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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초국적 수용: K-콘텐츠에서 K-라이프스타일까지

  • [등록일]2022-11-24
  • [조회] 14775

K의 초국적 수용

: K-콘텐츠에서 K-라이프스타일까지





2000년대 이후 인터넷 미디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K-콘텐츠는 이제 수용사회에 있어서 특정 하위그룹의 독특한 문화로 인지되기보다 개인들의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하는 데 중요한 문화적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라이프스타일은 개인이 적극적으로 구성해내는 것으로서 인식되며 개인의 정체성과 동일시된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의 구축은 상당 부분 소비문화에 의존하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이 소비자인 개인의 필요와 욕망에 의해 동원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망에서 K-콘텐츠는 단일한 문화적 특성으로 정의되기보다는 수용자의 해석에 크게 의존하는 만큼 그들의 윤리적 가치와 미학적 취향에 위배되지 않을 문화적 참조 대상으로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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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출처: 셔터스톡


1. 문화횡단 현상으로서의 K-콘텐츠의 흐름


1980년대 홍콩영화에 매료되었고, 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에 열광했으며, 2000년대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즐기는 개인들은 각각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하는 것은 개인의 문화적 취향 혹은 노동의 형태인가, 혹은 젠더나 연령에 기반한 인구학적 특징인가?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은 각자가 적극적으로 탐색하여 축적하는 문화자본(Bourdieu, 1984)에 의해 크게 결정된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문화자본 역시 상당 부분은 아비투스(habitus)를 통해 계급적으로 재생산되고 있지만, 새로운 인터넷 미디어의 등장은 문화자본 형성의 새로운 축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00년대 이후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국가적 경계를 넘어 적극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K-콘텐츠의 소비는 이제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할 만큼 주요한 문화적 취향의 지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에서 2020년 사이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한류 관련 연구를 하며 만났던 시민들은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는 물론 웹툰까지도 일상적으로 소비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K-콘텐츠의 소비는 구별짓기를 위한 취미로써 혹은 자기 계발을 위한 수단으로써, 한국어를 배우고 나아가 반복적으로 한국 여행을 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 자본의 구성은 K-콘텐츠에 갑자기 다다른 것이 아닌, 그 이전에 대만의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홍콩의 영화, 그리고 일본의 ‘쿨재팬(Cool Japan)’ 정책이 적극적으로 소개한 애니메이션과 J-pop 및 일본 여행 등을 경험한 후 혹은 이러한 모든 문화적 소비와 공존하는 가운데 발생하고 있다.

세계화의 문화적 측면은 미디어스케이프(mediascape)의 소비에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구축한 문화적 상상력을 통해 다른 방식의 삶을 꿈꾸게 하고 이를 실천하게 하는 추동력으로 나타난다(Appadurai, 1997). 실제 K-콘텐츠의 소비 이후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한국에서의 유학이나 취업을 위한 장기 거주 혹은 여행을 위한 단기 방문을 실현하는 많은 글로벌 대중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초기 ‘한류’가 감지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까지도 한류는 수용국 사회에서 소수의 ‘독특한’ 취향을 가진 특정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된 하위문화(subculture)로 이해되었다. 흔히 하위문화는 주류 사회의 생활양식이나 문화 전반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 표현 수단이 되기도 하고, 주류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수용되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서 쉽게 사라지는 일시적 유행(fad)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 지형 속에서 K-콘텐츠의 성장은 점점 그 주요 생산자인 창작자와 업계 관계자는 물론 이를 분석하는 학계의 연구자 그리고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한국의 소비자 모두가 K-콘텐츠의 ‘그 이후’를 상상하게 한다. 자본의 재생산을 넘어 이는 그동안 서구에서 비서구권으로 일방적으로 흐르던 문화적 흐름에 의해 ‘한쪽이 문화적으로 종속되는’ 문화변용(acculturation)의 불평등한 관계를 역전시키고, 서로의 문화적 변동을 불러일으키는 문화횡단(transculturation)(Pratt, 2007)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게 한다.


