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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가치와 의미②]
글로벌 환경에서 K-콘텐츠의 가치와 의미 철학 생성하기
K-Pop
K-콘텐츠가 아시아인에서 서양인들까지 열광하게 한 이유와 이를 통해 글로벌 시대 K-콘텐츠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려는 게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지난달에는 K-드라마가 글로벌 반응을 얻은 비결을 살펴봤고, 이번에는 K-Pop 차례다. 글로벌한 히트를 한 K-드라마는 ‘오징어 게임’ 등 자본주의 무한 경쟁시스템의 부작용에 관한 내용을 담은 작품이 많음을 지적했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K-콘텐츠는 자본주의로 인한 경쟁사회의 잔인함을 먼저 경험한 서양의 국가일수록 더욱더 공감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음도 말한 바 있다. 한국은 콘텐츠로 무한경쟁 시대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 가치’를 생성하기 좋은 조건이다. BTS가 세계 청소년들의 폭력 방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런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K-Pop이나 K-드라마 모두 같은 토양에서 나온 콘텐츠다. 자본주의의 과도한 경쟁에 청소년들은 방치되거나 소홀히 다뤄질 수도 있는 사회적 약자 같은 존재다. BTS는 유니셰프 등을 통해 청소년 폭력 방지에 앞장서왔다.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이 일을 해왔다.
이런 행위들이 일관성을 가지며 하나씩 뿌려놓은 점들이 선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이는 K-Pop 아티스트들이 콘텐츠속에서 가치와 의미, 철학을 생성함을 의미한다. BTS는 인권관련문제에도 목소리를 낸다. 2020년 미국내 흑인인권 운동 ‘BLM’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오강선 인덕대 교수가 쓴 ‘디지털 혁명 사용 설명서’를 보면, 산업화 시대에는 매출과 이득을 많이 올리는 아티스트가 떴다면, 디지털 시대에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아티스트가 뜬다고 한다.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몇몇 서양 아티스트들의 경우를 살펴 보자. 최고의 래퍼로 손꼽히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는 흑인의 억압된 삶과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아 ‘힙합계의 마틴 루터 킹’으로불린다. 그는 2018년 래퍼 사상 최초로 퓰리쳐상을 수상했다. 당시 퓰리처상 위원회는 “그의 앨범 ‘DAMN’이 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이 지닌 복잡성을 강력한 글과 리드미컬한 활력으로 묶은 명곡모음”이라고 평가했다.
흑인 래퍼들이 간혹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노래로 발표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는 그 누구보다도 진정성을 인정받고 있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태어나고 자랐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콤프턴은 가끔 총 소리도 나기도 하는 우범지대가 있다. 이 곳 출신 흑인이 스포츠 선수나 대중 예술가로 돈을 많이 벌면 자신의 고향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켄드릭 라마는 서부힙합의 대표주자로 큰 돈을 벌고나서도 자주 고향을 방문하며 어릴 때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의 불운 해진 삶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는데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고향 친구를만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통해 흑인의 억압된 삶과 인종차별 개선에 대한 메시지를 노래로 전하기 때문에 ‘가짜 컨셉의 이야기’가 아닌 ‘진짜 이야기’로 인정받고 있다.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가 10대에 이미 전 세계 MZ세대의 고민과 우울을 대변할 수 있었던 데에는 환경운동 가치를 실천하고 있는 게 크게 작용했다. 