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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씨나 강해상 아닌 내 이름 석자로 기억되길 연기에 매우 진심인 편, 배우 손석구

  • [등록일]2022-11-23
  • [조회] 14476


구씨, 강해상 아닌 손석구로 기억되길
연기엔 매우 진심인 편, 손석구


<멜로가 체질>을 봤을 때 썸녀의 눈에 직접 술잔을 갖다 대고 ‘그대 눈에 건배!’를 무미건조하게 외치는 그가 정말 얄미웠다. 캐릭터가 천상 그 배우일 것만 같아서.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나 <범죄도시2>의 강해상도 캐릭터와 배우가 쉽게 분리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게 봤던 <연애 빠진 로맨스>는 그나마 ‘왜 저런 배우가 이제야 나왔지?’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올 한해 여자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주인공은 단연코<나의 해방일지>의 ‘구씨’였다. 지금까지 없던 매력, 새로운 연기 스타일로 시청자를 단숨에 매혹한 주인공, 바야흐로 ‘손석구 전성시대’다.




힘을 들이지 않는데 힘이 느껴지는


 배우 손석구를 인터뷰하기 전 <나의 해방일지> 다시 돌려 봤다. 1회부터 16회까지, 에피소드들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손석구가 연기한 구씨는 다시 봐도 매력이 있었다. “나 빨리 이름 지어줘!” 이름을 붙이지 않은 염소를 잡아먹었다는 미정이 옆에서 이름을 지어달라 보채는 구씨나 “확실해? 봄이 되면 다른 사람 되어있는 거?” 무심한 표정으로 뒤돌아 묻는 구씨는 드라마가 끝난 수개월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날것의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번에 흥미롭게 눈여겨본 건 손석구의 연기였다. 전혀 힘을 들이지 않는데 상당한 내공과 힘이 느껴지는 연기. 그런 연기는 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 걸까. 그에게 묻고 싶어졌다.


 “대본을 찬찬히 뜯어 보면 캐릭터가 미묘하게 변해요. 그건 드라마를 다시 돌려볼 때도 마찬가지고요. 꼭 큰 사건이나 큰 다툼이나 큰 계기가 있어야만 변하는 게 아니에요. 사소한 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게 보여요. 느껴져요. 그렇게 새벽 안개처럼 캐릭터가 조금씩, 천천히 내게 스미는 같은 느낌. 그게 연기의 매력이죠.”





실제 파병 경험, <DP>의 임지섭 대위 역할에 도움 받기도 
 

 그에게는 매우 특이한 이력이 있다. 이라크 아르빌의 자이툰 부대에 파병을 자원해 3진 2차 병력으로 차출된 것이다 2005년 후반 ~ 2006년 6월의 일이다. 단 한 명의 기사 보병을 뽑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나중에 연기 오디션을 보면서도 그는 그렇게 치열한 경쟁률은 뚫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의무대지만 통신병도 겸했다. 또한 통역도 겸해 주둔지 외에 다양한 곳을 다녔다.


 “군인 체질이냐고요? 생각해보니 조금은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아버지가 사주신 장난감을 갖고 놀던 어린시절부터 해병대 UDT 네이비씰 등을 꿈꿨으니까요. 군대가 힘들다고 하는데, 믿기지 않겠지만 저는 파병을 더 오래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일반 사병은 최대 6개월까지만 가능했어요. 할 수 있는 최대한 한 거죠. 그때의 경험이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 하는 연기에 도움이 된 것은 맞아요.” 



연기가 준, 따스한 햇살같은 행복


 다큐 속에서 보던 전쟁과 실상은 많이 달랐다. 파병 중 통역 역할로 다양한 곳을 다닌 그는 꿈을 접고 파병생활 중 모은 월급으로 남동생이 유학중이던 캐나다로 떠났다. “한국에서 안 산 지 이미 오래여서 적응하는 데에 두려움이 있었어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인 이유도 있었고요.” 어렸을 때부터 육상 등 운동을 좋아했기에 캐나다에서도 농구선수라는 꿈을 꾸고 연습했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했다. 무료한 어느 날 액팅 스쿨을 검색해 무작정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연기 공부를 시작했다. 연기와 연출을 할 때의 감정은 ‘행복’으로 다가왔다.
“캐나다 유학 중에 다니던 학교에서 처음으로 연극을 시작했을 때 3개월 동안 독백극을 했어요. 관객을 모아서 1시간짜리 독백극을 시킨다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런데 공연이 예정돼 있던 날, 집에서 학교로 가는데 왠지 경치가 되게 좋았어요. 햇살을 맞으며 가는데 왠지 기분이 좋았죠. 그러고는 머릿속으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생각하게 됐는데 그런 과정이 왠지 되게 낭만적으로 느껴졌어요.”


 

무심한 듯 알고보면 낭만파


 알고 보면 낭만파. 대학에서 필름 연출을 공부하며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의 꿈을 가졌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로에서 연극을 시작했다. 기본기부터 탄탄하게 쌓기로 한 것이다. 배우 최희서와는 단편영화, 연극을 함께 하며 친분이 시작됐다. 최희서가 손석구에게 추천해준 작품의 오디션은 신기하게도 모두 합격했다고 한다. 배우가 배우를 알아본 격이다. 연극 <사랑이 불탄다>를 계기로 미드 센스8의 관계자의 눈에 띄어 캐스팅 되었다. 배두나와의 공동 출연작, 그가 동경하던 워쇼스키 감독의 작품이었다.