2. 라이프스타일로서의 K-콘텐츠


20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은 크게 노동과 여가의 반복적인 사이클로 구성된다. 노동은 ‘생산적인’ 산업 활동에 대한 참여로 개인들은 이를 통해 구축된 잉여 소득과 가능한 여가 시간을 다시 노동을 재생산하기 위한 미디어 시청과 여행과 같은 다양한 여가 활동에 사용한다. 매년 혹은 격년으로 진행되는 국가별 사회조사에서 개인의 노동과 여가 형태에 대한 질문은 개인의 사회적 계층을 파악하고 사회 전체의 변동을 읽어내는 데에도 중요한 데이터로 사용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시대에 점차 노동과 여가의 이분법은 해체되고 있다. 이미 여가라는 것이 노동의 재생산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순수한’ 노동과 ‘순수한’ 여가의 시간이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의 상보적 관계 속에서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은 사람들이 서로를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삶의 방식을 총칭한다. 이는 개인이 기반하고 있는 특정 사회적?문화적 맥락에서 의미를 만드는 일련의 실천과 태도를 통해 구성된다(Chaney, 1996). 동일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는 동일시가,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는 구별짓기가 동시에 발생한다.

현대사회에서 라이프스타일은 개인이 적극적으로 구성해내는 것으로서 인식되며 개인의 정체성과 동일시된다. 그러나 라이프스타일 구축은 상당 부분 소비문화에 의존하고 있다. 주로 시청하는 영화와 드라마, 선호하는 패션 브랜드, 응원하는 스포츠팀, 후원하는 NGO, 여름휴가에 어디로 여행할 것인지 등의 목록이 모두 종합적으로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을 보여주고 라이프스타일을 구성한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은 개인의 윤리적 가치와 미학적 취향을 반영하고 있기에 곧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 된다(Chaney, 1996). 가령 인류세(Anthropocence)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인간’으로서의 특권과 우월성에 대한 전 인류적 반성에 기반하여 이상기온 현상과 동물권에 대한 관심을 표방하는 윤리적 소비, 젠더와 인종에 따른 차별 금지 등 가치관이 반영된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비를 추구하는 것이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하는 주요한 기준으로 등장할 수 있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이 특정 연령층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때, MZ세대처럼 세대로 명명되기도 하며 좀 더 세분화된 특정 그룹에 제한될 경우 ‘딩크족(DINK)’ 혹은 ‘카공족’ 등과 같이 ‘OO족(tribe)’으로 불리기도 한다. 인류학자인 마페졸리(Mafessoli, 1996)는 현대사회의 개인들이 개인주의에 매몰되기보다는 사회적 존재로서 부족(tribe)이라 할 만한 취향의 공동체로 귀속되려는 특징을 갖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K-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초기의 글로벌 대중은 이런 취향의 공동체로서 같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들과의 동일화와 K-콘텐츠를 낯설어 하던 이들로부터 구별되던 문화적 하위그룹이었을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은 사회집단의 구별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적극 활용되는데 이의 기대효과는 상당 부분 기업에 의해 촉구된다.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이나 콘텐츠를 누가 그리고 왜 소비하는가라는 질문은 소비자들을 특정 라이프스타일로 명명하고 분류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기업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명명은 기업 내에서 사용되다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그 지위를 인정받은 경우도 있다. 독일 자동차기업인 폴크스바겐(Volkswagen)의 골프(Golf) 자동차를 생애주기에서 지속적으로 소비했던 특정 연령집단을 골프세대(Golf Generation)라고 호명했듯 말이다. 어쩌면 케이팝 등 특정 K-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긴 시간 소비했던 이들을 새로운 세대로 분류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하는 하나의 문화적 요소로 등장하는 것이 어떤 더 나은 문화적 지위를 갖는다거나 문화적 우수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하나의 기표로서 상징적 의미의 그물망에 위치한다는 것으로 그 기표를 둘러싼 의미들이 널리 다수에게 공유될 때, 소수의 특정 그룹이 그 문화적 의미를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다수가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으로의 진입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K-콘텐츠의 어떤 단일한 의미가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영화, 웹툰, 대중음악, 클래식, 패션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은 그 소비자 혹은 수용자의 윤리적 가치와 미학적 취향을 반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선택되고 해석되는 것이다.


