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전체 검색영역
  • Twitter
  • Facebook
  • YouTube
  • blog

문화산업 현장의 가장 뜨거운 소식을 전문가들이 진단합니다.

우리나라 문화계의 가장 최신 소식부터 흐름 진단까지 재밌고 알찬 정보를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전합니다.

유라시아의 관문, 한류의 메카 헝가리

  • [등록일]2024-04-02
  • [조회] 4037

유라시아의 관문, 한류의 메카 헝가리


글 유권하 헝가리 명예영사



‘한류생활문화한마당 모꼬지 대한민국’이 올해는 중부 유럽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에서 열린다. 2022년 말레이시아와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지난해에는 멕시코에서 개최된 모꼬지 대한민국은 양방향 문화교류를 통해 국가 간 상호이해를 증진하는데 기여해 왔다. 모꼬지 대한민국은 한류 주요 소비국을 대상으로 한식, 미용, 놀이 등 한국의 생활문화에 대한 경험 기회를 제공하여 한류 팬의 관심범위를 대중문화에서 생활문화로 확대하는 프로젝트다. 이번 2024년에는 북방외교 최초의 수교국가인 헝가리에서 한류 팬들을 만나는 것이다. 


오는 10월 초 부다페스트 시내 ‘부다페스트 파크’에서 열리는 2024 모꼬지 대한민국을 앞두고 헝가리 명예영사로 있는 유권하 교수(전북대)가 옥고를 보내왔다. 유 명예영사는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헝가리 한류를 짚어보고 <대장금>, <선덕여왕> 등 K?드라마의 선풍을 회고했다. 또 유라시아의 관문 헝가리는 유럽 내에서도 유독 한국과 정서적으로 궁합이 잘 맞는 나라로 설명했다. 헝가리 사람들은 한국인을 만나면 형제국가라며 친근감을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2024 모꼬지 대한민국을 계기로 헝가리의 한류 상황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헝가리에서 확산되는 한류(Korean Wave) 바람이 거세다. 요즘 부다페스트의 젊은이들은 K-컬처에 푹 빠져 있다. 지난 3월 17일 한국의 인디 록 밴드인 더 로즈(The Rose)가 부다페스트 아레나(Budapest Arena)에서 개최한 <Dawn To Dusk World Tour>에는 환호하는 헝가리 팬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보컬리스트와 기타연주를 맡은 김우성, 다중 악기 연주자인 박도준, 베이시스트인 이재형과 드러머인 이하준이 펼쳐 보인 화려한 가창력과 세련된 퍼포먼스에 헝가리 팬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떼창을 하며 뜨거운 호응을 보여주었다. 이날 밴드가 1시간 40분 동안 연이어 선보인 히트곡 ‘Dawn’, ‘You’re Beautiful’, ‘Red’, ‘Back to me’ 등을 열창할 때마다 팬들은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치유한다’는 메시지에 열광했다. 한 참가자는 유튜브(@clindica)에 “너무 신기해서 볼 때마다 눈물이 나올 것 같다”며 감격해 했다. 이 행사에는 K-팝과 K-힙합(HIPHOP)을 사랑하는 헝가리 전역의 팬클럽들이 모여 한류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헝가리에서 특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남성 13인조 아이돌 그룹인 세븐틴이 수도 부다페스트의 곳곳을 누비며 음악과 댄스 퍼포먼스를 연속적으로 보여줘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들은 2023년 10월 23일에 발매한 새 미니 앨범의 한 곡을 수록한 뮤직비디오를 헝가리에서 촬영했고 공식 ‘Ticktock’ 채널을 통해 다양한 영상을 올렸다. 비록 공식 콘서트를 열지는 않아 현지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지만 K-팝을 사랑하는 헝가리인 들에게는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최대의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헝가리 한국문화원에 따르면 현지 한류 동호회는 장르나 연령대, 지역 등에 편중되지 않고 헝가리 전역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유럽 여타 국가와 마찬가지로 K-팝이나 K-드라마 등 대중문화에 젊은이 들이 열광하고 있지만 가야금이나 부채춤, 조각보 만들기 등 한국 전통 문화와 관련된 동호회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들어 동호회들이 연합해 법인화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2016년 창간됐던 아이돌레이터(Idolater)라는 한국대중문화온라인매거진을 중심으로 19개 한류동호회가 연합해 만든 한유문화재단(Han-You Foundation)이 대표적이다. 한국영화, 태권도, 서예, K-팝, 한국무용, 수공예, 가야금 등 현지의 19개 동호회가 뭉쳐 재단을 창립하고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류동호회가 결성돼 있지만 헝가리처럼 현지 관청에 사단법인 설립 신고를 한 단체는 한유문화재단이 처음이다. 한유라는 명칭은 ‘한국(Han)’과 당신(You)을 잇는다’는 뜻으로 ‘한류(Hallyu)’의 발음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2017년 창립 당시 회원은 200명이 넘고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초대 회장을 맡은 헝가리 무궁화무용단을 이끄는 주잔나 에스테르고미 단장은 “서로 하나가 돼 정보를 공유하고 교류를 활성화해 보자는 취지로 재단을 만들게 됐다”며 “더 많은 헝가리인 들이 한국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활동하겠다”고 했다. 현재 한유문화재단 홈페이지에는 2024년 5월 18일부터 이틀간 열릴 예정인 ‘코리아ON’ 한국문화축제를 홍보하는 내용을 게재하고 참가자들을 모집하고 있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이 행사는 모든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국의 아카펠라 연주 그룹인 메이트리(May Tree)의 공연, 한국 요리 쇼, K-팝, 춤, 태권도 시범, K-뷰티(beauty) 리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될 예정이다. 헝가리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인터액티브 세션도 예정돼 있고 저녁에 열릴 예정인 K-팝 파티는 행사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수익금은 자선단체에 기부된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이 같은 헝가리의 K-컬처 붐은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2007년 한국영화제가 부다페스트에서 처음으로 열렸고 2008년에는 유럽 최초로 헝가리에서 지상파를 통해 한국의 인기 드라마인 <대장금>이 방송을 탔다. 당시 대장금은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K-드라마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선덕여왕, 동이, 이산, 파스타 등 화제의 K-드라마가 잇따라 방영되며 한류 붐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2년에는 부다페스트에 한국문화원이 문을 열며 본격적으로 K-컬처가 헝가리에 스며들게 됐다. 현재 매주 70여개의 다양한 강좌에 약 1300여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고 연중 이벤트, 전시, 행사, 한국어 및 음식 강좌를 통해 다양한 한국의 문화를 선보이고 있다. 규모나 기능면에서 전 세계 33개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문화원 중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헝가리 한국문화원은 유럽 최대 규모의 한식 체험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처음 3개 반으로 시작한 한식 클래스는 11개 반으로 늘려도 강좌를 오픈한지 10분 안에 수강권이 매진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한국문화원 인숙진 전 원장은 “헝가리는 육류 음식이 많은데 한식은 채식 위주의 건강한 음식으로 인식돼서 한식을 요리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하는 현지인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헝가리는 우리나라 고추와 비슷한 파프리카를 음식에 많이 사용해 매운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 고추장이나 김치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2023년 11월 해외문화홍보원과 헝가리 한국문화원이 김치를 주제로 개최한 한식요리 경연대회는 현지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헝가리 최대 미식 잡지 ‘Magyar Konyha’의 소냐 키징게르 기자는 “현지에서 시판되는 김치는 주로 배추나 무로 만든 김치를 찾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평소 김치 재료가 될 줄 몰랐던 파프리카, 모과, 호박 등 헝가리의 대표적인 제철 식재료로 만든 김치들은 아이디어와 외관, 맛 모두 아주 뛰어났다”고 높게 평가했다.

