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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40여개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KOFICE 통신원들이 전하는 최신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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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튀르키예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에브루' 장인 바루트츄길 대가

  • [등록일] 2025-03-11
  • [조회]1953
 

매우 특별한 예술인을 찾아가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으로 등재된 튀르키예 전통예술 '에브루'의 대가 아흐메트 히크멧 바루트츄길(Ahmet Hikmet Barutcugil)이 바로 그다. 인류 무형문화유산이란 문화의 다양성의 원천인 무형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고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국가적, 국제적 협력과 지원을 도모하기 위해 유네스코에서 지정된 유산을 말한다. 튀르키예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총 30건 보유한 국가로 세계적으로는 다섯 번째에 속한 문화유산 강국이다.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전통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다수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한 튀르키예에서는 그 명맥을 지켜가고 있는 장인들도 적지 않다. 바루트츄길도 '에브루' 예술의 가치와 전통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승화해 나가고 있는 튀르키예 대표 장인이다. 그는 현재 튀르키예에서 '에브루' 예술을 전파하는 10대 장인으로 미국과 캐나다, 독일, 영국, 인도, 이란, 스위스, 싱가포르, 호주, 브라질 등 전 세계 36개국에서 개인전 119회, 그룹전 122회를 열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장인의 화려한 명성에 인터뷰를 요청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려운 마음으로 연락했는데 바루트추길은 의외로 오래전부터 알아온 지인처럼 통신원을 편안하게 맞아 주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장인이 30여 년 동안 거주해 온 자택이면서 후학들에게 '에브루'가 단절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그 기법을 전수하고 있는 그의 작업실이었다. 바루트츄길 장인이 소멸 직전에 놓였던 '에브루' 예술을 살리기 위해 애써온 30년의 세월의 흔적이 쌓인 건물이라고 생각하니 작은 공간 하나까지도 마치 예술 작품인 것처럼 다가왔다.



< 1층에서 바르투츄길이 제자들에게 '에브루'를 가르쳐 주는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

 

'에브루' 장인의 집은 3층 건물로 1층은 작업실이고 2층은 바루트츄길 장인의 갤러리로, 그리고 맨 위층은 자택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아름다운 보스포러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에 위치해 있어 경관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절로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집중하면 작은 새소리까지 은은하게 들려오는 정도로 마을의 분위기가 고요해 장인이 작업을 하기엔 최고의 장소였다. 통신원이 바루트츄길 장인의 집 앞에서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바로 장인이 작업하고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바루트츄길은 전화기 너머 들리던 음성 그대로 점잖은 중년 신사의 중후한 목소리로 통신원과 인사를 나누고 작업실 겸 주택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 바르투츄길의 작품들과 그의 전시회에 참석한 엘리자베스 여왕,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 해외 국빈 사진 - 출처: 통신원 촬영 >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히크멧 바르트츄길입니다. 1973년부터 '에브루' 예술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 오고 있습니다. 서예 예술에 흥미를 느껴 옛 서예 작품들을 연구하던 중 우연히 '에브루'를 접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음을 빼앗기게 됐고 깊은 열정으로 발전하게 됐죠. 그리고 지금까지 '에브루' 예술의 전통적 기법을 계승하면서 현대적인 접근과 새로운 시도들을 더하며 그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해 가고 있습니다.

 

바르투츄길 예술가가 '에브루'를 처음 접했을 때 상황과 현재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처음 접한 70년대 '에브루' 예술은 거의 소멸 직전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에브루'는 저에게 마치 숨겨진 신비로운 아름다움처럼 느껴졌어요. 특히 '에브루'가 물 위에서 이루어지는 작업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는 더욱 매혹적이었죠. 그런데 그 당시에는 이 예술을 가르치거나 제대로 전수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알려진 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도 아주 낙담한 상태였죠. 재능을 선보여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그때 당시 미술 아카데미에서 섬유디자인을 전공하던 학생이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어떤 물감이 지나가고 어떤 물이 흘러갔는지 살피면서 물 위에 그림을 그려보면서 '에브루' 예술을 배워 나갔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나온 패턴들은 기존에 있던 '에브루'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어요. 매우 독특하고 새로운 이미지들이 나타났죠. 그때는 저도 어떻게 그런 문양이 나왔는지 이해를 못 했어요. 그런데 몇 년 후 깨달은 것은 그 이미지들이 이미 자연 속에 존재하는 형상들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미시적 세계와 거시적 우주 사이의 무한한 연결 속에서 '에브루'와 유사한 이미지들이 발견됩니다. 예를 들면 지층, 대리석의 무늬, 현미경으로 관찰한 미세 구조 등에서 그러한 패턴을 모두 볼 수 있죠. 이후 저는 이 작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계속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브루' 예술의 신성한 아름다움 같은 것입니다.

