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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게임의 지속가능성
오락에서 출발해 스포츠로 성장한 게임은 장치(device)에 상관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언제든 보고 즐길 수 있는 수요 맞춤형(on-demand)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다. 게임은 사람, 정보, 기계가 초연결된 콘텐츠 산업 혁명을 더욱 강하게 주도하며 모두의 일상을 가장 오랫동안 차지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경험재나 여가 오락의 수단이 아닌 우리 사회에 깊이 침투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주류 문화이자 사회문화적 변화의 요인으로 게임과 게임문화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 게임은 이미 성별과 세대를 관통하는 소통의 장으로, 재미 추구의 본능을 전파하는 매체로 우리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전통 스포츠의 매출과 인기를 따라잡은 e스포츠는 게임 산업 강국으로의 재도약을 모색하는 한국의 성장 동력이자 지역 활성화 정책의 중심에 있다. 급팽창하는 게임 산업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엇갈리는 가운데 게임의 순기능이 게임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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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ZCJ6SvFB32Q
1. 게임,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
전 세계 23억 명 이상이 게임을 즐긴다고 한다. 3명 중 1명은 직접 게임을 하거나 e스포츠 경기를 시청한다는 말이다. 오락에서 출발해 스포츠로 성장한 게임은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수요 맞춤형(on-demand)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다. 게임의 장르는 다양해졌다. 여성, 어린이, 중장년층 이용자가 증가하자 남녀노소 모두의 취향을 고려하여 차별화된 재미를 제공하는 게임이 많아졌다. 액션성이 강조된 RPG(Role-Playing Game)나 FPS(First Person Shooter) 종류의 게임, <팡(Pang)>으로 대표되는 미니게임이 장악하던 게임시장은 여성향 코디네이션 배틀 게임(<아이러브니키>), 어린이 정서발달 지원 증강현실 게임(<뽀로로월드>), 중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올드 PC게임(<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 등을 꾸준히 출시하며 한결 풍성해지고 있다. 누구나 원하는 게임을 골라 즐기는 시대가 왔다.
게임의 세계로 접속하는데 필요한 조건은 더 자유로워졌다. 스마트폰은 여전히 가장 간편하고 강력한 장치(device)다. 하드웨어의 성능이 개선되고 통신 서비스가 향상될수록 사람들은 게임타이틀을 구매하기보다 게임 앱(application)을 저렴하게 다운로드받아 간편하게 게임을 한다. 동일한 게임을 하나의 서버에서 다양한 디바이스로 즐기는 ‘크로스 플레이’ 서비스도 확대되고 있다. 친구는 플레이스테이션(PS)으로, 나는 아이폰으로 같은 맵(map)과 모드(mode)에서 팀플레이가 가능해졌다.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는 모든 플랫폼에서 완벽한 크로스 플레이를 지원하는 최초의 게임으로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는 디바이스만 있다면 어디서든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게임을 보는(watching) 경험은 더욱 혁신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게임문화는 ‘보는 게임’이 주도하고 있다. 게임 이용자들은 전통 스포츠 중계나 예능방송을 보듯 강한 몰입감과 재미를 느끼며 게임을 시청한다. 프로게이머의 수준 높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며 대리만족하거나 아마추어 크리에이터(creator)의 실황을 지켜보며 동질감을 느낀다. 원한다면 단순 시청자를 넘어 코치가 되어 플레이 방향을 지시하거나, 게이머와 팀을 이뤄 과제를 해결하며 미션(mission)을 완주할 수 있고, 아무 말 없이 함께 사막을 횡단하는 여행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는게임방송은 직접 하는(playing) 것보다 노력과 피로를 소모하지 않는 최적화된 노-스트레스(nostress) 엔터테인먼트로 각광 받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투자 경쟁과 기술혁신으로 클라우드를 활용한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확대되면 넷플릭스처럼 더 많은 사람이 고품질의 게임을 언제든 보고 즐길 수 있게 된다.