  “배두나 씨와 격렬한 격투 신 소화를 위해 6개월 동안 연습을 했어요. 워쇼스키 감독님이 한국 영화는 하나의 장르 안에서도 다양한 요소를 담아내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했는데, 그런 면을 투영하고 싶었어요. 액션 신이지만 사랑과 슬픔 같은 감정도 느껴지고, 어떻게 보면 남녀 간의 섹스처럼 보이기도 하는 액션 장면을 연출한 거죠. 촬영 당일에는 정작 액션보다 더위 때문에 힘들었어요(웃음).”




놀랍게도 액션보다 ‘멜로’가 체질

 
  2019년 제55회 백상예술대상에서<뺑반>으로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최고의 이혼>으로 TV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당시 시상식 참석자 중 두 부문 모두 노미네이트된 배우는 그가 유일했다. 2021년 그가 전종서와 촬영한 정가영 감독의 <연애 빠진 로맨스>가 개봉했다. 연애는 왠지 부담스럽지만 로맨스는 하고픈 잡지사 칼럼니스트 ‘박우리’ 역할이었다. <멜로가 체질>에서도 느낀 거지만 손석구는 액션보다 ‘멜로’가 체질이다. <연애 빠진 로맨스>는 놀랍게도 배우 손석구의 ‘첫 장편 주연작’이다.

 

 “사랑에 있어선 진심이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데이팅 앱을 다운로드하고 칼럼을 쓰는 건 주변 인물들에 의한 타의적인 선택, 결정이지만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것만은 우리 내면의 진심이니까. 칼럼은 예민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제작사, PD님과 감독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이 함께 많은 고민의 과정을 거쳤다. 개인적으로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입장에서 ‘우리의 본심이 무해하다는 걸 알리려면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 이런 지점들을 많이 고민했어요. 이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저로선 가장 큰 수확이죠.”



전 세계 여성들의 추앙과 ‘덕질’ 낳은 ‘구씨’


 2002년 4월부터 방영된 JTBC 토일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그에게 랜드마크로 우뚝 선 작품이다. 그를 랜드마크처럼 우뚝 세운 작품이기도 하고. ‘견딜 수 없이 촌스러운’ 산포 삼남매의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운 행복소생기에서 그가 맡은 캐릭터 ‘구씨’는 좀체 말이 없고 맡은 일만 묵묵히 해내는, 하지만 엄청난 비밀을 품고 있는 산 같은 사내다. 손석구는 이 드라마로 ‘추앙’과 ‘덕질’을 낳았다. 덥수룩한 수염과 정리되지 않은 머리, 늘어진 티셔츠와 귀찮은 듯한 말투로 전국을 ‘구며들게’ 했다.


 “박해영 작가님 작품이라 마음이 가서 배역을 수락했어요. 감독님은 구씨에 대해서는 따로 디렉션이 없으셨어요. ‘구씨는 이래야 돼!’ 이런 건 아예 없으셨고 대신 질문이 많으셨어요. 특이하죠? 구씨는 왜 이럴까, 왜 저럴까 하고요. 덕분에 저는 구씨에 대해 열심히 연구하고 스스로 답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대신 막상 촬영장에 가면 ‘오늘 잘 부탁해!’ 정도까지만 하시고 제게 맡기셨어요. 거의 방생하는 수준이었죠. 그래서 시청자분들이 실제 있을 것만 같은, 살아있는 구씨를 만난 게 아닌가 싶어요.” 
 
섹시한 빌런 뒤에 숨은 엄청난 액션 노동


 <나의 해방일지>과 더불어 그를 올해 최고의 배우 반열에 올려놓은 <범죄도시2는 해외 촬영이 불가능해서 아예 세트를 짓느라 일정이 늘어진 영화다. 크랭크업이 2021년 6월이었는데, 그 뒤로도 밀렸다. 초조함 속에 개봉을 기다린 영화는 공개되자마자 누적 관객수 ‘천만’을 넘는 대기록을 세우며 그야말로 홈런을 날렸다. 그 속에는 전작의 장첸을 잇는, 섹시한 빌런 강해상이 있었다. 일차원적이고 극의 목적을 향해 달리는 캐릭터였다. 그는 캐릭터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초콜렛을 먹으며 몸을 불렸다. 무려 10kg를 증량했다.


 “사람들은 제가 <나의 해방일지>와 <범죄도시2>를 정신없이 찍은 줄 알아요. 제가 <범죄도시2>의 시나리오를 받은 게 2019년이니까 정말 어마무시하게 늘어진 셈이죠. 다 찍고 나서도 팬데믹으로 개봉 시기가 계속 밀리면서 시간이 꽤 흘렀고요. 그러니까 전 바쁘게 작품 사이를 오간 게 아니라 그 간극 속에서 기다린 거에요. <범죄도시2>는 제게 엄청난 ‘노동’ 이었어요(웃음). 말도 못하고 많은 액션 씬이 있었으니까. 그러면서도 ‘상품’은 이렇게 만드는 거구나, 깨닫게 해준 작품이에요. 내가 상품화에 일조했구나, 저는 그게 뿌듯해요.”




혼자 있을 땐 주로 유튜브를 본다는 그. 격투기를 볼 것 같지만 ‘먹방’을 즐기고, 동물이 등장하는 다큐와 과거 댄스 가수의 댄스를 리뷰하는 채널을 즐겨본다. 영화 평론, 농구, UFC 콘텐츠를 보거나 의외로 도올 김용옥 선생을 좋아해 그의 강의 영상도 챙겨본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잠 못 자고 괜히 냉장고를 열어보기도 한다. 요즘 그는 눈을 뜨고 현실의 꿈을 꾼다. “요즘은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게 목표예요. 일을 잘하면서, 일상도 잘 보내고 싶어요. 그리고 스타는 아니고 멋있는 배우가 되는 거. 손석구라는 이름 석자에 믿음이 생기는 그런 크레딧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글 임지영(객원에디터) / 사진 샛별당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