그의 노래인 ‘when the party‘sover’ 뮤직비디오에는 빌리 아일리시가 바다를 오염시킨 검은 기름 눈물을 흘리는 섬뜩한 정면이 나온다. 빌리 아일리시는 얼마전 내한 공연의 수익 1%를 환경보존 운동에 사용해달라고 기부했다. 외국 아티스트의 가치 생성 사례와 함께 BTS의 가치 전파의 구체적인 매카니즘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BTS와 방시혁 프로듀서가 가장 잘한 것은 아이돌을 아티스트로 만들어 글로벌 무대에 내놓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과거 아이돌에 대한 저평가를 피해갈 수 있었다. 과거 아이돌들은 음악적 완성도 보다 귀여움과 퍼포먼스, 화려한 패션이 강조됐고, 사회적 메시지는 희석됐다. BTS는 이 점을 바꿔나갔다. 아티스트는 세상에 할 얘기가 있는 예술인이라는 명제 아래 가치를 담은 아티스트를 지향했다. BTS는 세상에 이야기를 던지는 아티스트다. 학교-청춘-자기애(러브 유어셀프)-가면(페르소나)-팬데믹(팬데믹 3부작, ‘다이너마이트, 버터, 퍼미션 투 댄스’)의 소통 부재를 연결의 사회로 바꾸자 등 이야기 주제를 잘 잡았다. 결국 어떤 가치와 의미, 철학을만들어내야 할지를 BTS의 사례를 참고하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K-Pop이 콘텐츠 진화로 가는 데 있어 중요한 지점을 살펴봐야 한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아이돌 그룹을 소비하는 수용자 환경 변화를 거론해야 한다. 과거에는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아이돌을 선호했다면 지금은 조금 더 가치있는 일과 철학을 가진 아티스트이다. 팩트와 팩트를 연결시키는 정보는 널려있다. 이제 지식의 ‘재정의’ 시대다. 관점 있고 가치를 생성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 일을 하는 아티스트들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BTS의 RM과 슈가, 제이홉 등과 인터뷰를 해보면 음악과 주위 환경에 대해 자신의 관점으로 풀어내는 해석력이 있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데, BTS는 여기에 부합한다. RM의 유엔 연설에는 메시지는 물론이고 일관성을 갖추고 있다. BTS는 단순히 이야기만 던지는 게 아니다. 이야기의 포장지는 ‘Idol’이고 내용물은 ‘Artist’다. 이야기는 철학과 문학 등의 스토리를 가미해 퍼즐처럼 진행되기도 한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로 가짜 행복이 지배하는 사회를 풍자하기도 하고, 싱클레어라는 청년이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맞딱뜨리는 세계를 보여주는 ‘데미안’ 철학과 문학 퍼즐 등이 가사에 등장한다. 그래서 BTS는 이례적으로 가사가 분석의 대상으로 된 지 오래다. BTS의 스토리텔링 생성 방식의 시작은 멤버들 각자가 내면에 들어가기다. 이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서 출발하는데, 방시혁 프로듀서는 멤버들로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도와준다. 또 부족한 이야기와 멤버들이 좀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믹스테이프를 통해 더욱더 솔직하게 할 수 있게 했다. 여기서의 가사는 좀 더 날 것이고, 거친 부분도 있다. 오히려 내면이 더 잘 보여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RM-슈가-제이홉 등이 믹스테이프를 발표했는데, 멜로디 라인 멤버들도 믹스테이프 발표를 기대하고 있다.
방시혁 프로듀서는 BTS로부터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연습생과 신인 시절부터 “너희들 요즘 무슨 생각하니?, 뭐 없니?”라는 질문을 계속 던졌다. 그러면서 BTS와 방시혁의 소통방식에 차별점이 생겼다. 그들은 차별에 저항하며, 탈중심적인 리좀 방식의 소통을 추구했다. 이런 BTS를 포스트 포드주의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동준은 ‘케이팝 브랜드 전략: 아이돌 시스템 담론의 포스트 포드주의적 이해’에서 기존 아이돌 그룹 제작을 포드주의 생산방식의 한계로 비유해 탑다운 브랜딩 방식으로 설명했다. BTS는 탑다운이 아닌 예술적 정체성 구축이 중요한 부분이 됐다고 말했다. 아이돌 그룹도 기업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진화중임을 BTS를 통해 설명했다.
그런데 이것의 균열이 일어났다. BTS는 지난 6월 14일 데뷔 9년만에 단체 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개인활동에 돌입한다고 밝힌 사실은 K-Pop 시스템의 모순과 한계를 드러냈다. 그때 올린 유튜브 영상 ‘찐 방탄회식’은 BTS 행보중 가장 중요한 국면으로 남을 듯 싶다.