 

'에브루' 예술이 처음 언제 시작됐고, 재료는 무엇을 사용하나요?

현재 '에브루' 예술이 정확히 어디서, 언제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에브루'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모든 '에브루' 역사학자들이 그곳에서 시작됐다고 말합니다. 알려진 최초의 이름은 '에브레'입니다. 이는 차가 타이어로 쥐처럼 색깔이 다양하고 줄무늬가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후 이 기술은 실크로드를 따라 이란으로 전해졌고요. 이란에서는 '에브리'라고 부르며 구름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다시 이란에서는 '아부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페르시아어로 'ab'은 '물', 'ru'는 '얼굴'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부르'는 '물의 얼굴'이란 뜻으로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후 이 기술이 아나톨리아(현재 튀르키예)에 전해지면서 우리는 이를 '에브루'라 부르게 시작했고 17세기 초에는 터키 종이(Turkish Paper)라는 이름으로 유럽에까지 전파됐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감들은 수성으로 물과 쓸개 담즙을 같이 섞습니다. 이 예술의 마법 같은 재료가 바로 담즙인데요. 주로 소에서 얻은 담즙을 사용하는데 그 양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담즙은 물감이 물 표면에 퍼지도록 도와줍니다. 만약 담즙이 들어 있지 않은 물감은 물속으로 가라앉게 됩니다. 담즙은 물감이 잘 퍼지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서로 섞이는 것을 방지합니다. 눈대중으로도 색상의 명도와 톤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밝고 어두운 색조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담즙의 끈적한 성질 덕분에 종이를 사용해도 잘 붙습니다. 이 예술의 비밀은 바로 담즙에 있습니다.



< 히크멧 바르트츄길과 인터뷰하는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

 

유네스코에 등재된 '에브루' 예술이 과거 단편의 장르에서 머물지 않고 독창적으로 발전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에브루' 예술은 17세기~19세기에 걸쳐 주로 서적 예술에서 많이 사용됐습니다. 책이나 공책의 표지 또는 속지, 즉 책의 표지와 본문을 연결하는 종이로 널리 쓰였습니다. 이는 유럽에서도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역사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지는 않았습니다. 동일한 문양과 스타일이 수 세기 동안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세기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과거에 대한 향수가 생겨났습니다. 그런 영향으로 전 세계적으로 현대 예술이 쇠퇴하기 시작했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작품들이 피상적이고 무의미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깊은 철학적 배경이 부족했습니다. 학문적 근거가 부족한 작품들에 사람들은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전통 예술과 고전 예술로 돌아가는 흐름이 나타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에브루' 예술도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말하자면 지금 '에브루'는 르네상스를 경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브루'는 다른 예술과 결합하며 더 이상 책 속에만 머무는 예술이 아니라 액자에 넣어 벽에 걸 수 있는 예술 작품으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에브루'는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 분야이자 전문 직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늘어나는 관심과 함께 이러한 흐름은 더욱 확대됐습니다. 유네스코는 이 예술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며 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에는 저에게 '살아있는 유네스코 인간문화재'라는 칭호가 수여됐습니다. 우리는 이 귀한 예술적 유산을 학생들과 예술 애호가들에게 나누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에브루' 예술을 가르치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있고, 학생들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지금 이곳에는 저의 특별한 제자들이 있습니다. 두 개의 반이 있으며 이 학생들은 이미 전통적인 '에브루' 기법을 익혔습니다. 이들 중에는 15년에서 20년 동안 '에브루' 작업을 이어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예술가인 이들과 고위 경영자, 의사, 변호사도 오고 있는데 '에브루' 예술을 통해 심적 안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분들은 이곳에 와서 '에브루' 예술을 통해 긴장을 풀고 평온함을 얻습니다. 그와 함께 저는 34년 동안 미마르 시난 대학교 예술대학에서 '에브루' 수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먼저 전통 기법을 가르칩니다. 그다음에는 학생들이 창의력을 자유롭게 펼치도록 격려합니다. 그와 함께 예술고등학교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하고 있는데요. 튀르키예 궁전청 산하 전통 예술 센터에서도 2004년부터 '에브루'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새로운 인재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전통을 배우고 자신만의 새로운 시도를 통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학생들입니다. 예술은 바로 그렇게 발전하고 진화합니다.

 

'에브루'는 종이 위에 남겨지는 단순한 무늬가 아니라 시간과 기술, 예술가의 감성이 어우러진 문화유산이다. 물 위에 색과 우연하게 만나 빚어내는 '에브루'는 앞으로도 오랜 세월 동안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예술로 계속 승화돼 남을 것이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통신원이미지

  • 성명 : 임병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튀르키예/이스탄불 통신원]
  • 약력 : YTN world 해외 리포터, 민주평통 남유럽협의회 튀르키예 지회 자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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