들의 조용한 문장은 싱가포르 독자들에게 일상의 속도를 늦추며 공감과 위로를 주는 매개체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향후 한국 출판 콘텐츠가 동남아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 https://www.straitstimes.com/global
-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 유튜브 계정(@straitstimesonline), https://www.youtube.com/@straitstimes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