3. 중국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로서 케이패션(K-fashion)


일상에서 개인의 미학적 취향을 드러내기 위해 일차적으로 개인의 몸(body)과 긴밀히 연계되어 작동하는 것이 바로 패션일 것이다. 한국적인 패션으로 여겨지는 케이패션(K?fashion)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해 온 중국 소비자에 대한 연구를 통해, 케이패션이 중국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하는 데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 살펴보았다(김지윤, 2021). 이는 생산자가 정의하는 케이패션의 독특한 정체성이 존재하기보다 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기호화하고 있는 중국 소비자의 형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의 국제적 인기와 함께 시작된 한류는 곧 한국식 패션스타일을 일컫는 케이패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중국 내 한류의 인기는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황배, 2013). 첫 번째 단계는 1997년?2001년 사이에 한국 드라마의 인기로 시작된다. 한국 드라마는 서구화된 현대 도시 풍경을 배경으로 가족 간의 갈등이나 연인 관계에서의 감정적 부분들을 ‘아시아적’ 가치로 풀어내며 당시 성장하던 중국의 중산층과 청년 세대에게 서구 드라마보다 문화적으로 더 수용이 가능한 가치관을 소비할 수 있게 해주면서 인기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김현미, 2002). 두 번째 단계인 2002년?2006년 사이에 한류의 대상은 한국 대중음악과 영화로 다변화된다. 세 번째 단계는 2007년 이후 ‘신한류’로서 한류에 대한 인기와 반대 정서가 공존하는 단계이다. 한류에 대한 반대 정서는 한류의 영향력이 커지는 데에 대한 중국 내 민족주의적 위기감에 의한 것으로 분석된다(황배, 2013).

인류학자인 김현미(2002)는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서 한류가 확산된 것은 급격한 산업화와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을 경험하면서 발생한 젠더 간 혹은 세대 간 갈등적 요소들을 공통으로 경험했던 이들에게 한국의 콘텐츠가 이러한 갈등을 ‘봉합’해내는 문화적 맥락으로서 참조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문화적으로 더 거리감 있는 ‘서구적 시선(Western gaze)’을 참조하기보다는 ‘욕망의 동시성(a simultaneity of desires)’을 재현하면서도 이에 상응하는 상품문화를 공급하는 K-콘텐츠가 가진 동시성의 맥락이 특히 아시아 수용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가령 중국 시청자들은 한국 드라마가 현대도시의 생활 세계에서 발생하는 가족 간 갈등을 풀어내는 내러티브 방식에 더 쉽게 감응하게 되고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그 의미를 선택적으로 자신에게 더 적합한 방식으로 변용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드라마 속 라이프스타일과 상품문화에 더 익숙해지게 되고, 일상의 문제들을 봉합하는 방식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드라마 속 스타일을 재현하기 위한 소비 욕망이 현실적으로 한국으로의 관광과 소비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 속 한국 배우들의 패션 스타일이 케이패션으로서 적극적인 소비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중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케이패션의 디자인과 판매에 관여하고 있는 이들을 인터뷰하며 케이패션에 대해 질문하였을 때, 동대문 구매 대행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 유학생은 케이패션을 상대적으로 정의해 주었다. “중국인에게 일본 스타일은 두 단계 정도 앞서 있다면 한국 스타일은 한 단계 정도 앞서 있다고 볼 수 있어요. 평범한 중국인들이 그래서 일본 패션을 바로 시도하는 건 쉽지 않아요. 너무 튀어 보이니까. 한국 스타일은 평소 내가 입던 스타일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입을 만한 옷이에요.” (2016년 2월 인터뷰). 케이패션의 특성이나 독특한 스타일 여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많은 응답자들이 중국과 한국의 패션이 전체적인 옷의 맵시 형태, 색상, 소재 등에서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미 동대문패션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상당수의 제품들이 생산 공장의 이전으로 실제 생산지는 중국, 베트남, 스리랑카인 경우가 많았고 디자인의 경우도 이곳을 찾는 주요 소비자인 중국인 소비자에게 맞게 변용된 경우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대문패션시장에서 구매할 경우 여전히 그 옷은 케이패션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관광객 겸 소비자로서 한국에서 케이패션을 소비하는 중국 방문객들도 어느 정도는 이런 의류 제품들의 생산과 유통 시스템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으며 ‘메이드인차이나(Made in China)’ 제품일지라도 케이패션의 ‘진정성(authenticity)’을 결정하는 것은 어떤 본원적인 차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인 차이 그리고 소비의 경험을 둘러싼 시공간이라는 조건이었다. 즉, 한국의 동대문이나 압구정 로데오 거리 그리고 백화점에서의 쇼핑 경험 자체가 케이패션의 소비를 보증해 주는 것이다.



