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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대중음악 주체성이 미미했던 인도네시아 음악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류를 이루었던 외래 음악인 “팝”과 “록” 음악이 대중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에 반발이라도 하듯 2003년 SCTV(자카르타 소재 민영 TV 방송국)에서 대중음악의 인기를 가늠하는 가요경연 프로그램인 “Duel Maut(최고의 경쟁)”에서 낭랑한 음악에 맞춰 부드러우면서도 현란한 율동을 가미한 신인 가수 ‘Inul’의 우승과 더불어 당둣(Dangdut)음악이 전국 가요 인기차드에서 16위를 차지하면서 그 경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약간의 율동을 곁들인 인도 음악 풍의 영향을 받은 당둣(dangdut)은 이전 까지만 해도 서민 혹은 중류층이 즐겼던 음악으로 젊은 층 혹은 식자층이 즐겼던 “팝”이나 “록” 음악보다 한 층 낮은 수준의 음악으로 간주되었다.
민주화와 더불어 자신의 주체성 및 독립성을 갈구하던 시대의 부름에 맞추어 이를 계기로 SCTV는 가수 ‘Inul’의 출현을 기점으로 대중음악으로서 “당둣”의 발전 가능성을 간파하고 2003년 6월 3일 ‘Inul’에게 스타 상징성을 부여하여 독자적인 ‘Inul’을 상징하는 "Sang Bintang(가요계의 왕)이란 독자 음악프로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이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률이 계속 상승하자 곧이어 민영 TV방송인 Trans TV는 “Rindu Inul(이눌을 그리며)”라는 135분간의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2개월에 걸쳐 준비했다. 예상외로 넘쳐나는 광고 스폰서로 대성공을 일궈내며 ‘Inul’은 명실상부한 스타가 되었고, “당둣”은 주체성을 지닌 대중음악으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한 동안 ‘Inul’은 대중의 최고 인기를 누렸으며 이런 성공을 계기로 다른 “당둣” 가수들이 함께 참여하여 경쟁함으로서 그의 여백을 메워가기 시작했다. 이들 모두는 “당둣”이 대중음악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다. ‘Inul’의 뒤를 이어 ‘Ira Swara’가 2004년 9월 이후 최고의 당둣 가수로 자리를 차지했으며, 이어 ‘Dewi Perik’이 ‘Ira’와 더불어 나란히 인도네시아 최고의 “당둣” 가수로 자리를 굳히며 왕성한 황동을 하고 있다.
아쉽게도 2005년 12월 30일로 “당둣 가요 경연대회(Duel Maut)”가 끝나면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많은 유명 “록” 혹은 “팝” 밴드에 의해 인도네시아의 주체성을 보여주며 대중음악으로서의 자리 메김을 해오던 “당둣”이 쇠퇴하지나 않을까 염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