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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부터 캐나다 왕립 온타리오 박물관(Royal Ontario Museum) 한국관 큐레이터로 위촉된 권성연 박사를 만나, 한국과 캐나다의 문화교류와 관련된 박물관 내 다양한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지난 3월부터 새롭게 시작한 '조선시대의 예술과 패션'을 주제로 한 순환 전시에 대해 살펴보고, 그 배경과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 순환 전시가 시작된 한국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권성연 큐레이터 - 출처: 통신원 촬영 >
2022년 말 ROM 한국관 큐레이터로 오셨는데, 이제야 만나 뵙습니다. 한국 전시관을 담당하게 된 소감과 박사님의 학문적 배경, 연구 활동이 이번 역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캐나다 ROM 한국관 큐레이터는 정말 큰 영광이자 책임감을 느끼는 자리입니다. ROM 한국관에서의 제 역할은 단순히 전시를 큐레이팅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문화유산을 세계와 공유하고 관람객들에게 한국의 예술과 문화, 역사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저는 토론토대학에서 미술사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알버타대학에서 현대 미술사, 시각 문화사를 전공했습니다. 이러한 학문적인 관심을 토대로 다양한 한국 현대미술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거나, 양국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확장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 한국관의 전시를 둘러보고 있는 로얄 온타리오 박물관 관람객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번에 새롭게 진행되는 전시는 무엇에 관한 것인가요?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조선시대의 예술과 패션'을 주제로 순환 전시를 기획하면서 한국의 전통적인 미적 가치를 현대와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킹덤>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갓'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전시는 '갓'과 '사모'와 함께 '평생도 10폭 병풍', '남자 초상화(Elizabeth Keith, 판화)', '도투락댕기' 그리고 '옥황상제도'를 함께 선보이며 조선시대 남자와 여자가 태어나서부터 그들의 삶과 늘 함께 해 온 모자의 흔적을 살핍니다. 또한 당시 무속신앙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자로 여겨졌을 옥황상제의 모자에 이르기까지 모자를 둘러싼 조선인들의 삶 전체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 '모자가 한국 남성을 만들다' 토크쇼 포스터 - 출처: ROM 홈페이지 >
조선시대의 모자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조선시대에 모자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영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비디오를 설치했는데, 이는 뉴욕 스토니브룩대학(Stony Brook University)에 속해 있는 찰스 왕 센터(CharlesB. Wang Center)의 진진영 디텍터가 제작한 영상을 짧게 만든 것입니다. 해당 비디오에서 말하는 것처럼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계급에 따라 신분과 권위를 드러내는데 모자를 통해서도 이를 알 수 있었습니다. 갓난아기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신분이 높은 사람부터 낮은 사람까지 모자를 통해 신분과 권위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식민지 시기 단발령으로 인해 변형된 다양한 모자 스타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오는 10월 19일 '모자가 한국 남성을 만들다(Hats Make the Korean Man)'라는 토크쇼가 진행되는데, 앞서 설명드린 한국 남성 모자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가 사회 계층, 정체성, 문화 및 남성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한국 모자가 국제 미술 시장과 박물관에서는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예정입니다.
< 한국의 모자와 관련된 비디오를 살펴보고 있는 관람객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ROM 한국관 상설 전시관에 대한 변화의 계획도 있으신지요?
저희 한국관에는 전체 연표가 벽으로 세워져 있는데요, 2007년 당시 최첨단으로 설치했습니다. 만져볼 수 있도록 모형도 만들어져 있고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표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색이 많이 바래었고 1988년을 한국 현대사로 소개하고 있어 해당 벽을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뉴욕에 거주하는 강익중 설치 미술가와 토론토 참여자들과 '내가 아는 것'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물을 설치하게 됐습니다. 해당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박물관 전시 방식에서 벗어나 관람객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모아가는 집단 지성(Collective Knowledge Building) 작업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한국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됐습니다. 작품이 설치되면 한국관 분위기가 한결 밝고 화려해질 뿐만 아니라 한국관이 사유의 장소로서 역할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박물관의 역할이 관람객들이 단순히 전시를 보는 것을 넘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참여형 전시 공간으로 변화하는 중요한 단계가 될 것입니다. 또 저희 한국관에는 세라믹이 많이 전시돼 있는데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 분청으로 바뀌는 과정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기후변화와 관련한 내러티브를 다양한 스토리로 준비하고 있기도 합니다.