한편, 중국 내에서 케이패션 스타일의 옷을 판매하는 도소매 업자는 한국에서 수입해 갈 의류의 선택 기준은 한류를 소비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취향과 선호도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케이패션의 공통된 특성이나 기준을 도출할 수 없으며 시기마다 유행하는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스타일이 곧 케이패션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Wei, 2015). 중국 상해에서 한국 의류를 구매하는 상점들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한국 디자이너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판매하던 제품을 그대로 들여올 경우 고전을 면치 못했던 반면, 중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해 한국 디자이너가 변용한 제품들의 경우에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한다(신용남, 2011). 동대문에서 생산된 제품을 그대로 들여오면 케이패션으로서 성공할 거라 여긴 한국 상인들이 주로 전자에 해당한다. 이들은 중국 내에서도 한국인 디자이너를 고용하거나 직접 동대문에서 최종 상품을 들여오는 경우가 다수였다. 그러나 이는 중국 내 소비자들이 ‘상상했던’ 케이패션과 일치하지 않았다. 이 상상된 케이패션은 평소 자신들의 스타일과 차이가 있어야 했지만 동시에 일상에서 바로 입을 수 있는 케이패션이 되어야 했기에 과도한 차이를 보이는 옷은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적합성이라는 측면에서 소비자의 상상력은 지속적으로 협상돼야 했고, 중국인 소비자들이 협상해 낸 케이패션에 맞추기 위해 중국 내 상인들은 점차 한국인보다는 중국인 디자이너를 고용하여 ‘중국인을 위한 케이패션 스타일’의 옷을 제작하게 됐다. 이는 한국으로 직접 관광을 와서 쇼핑하는 경우에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동대문에서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상점을 운영하는 중국인 상점주 역시 무엇이 케이패션 스타일을 구성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비자들의 요구를 이해하고 협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케이패션의 정체성은 한류 콘텐츠의 일방적 수용에 의해서가 아닌 그 이미지와 문화적 상징에 대한 수용자들의 해석과 자신들의 미적 기준과의 지속적인 협상의 과정에 의해 변화하고 있다. 한류 수용자는 자국 내 콘텐츠는 물론 서구나 아시아의 다양한 콘텐츠 역시 소비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어떤 메시지나 연출하고 싶은 정체성에 맞게 여러 문화콘텐츠를 소비하며, 관련 소비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기 때문에 정체성과 제품 간에 일대일 관계가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4. 문화적 상호참조를 위한 레퍼런스로서 K-콘텐츠