“K팝 아이돌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다. 계속 뭔가를 찍어야 하고 해야 하니까 내가 성장할 시간이 없다.”(RM)
“가사가,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억지로 쥐어 짜내고 있었다. 지금은 진짜 할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슈가)
자본과 시장의 논리는 아티스트를 보장하지 않고 아이돌로 매출을 올리는 게 급선무다. 멤버들은 팀으로 끌려다니면서 하고 싶지 않은 걸 하게 됐다. 본인들이 하고싶은 건 정작 다른 것이었다. 아픔과 상처는 묻어두지 않고 드러내야 발전한다. BTS의 글로벌 인기는 진짜 자신들의 이야기를 던진 데에서 비롯됐다. 억지로 가짜 이야기를 던질 수는 없다. 따라서 팀 활동 중단은 전화위복의 기회라고 말하고 싶다. 이들은 진정성이라는 차별성으로 성공했는데, 점점 진정성이 약화되고 기계적, 관습적인 상황이 이어지면서 일종의 ‘번 아웃’이왔다. 힘들 때는 멈춰야 하는데, 그것이 현재로서는 개인활동이다. 그룹활동이 산업적이라면, 개인활동은 아티스트적이다.
RM은 “방탄소년단을 오래 하고 싶고, 오래 하려면 내가 나로 남아 있어야 한다”라고 했듯이 노래 부르는 게 여전히 좋다는 이들에게 이번 ‘사건’은 지속가능한 활동에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과정이자 절차라고 할 수 있다.
K-Pop의 좋은 가치의 생성을 막는 요인도 봐야 한다. 이는 외국 언론의 K-Pop에 대한 부정적 인식 변화를 보면 도움이 된다. 외국언론들이 오랜 기간 K-Pop을 부정적인 면을 ‘공장형 아이돌’로 표현해왔다. 기계로 찍어내 인간적인 느낌이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샤이니 종현의 극단적 선택 후에는 미국 연예 전문지 버라이어티지가 한국의 연예산업은 헝거 게임을 만든다고 했다. 한국의 K-Pop 산업이 잔인한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뜻이다. 승리의 버닝썬 사건 후에는 K-Pop이 과연 순수한지를 따졌다. K-Pop 소비문화는 이런 부정적인 이슈들과 연관되어 변화 되기도 한다. 이 세가지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가 K-Pop의 성장이고 가치, 의미 생성의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아티스트가 뜬다고 했다. 여기에는 팬덤의 활동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과거에는 막연한 팬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쳤다면 지금은 ‘찐팬’의 팬덤이 중요하다. 찐팬들은 아티스트에게 끊임없이 좋은 가치를 실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는 가수가 인기 순서대로 매출 구조를 만들어냈다면 지금은 가치와 문화, 의미를 가진 아티스트라면 인기가 높지 않아도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전 세계 K-Pop 팬들 90%, 아이돌 기획사에 기후 행동 원한다”라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스타의 이름으로 하는 나무심기와 숲조성, 탄소중립 이슈, ESG 경영에도 팬덤이 나선다. 지속가능한 K-Pop을 위해 음반제작을 친환경 소재로 해 탄소배출을 줄이자는 운동이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MZ세대가 자발적으로 결집한 케이팝 포플래닛 등은 ‘죽은 지구에 K-Pop은 없다’는 캠페인을 전개하며 K-Pop 팬덤을 결집시키고 있다.
시(詩)에도 서정시, 서사시, 참여시 등이 있듯이 K-Pop에도 여러 가지 장르가 있고 다양한 콘텐츠가 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가치를 만들어내는 한국의 아티스트도 많이 나와야 한다. 이는 한국 아티스들이 글로벌한 관심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한다. 가수(아티스트)에게 가치라 하면 주로 기부나 선행쪽으로만 생각하는데, BTS처럼 청소년 폭력 방지일 수도 있고, 환경문제일 수도 있다. 가치는 가수(아티스트)의 수만큼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아티스트가좋아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싶은 일에서 시작해 각자에게 맞는 가치를 추구해나가면 된다. BTS에 이어 가치를 만들어내는 또다른 K-Pop 아티스트과 배우들이 계속 나오길 바란다. 이는 K-Pop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데 좋은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따라서 글로벌 콘텐츠 시대에는 한국적 토양 아래서 나오는 스토리와 그속에서 가치와 의미, 철학을 생성하는 일에 K-Pop 아티스트와 제작자들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글 서병기 선임기자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