 이에 앞서 2023년 9월 28일에는 한국 문화제 마지막 행사로 사찰음식의 명인으로 꼽히는 비구니 정관스님이 주재하는 사찰음식 강의와 발우공양 행사가 펼쳐져 현지 언론인, 쉐프, 헝가리 정부관계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해리스 파크에서 진행된 발우공양 행사는 ‘자연과 사람은 하나’라는 정관스님의 철학과 함께 단순히 식사하는 행위를 넘어 수행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을 헝가리인 들에게 전달하면서 한국불교문화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 행사에 참가한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부인인 아니코 레바이 여사는 “오늘 처음으로 접하게 된 한국의 사찰음식은 지친 몸과 마음도 치유해 줄 뿐만 아니라 헝가리와 한국, 두 나라를 더 가깝게 이어줬다”고 말했다. 자리를 함께한 김태연 요리 연구가는 “작년에 헝가리 최대 방송국 TV2를 통해 한식이 심층적으로 소개되었는데 이번 정관스님 사찰음식 행사를 통해 헝가리네 건강한 한식에 대한 열기가 한층 더해질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실제로 헝가리 현지인들의 한식에 대한 인기는 날로 치솟고 있다. 부다페스트 중심지역인 국회의사당, 바실리카대성당, 중앙시장 인근에서는 한국 식당에 현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24년 3월24일 기준으로 구글맵에 등록된 한국 식당은 평점 4.8 이상을 받은 ‘정식당’, ‘케이펍’, ‘나눔 코리안 재패니즈 비스트로 펍’, ‘강식당’ 등을 포함해 모두 24곳이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부다페스트 유희정 통신원은 “한식을 즐기는 수요가 시내를 중심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주점, 분식점, 한식퓨전식당이 새롭게 문을 열면서 과거에 비해 다양한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게 됐다. 현지의 이러한 흐름은 한국 음식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방증한다”고 분석했다. 