소셜 미디어, OTT(Over The Top) 사업자는 한정된 ‘이용자 시간’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게임과 생존 경쟁을 시작했다. 2017년 잠(sleep)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넷플릭스 최고 경영자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2019년 11월 디즈니+가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걱정 없다. 우리가 경쟁하는 것은 포트나이트다. 패한다면 그들에게 패할 것이다”라며 경쟁대상을 바꾸었다. 앞서 말했듯 <포트나이트>는 모든 플랫폼을 지원해 이용자가 2억 5천만 명이 넘고 동시 접속자만 최대 1천만 명에 이르는 강력한 네트워크를 발생시킨다. 이는 넷플릭스 가입자(1억 5천만 명)를 가볍게 상회하고 페이스북보다 더 많은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수치다.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은 미국 10대의 40%가 매일 평균 2시간씩 접속하는 이 게임이 이미 메신저와 소셜 미디어 서비스를 대체하고 있으며, 포스트(post)-페이스북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처럼 게임은 사람, 정보, 기계가 초연결(Hyper-connected)된 콘텐츠산업 생태계를 더욱 강하게 주도하며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일상 곳곳에서 가장 오랫동안 현대인을 사로잡고 국경을 초월한 커뮤니티를 생성할 것이며 더 많은 기업의 투자와 정부의 관심을 받을 것이다. 우리 안에 깊이 침투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 게임의 역할과 기능을 좀 더 면밀히 조명하고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2. 게임의 사회적 기능, 소통과 놀이의 힘
게임시장 전문 조사기관 뉴주(Newzoo)를 비롯한 국내외 주요 통계는 게임이 10~20대 젊은 남성의 전유물에서 벗어난 지 오래라고 말한다. 특히 한국은 전체 게임 이용자의 40%가 여성이고, 40~50대 중년 세대도 절반 이상은 모바일 게임을 하며, 70대 할아버지와 10세 손녀가 ‘도티&잠뜰의 마인크래프트’ 게임방송을 거실 TV로 함께 보는 나라다. 세대와 성별,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게임의 강력한 대중성과 접근성은 개별 이용자가 게임을 통해 사회로 통합되는 사회화 경험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이용자 간 소통과 다양성 인식을 증가시키게 된다.
또한, 게임은 자발성과 오락성을 작동원리로 하는 순수한 ‘놀이’로서 의학, 교육, 마케팅 등 비게임 분야와 융합하며 일상으로의 침투력을 계속해서 높이고 있다. 게임은 다른 분야를 게임 콘텐츠 속으로 수용해 장르 스펙트럼을 넓히기도 하고, 게임과 전혀 무관한 분야에 스며들어 그 속성을 변화시켜 재밌고 새로운 경험을 창조하기도 한다. 이처럼 게임은 단순한 여가 오락의 수단을 넘어 사회문화의 여러 부분으로 확대되며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록 문제처럼 게임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도 여전히 공존하고있다. 게임 이용자의 66%는 이러한 부정적 분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게임의 사회적 책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게임이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외에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는 온라인 플랫폼으로서의 소통 촉진 능력과 놀이라는 특성에 기인한 파급효과에 주목하고자 한다.
2-1. 여성과 게임 : 젠더 커뮤니케이션 촉진
‘메갈리아’ 커뮤니티 탄생을 전후로 온라인 세상에서는 페미니즘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제적 흐름이고 문화콘텐츠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 게임문화 속 여성 혐오 문제는 아주 심각했다. 게임 이용자의 상당수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여성 게이머들은 성별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심각한 부정과 비하, 언어폭력, 성폭력에 시달려왔다. 이는 게임 산업이 유독 남성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남성에 의해 성장하면서 강력한 남성 연대 카르텔을 형성, 남성 세계에서 만들어진 왜곡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인식이 지속적으로 학습되고 재생산되어왔기 때문이다. 결투, 전쟁, 파괴, 승리 등 게임의 주요 주제는 소위‘남성성’으로 인식되었던 영역으로 게임은 철저히 남성에게 적합하고 여성이 해서는 안되는 거친 오락으로 여겨졌다. 남성들은 게임 속 여성 캐릭터를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종속적인 보조자의 역할만 맡김으로써 자신들의 남성성을 강화하고 과시해올 수 있었다.