케이패션의 의미는 각 개인이 내재하고 있는 미적 기준의 맥락에서 해석되고 협상된 후 소비로 이어진다. 절대적 요소가 아닌 상호참조(inter-referencing)의 방식을 통해 케이패션이 정의되는 것이다. 문화간 상호참조란 세계화 담론이 여전히 갖고 있는 일방향적 함의를 탈중심화하기 위한 개념으로서 타문화의 특성을 참조하거나 비교를 통해 차이를 부각하거나 영감을 받거나 혹은 경쟁하면서 상징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가령, 도시들의 경쟁 전략에서 뉴욕, 런던, 파리와 같은 대표적인 글로벌 도시들을 이상화하며 복제하려는 기존의 전략들보다는 시공간적으로 더 많은 유사성을 갖거나 더 쉽게 참조할 수 있는 주변 아시아 도시들 간의 다방향적 상호참조가 발생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국가나 지방 정부 주도의 대량 주택단지 개발을 위해 시장 가치가 지배적인 미국이나 유럽보다는 국가 주도의 싱가포르 주택 정책을 적극적으로 참조하고 있다. 한국식 동대문패션 시장과 같은 생산의 전 과정과 도소매 시장 및 백화점식 상점이 결합된 쇼핑몰이 중국에서 쉽게 참조되는 방식 등도 그러하다. 문화상품의 수용과 해석 역시 수용자인 개인의 의미망 속에서 여러 다국적 문화 콘텐츠들이 재해석되어 자리 잡게 된다. 동아시아에 한정해 본다면 한류 이전에는 대만과 홍콩 그리고 일본의 콘텐츠가 이러한 상상력을 추동하는 텍스트로 글로벌 미디어스케이프를 통해 소비되었다. 이러한 문화 상품은 각 국가의 언어와 민족성 등이 반영된 국가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지만 이러한 차이들이 문화적 위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특정 수용자의 지역적 맥락과 그들의 문화적 해석에 의해 유의미한 메시지가 전달되고 이러한 수용의 강도와 크기가 집단화되었을 때 하나의 영향력 있는 흐름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한류의 한 요소로서 케이패션이 상징적 의미를 가진 하나의 스타일로 부상한 것 역시 케이패션의 절대적이거나 본질적인 속성이 있다기보다는 수용자의 해석에 따라 일본, 중국, 대만, 홍콩, 미국적인 패션의 의미망 내에서 비교되어 특정한 의미가 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유학 온 한 대학생은 자국에서 시청했던 한국 드라마 <주몽>을 좋아했던 이유를 설명하며 주인공이 역경을 이겨내는 모든 과정에 자신을 대입하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글로벌 미디어스케이프를 통해 흡수한 문화콘텐츠는 한국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의 드라마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 드라마들의 주인공 서사를 통해 다른 삶을 상상하고 유학의 길을 모색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드라마들의 소비에서 지속적으로 환기되는 것은 자국의 성우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완벽하게 더빙을 했었는지, 나중에야 더빙 없이 보게 된 드라마들의 원래 배우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실망했는지를 언급할 때이다. 아프가니스탄 20대 여성의 드라마 시청 목록에 이전에 없던 한국 드라마가 포함된 것, 그 메시지는 한국적 문화의 특성보다는 자아 성장의 내러티브라는 점, 그리고 자국 성우들의 ‘우수한’ 더빙에 대한 기억을 통해 초국가적 이주의 회로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집(home)에 대한 노스탤지어(nostalgia)를 구성해내는 것이 이 개인 수용자의 정체성 형성과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