북미 전시 트렌드와 ROM이 추구하는 기획 방향에 한국관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요?
북미 전시 트렌드라고 하면 접근성, 다양성, 그리고 포괄성 등을 강조하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고 ROM은 예술, 문화, 자연사 등 다양한 전시를 함께 선보이면서 통합적으로 보여주려는 다학제적(Transdisciplinary) 접근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관의 경우 강익중 설치 미술가의 작품 또한 다양성, 포괄성 등을 강조하며 시작한 프로젝트이며 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자 터치스크린, 번역 작업 등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관은 유물 전시뿐만 아니라 현대 대중들과의 소통을 위해 대중들이 관심 있어 하는 한국 드라마, 케이팝 등과 같은 요소들을 전시와 연결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 로얄 온타리오 박물관 수장고에서 만난 한국의 유물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ROM 박물관에 큐레이터로 오셔서 다양한 분야와 협력하며 활발하게 활동하셨는데요. 간략하게 어떤 활동들을 해 오셨는지 그리고 어떤 것들을 기획 중인지 말씀해 주세요.
저는 전문성은 연구와 네트워킹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고 함께함으로써 대중들의 다양한 눈높이에 맞게 조절하면서도 깊이 있는 전문성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2023년 시각미술 작가 3인과 함께한 '장소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요크대학 미술사 갈홍 교수님과 주캐나다한국문화원에서 공동기획했습니다. 그리고 강익중 설치 미술가와 함께한 공공 미술 프로그램, 현대 한국학자들을 초청해 진행한 2일간의 학술 심포지엄, 그리고 여름 3주 동안에는 한국어 활동 프로그램을 ROM 한국관 입구에서 진행했습니다. 지난 3월부터는 '조선의 예술과 패션' 전시를 한국관에서 선보이고 있는데 오는 10월 19일 이와 관련한 토크 프로그램이 예정돼 있습니다. 2025년에는 '기후변화와 한국 미학' 토크 프로그램과 한국 전통악기 전시 및 공연 예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ROM 한국관 큐레이터로서 앞으로의 비전이 있다면 나눠주십시오.
지금까지 ROM에서는 전통과 유물을 중심으로 한국문화를 소개해 왔는데, 저는 현대의 문화예술도 좀 더 적극적으로 소개해 한국의 다양한 면모를 풍부하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현대 한국의 문화예술을 다이내믹하게 소개함으로써 한국관을 방문했을 때 전통적인 한국과 현대 한국 사이의 간극을 크게 느끼지 않고 다채로운 한국의 문화유산과 근현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하려고 합니다. 또한 기후변화, 탈식민, 젠더와 여성 문제 등 글로벌 사회에서 중요한 주제가 한국의 맥락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전시 기획을 통해 중점적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 로얄 온타리오 박물관 수장고에서 만난 한국의 유물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ROM 수장고에는 한국의 기원전 8000년 화살촉으로부터 돌창, 손도끼, 무신도, 아쟁, 최근 도네이션을 받은 현대 조각미술과 매듭 등 다양한 유물이 미처 전시되지 못하고 보관돼 있었다. 권성연 큐레이터는 이들을 시간이 멈춰 오랫동안 박제된 유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문화와 연결해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이야기가 돼 캐나다 대중을 만날 수 있도록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ROM의 한국관이 다양하고 다이내믹한 한국의 역사와 문화예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케하는 플랫폼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ROM 홈페이지, https://www.rom.on.ca/en/whats-on/hats-make-the-korean-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