주류 게임인 <오버워치>, <리그오브레전드>, <배틀그라운드> 국내 전체 이용자의 96.2%가 성차별 문제를 인식하고 있고, 71%는 본래 성별과 관계없이 성차별을 경험했다고 한다. 여성 혐오 문제를 체감할 수 있게 된 이유는 이 게임들이 음성대화(팀보이스)를 통해 상대의 생물학적 성별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반감을 즉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 이들 커뮤니티에서는 ‘혜지’라는 단어로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 유행했다. ‘혜지’는 수동적인 플레이로 팀에 민폐를 끼치는 가상의 여성이나 실력이 떨어지는 게이머를 또다시 여성의 이름을 붙여 무시하고 낙인찍는 멸칭이자 욕설로 게임문화 속 만연한 여성 혐오 인식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온라인 페미니즘 열풍과 더불어 게임 시장에서 여성의 구매력이 높아지고, 여성향 게임이 더 많이 출시되고, 여성 프로게이머의 활약이 잦아지는 등 여성들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서 게임문화 개선을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게임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과 여성이 게임 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게임 개발 단계부터 여성의 참여가 많아졌다. 게임 타이틀 최초의 단독 여성 주인공이자 섹스 심벌로 전 세계 남성 팬들을 사로잡아온 <툼 레이더> 시리즈의 라라 크로프트(Lara Croft)가 여성 개발자 리아나 프래쳇(Rhianna Pratchett)을 만나 적절한 복장으로 갈아입게 된 변화는 게임사에 주체적 여성 캐릭터 등장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블리자드는 <오버워치> 여성 유저들의 수많은 요청과 젠더 다양성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고려해 기존 게임에서 보기 힘들었던 노인, 여성, 장애를 가진 非백인 캐릭터 아나(ANA)를 출시했다. 모바일 인디게임으로 시작해 현재 60개국에 수출되어 세계 인기 게임 3위에 랭크되기도 한 <수상한 메신저>는 주인공 여성이 스토리를 주도하고 개척하는 여성향 게임으로 한국 여성이 만들고 전 세계 여성이 키운 대표적인 콘텐츠다.
게임하는 여성들을 보호하고 게임 속 젠더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여 공평하고 건전한 게임문화를 형성할 목적으로 한 국내외 커뮤니티 활동도 눈에 띈다. 한국에서는 2016년 설립된 여성 단체페이머즈(Famerz, (구)전국디바협회)는 게임 속 여성 혐오 폭력을 고발하고, 게임 산업 내 여성 근로자 권리 신장 등을 위한 다양한 사회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오버워치> 게임 디렉터 제프리 카플란(Jeffrey Kaplan)은 공식 석상에서 페이머즈의 활동이 게임 세계 속 다양성의 추구와 인정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실행하는 증거라고 언급했다.10 게임 산업에 종사하거나 관련 업계에 있는 전 세계 34개국 여성 투자자, 여성 개발자, 여성 프로그래머가 자발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해 조직한 ‘우먼인게임스(Women in games)’라는 민간비영리기구(NPO)도 주목할만하다. 이들은게임 산업 속 여성 전문가들을 지원하고 남성 게임인들과의 건강한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국제 세미나, 컨벤션, 대회 등을 추진한다.
게임은 콘텐츠 장르 중에서도 남성 주류 성향이 가장 강했고 게임 문화에는 잘못된 여성 혐오와 성인식이 재생산되며 현실의 여성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었다. 그러나 여성들이 게임에 더 많이,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력을 높이고 참여하며 변화가 시작되었고, 이 변화는 게임이 자신의 플랫폼을 확장할수록, 여성을 더욱 가치있는 고객, 개발자, 투자자로 여기게 될수록 가속화될 것이다.