한편, 최근 도한놀이(渡韓ごっこ)에 대한 기사들은 일본의 MZ세대가 팬데믹으로 인해 해외여행이 제한된 상황에서 호텔이나 집에서 한국 음식과 K-콘텐츠를 소비함으로써 여행을 대체하는 새로운 소비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국내에 쏟아진 기사들이 도한놀이를 상품으로 내놓은 한국 기업 측의 상품 설명과 연관돼 있어서 과연 도한놀이의 실체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여 일본인 연구자와 논의해 보았다. 실제 시장 주도로 구성된 현상을 넘어서 많은 10-20대들이 도한놀이를 즐기고 적극적으로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일본 내에서 K-콘텐츠의 소비는 더 이상 소수의 하위 그룹만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일본인이 수행하지는 않더라도 이러한 놀이에 활용되는 콘텐츠와 소비대상들의 맥락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학 연구자인 일본인 교수는 이에 덧붙여 지금 도한놀이로 지칭되는 바로 그러한 행위를 자신이 20년 전에 했을 때는 명명도 없었고 이를 이해하는 주변인들도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이미 일본 사회 내에서 한국 문화의 소비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했다.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하는 한 요소로서 K-콘텐츠의 소비가 진입하고 있는 곳은 그 수용국 사회의 맥락에 따라 불균등하지만 이미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콘텐츠의 문화적 번역과 유통의 구조가 안정적으로 구축된 대만, 일본, 싱가포르 등에서는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하는 중요한 축 중에 하나로 K-콘텐츠가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이며, 중국처럼 민족주의적인 반동이 이러한 흐름을 우회시키거나 미국이나 서유럽에서는 인종이나 연령별로 좀 더 세분화되어 분화된 소비문화가 더 두드러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개인의 정체성과 일상을 특정 라이프스타일로 재현해내는 측면에 주목한다면 라이프스타일은 앞에서 설명했듯, 각 개인의 윤리적 가치와 미학적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 K-콘텐츠는 다른 문화콘텐츠와의 경쟁을 넘어서 이러한 가치관의 반영에 위배될 요소들이 있는지 반추해야 할 시점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문화적인 상호참조에 있어서 K-콘텐츠는 다른 문화에 대한 참조에 얼마나 적극적인가를 고려할 시점이기도 하다. 가령,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담고 있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주 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 묘사는 동시에 이를 소비하고 있는 바로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위배적 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배경의 전 세계 수용자들이 K-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에 반영하고 그 의미를 구축해가는 것에 흥분하고 열광하는 단계를 넘어, 이들의 윤리적 가치관과 미학적 취향에 K-콘텐츠가 소구될 때, 그 다양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필요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이를 위반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감수성과 정서에 대한 적극적인 문화적 참조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김지윤 (2021). 상상의 케이패션(K-Fashion)과 문화적 상호참조: 동대문 패션시장을 둘러싼 초국적 이동. 《Homo Migrans》, 25권, pp. 127-165.

김현미 (2002). ‘한류’ 담론 속의 욕망과 현실. 《당대비평》, 19권, pp. 216-233.

신용남 (2011). 《중국 소비자들의 한류 패션상품 구매동기 연구 ? 중국 상하이 치푸로 시장을 중심으로》. 한성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마케팅 전공 석사학위 논문.

황배 (2013). 《한류문화가 중국여성소비자의 의류구매행동에 미치는 영향 - 중국 남경 지역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의류학과 브랜드매니지먼트 및 텍스타일정보디자인학전공 석사학위 논문.

Appadurai, A. (1997). Modernity at large: Cultural dimensions of globalization.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Bourdieu, P. (1984). Distinction. Harvard University Press.

Chaney, D. (1996). Lifestyles. Routledge.

Maffesoli, M. (1996). The time of the tribes: The decline of individualism in mass society. Sage Publications.

Ong, A. and Roy, A. (2011). Worlding cities: Asian experiments and the art of being global. Wiley-Blackwell.

Pratt, M. L. (2007). Imperial eyes: Travel writing and transculturation. Routledge.

Wei, X. (2015). 《중국패션수입업체들의 한국 동대문 상거래 서비스 로열티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무역물류학과 국제상학전공 석사학위 논문



글ㅣ김지윤 한성대학교 인문과학연구원 전임연구원

     (출처 : 한류NOW 2022년 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