 헝가리에서의 한류 인기는 위에서 언급한 K-팝과 K-푸드 등 트렌드에 민감한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정부가 오랜 시간 꾸준하게 지원하고 보급해온 K-콘텐츠 전반으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한국의 전통 미술, 춤 공연, 한국 문학, 한글 강좌 등이 골고루 현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헝가리는 유럽 내에서도 유독 한국과 정서적으로 궁합이 잘 맞는 나라로 손꼽힌다. 헝가리인, 즉 마자르(Magyars)인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문헌상의 기록이 없어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학자들은 이들의 조상이 몽골이나 훈족 지역 등 아시아에 뿌리를 두고 있고 헝가리 평원으로 이동해 왔다고 보고 있다. 헝가리어도 우랄어족, 핀 우그리아어로 한국어와 친족 관계이고 실제로 아빠, 엄마 등의 호칭이 apa, mama로 우리와 비슷하다. 호명을 할 때 이름보다 성을 앞세우고 연도, 주소지 등을 한국식으로 배열 하는 점도 똑 같다. 

심지어 디엔에이(DNA) 검사를 하면 일부 헝가리인 들에게 몽골로이드(황인종)의 유전자가 확인되고 몽골 반점이 있는 아기가 태어나기도 할 정도로 닮아 있다. 이 같은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헝가리인 들은 한국인을 만나면 형제국가라며 친근감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갖고 있는 동양적인 정서는 여타 유럽 국가와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이런 이유로 헝가리는 이웃국가들로부터 독특한 문화 토양을 가지고 있는 유별난 나라로 여겨지고 있다. 




 헝가리인 들은 특히 자국 문화에 대해서 자부심이 높고 전통을 지키고 이어가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이들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대중 예술도 좋아하지만 전통적으로 고급 예술로 치부하는 미술, 클래식 공연, 전통 공예 등 순수예술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의 언론인으로 헝가리에 정착한 브라이언 맥린은 ‘Culture smart! Hungary’라는 책자에서 “헝가리인은 모든 형태의 문화가 동등한 가치를 지난다는 견해에 찬성하지 않는다”며 “헝가리에는 아직 ‘고급’, ‘중급’, ‘하급’ 같은 예술의 전통적인 서열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보유한 한국의 문화가 헝가리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월26일부터 오는 6월28일까지 부다페스트 한국문화원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나는 한국 화가다: 이승철의 한지, 자연색 설치전>은 현지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간송미술관 연구원이자 동덕여대 회화과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이승철 교수는 한국의 한지와 자연염색 기법을 유럽지역에 소개하고 있는데 이번 전시회에서 한국의 전통 재료인 한지를 현대미학으로 재해석하고 그 특유의 물성에 대해 오랜 기간 탐구한 결과물로써 ‘문수 보살상’과 ‘달 항아리’ 등 다양한 오브제를 선보였다. 이와 더불어 마련된 한지 워크숍에는 헝가리국립박물관, 헝가리국립국가기록원 등 현지의 문화재 및 미술품 복원 전문가, 제지업체 종사자들이 참여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전통 음악에 대한 헝가리인들의 관심도 남다르다. 지난해 9월 오페라 전용 에르켈 극장에서 국립국악단 단원 70여명이 참여했던 대규모 한국의 종묘제례악 공연을 접한 현지인들은 깊은 공감을 나타냈다. 

 헝가리 음악학 연구소 킴 카탈린 부소장은 “고대 헝가리 대중음악에서 전통 동양 음악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면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확실한 증거는 동양 음악과 헝가리 민속음악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오음계”라고 한국 국악과 뿌리가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인숙진 전 한국문화원장은 “헝가리는 전통에 대한 관심이 많고 타국 전통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 그래서 한국 전통에 대해 더 많이 관심을 갖고 찾아주고 궁금해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 전통음악뿐 아니라 전설적 피아니스트인 프란츠 리스트라는 걸출한 음악가를 배출한 나라답게 서양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다. 지난해 10월 1일 MUPA에서 개최된 부다페스트 라디오 방송 오케스트라의 정기음악회에 참여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공연은 헝가리 관중들의 높은 기대 수준에 걸맞은 화려한 연주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2022년 역대 최연소인 18세의 나이로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을 차지했던 임윤찬은 이날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과 앙코르 곡으로 리스트의 사랑의 꿈과 차이코프스키의 10월을 연주해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홍규덕 주 헝가리 대사는 “임윤찬 외에도 한국문화원 상주예술가로 선정된 피아니스트 한지호가 헝가리 현대음악의 거장 리게티와 쿠르닥의 작품을 두 차례 연주해 호평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상주예술가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한국 예술인을 헝가리에 깊이 있게 소개하기 위해 2020년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홍 대사는 “헝가리는 국민들이 한류에 대한 열기가 대단하다”고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K-컬처의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