2-2. 노인, 아동을 위한 게임 : 실버 레크리에이션과 대안 교육
노인들은 게임 산업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디바이스 조작법과 현란한 인터페이스는 노인들에게 높은 진입 장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직 후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기반으로 적극적인 문화콘텐츠 소비를 하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노인층의 게임 이용률은 상대적으로 조작이 단순한 모바일을 중심으로 PC나 콘솔 영역까지 꾸준히증가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배그(배틀그라운드) 할아버지’로 유명한 美 해군 출신의 노인 게임 크리에이터 ‘그랜드파게이밍(GrndPaGaming)’이 인기를 끌고, 70대 이상 노인으로 구성된e스포츠팀이 창단되는 등 게임 산업 내 노인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70~80대 고령의 노인층에 게임이 인지 능력 향상, 멀티태스킹(multi-tasking) 능력 향상, 알츠하이머 조기 발견 등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꾸준히 발표하며 게임의‘치료와 예방’기능에 주목해왔다. 게임은 새로운 자극을 뇌와 신체에 전달해 기능을 강화할 수 있고 이것을 반복함으로써 뇌 기능을 향상시키고 정서 활동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일본의 게임 기업 닌텐도는 2000년대 중반부터 노인이 게임을 단순히 즐기기보다 두뇌를 단련시킬 수 있을 때 더 좋아할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기존의 젊은 팬들을 어느 정도 포기하면서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터치 제너레이션(Touch! Generations)> 게임 시리즈를 출시하게 된다. 사고력 증진 게임 <매일매일 두뇌트레이닝>, 가상 반려동물 소통 게임 <닌텐독스+캣츠> 등을 선보인 이 시리즈는 일본에서만 4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여가시간은 충분하면서 치매를 두려워하는 노인들에게 게임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전 세계 게임 시장에 보여줬다. 미국에서는 증강현실 모바일 게임 <포켓몬 GO> 이용자들이 게임을 하면서 전보다 25% 이상 더 걸었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 게임이 노인이나 비만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처럼 게임은 노인에게 세대, 가족, 고독 문제를 해결하는 치료제로 인식되어 장려되고 있으나 역설적으로 아동·청소년에게는 중독이나 이용 장애를 가져오는 잠재적 질병으로 취급되고 있다. 게임의 가장 적극적인 이용자이면서 과몰입에 취약할 수 있는 10대 미만을 대상으로 한 게임의 교육적 활용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게임이 창의력, 판단력, 종합적인 사고력과 같은 인지발달의 향상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와 학습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검증됐다. 국내에서는 이와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경제교육, 학교폭력 예방교육 등을 롤플레잉 게임 형식으로 진행하거나, 역사 수업에 보드게임을 활용하여 학습 효과를 높이는 사례가 많다.
국내 개발자가 설립한 게임벤처 에누마(enuma)는 태블릿PC만 있으면 우수한 교사나 좋은 교육 환경이 없어도 혼자서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교육 콘텐츠 ‘토도수학’을 개발해 전 세계 150개국에 서비스하고 있다. 두 번째 콘텐츠 ‘킷킷스쿨’은 학습 환경에 한 번도 노출된 적이 없는 아이나 학습장애, 자폐, 시각장애 등 다양한 문제를 가진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세계적인 게임엔진 개발사 유니티(Unity)는 분쟁지역에서 학습권을 빼앗긴 아동의 학습과 성장을 돕기 위한 <Can’t Wait to Learn(CWTL)> 게임을 개발 현재 시범운영 중에 있다. 대상 지역 공교육 커리큘럼을 반영하고, 현지 정서에 맞게 디자인과 그래픽을 개선하며, 아이들의 즉각적인 반응과 학습 성취도를 수집하면서 지원 대상과 국가를 확대하고 있다.
게임은 의학, 문화사업, 교육 등 다양한 비게임 분야와 융합하고 학교나 교실의 범위를 넘어 보다 보편적이고 범세계적인 사회문제 해결에도 도전을 시작했다. 이토록 게임의 확장성과 유연성이 큰 이유는 게임이 가진 본성이‘재미에 대한 추구’로 순수한 만족감을 선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산업 전문가들은 2010년경부터 게임의 원리와 기능의 잠재성을 연구하여 기업의 이윤이나 사회의 공공가치 증진을 위해 본격적으로 게임을 활용하고 있다. 이를 게이미피케이션이라고 한다.
2-3. 게이미피케이션 : 사회를 변화시키는 놀이의 힘
게임이 가진 본연의 가치는 ‘재미있는 놀이’라는 점이다. 춤, 글, 그림, 영상 등 유희를 통해 자신들의 상상력을 표현하고 공유해 온 인간은 원래 ‘노는 존재’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인간 문명이 만들어 낸 다양한 법, 철학, 제도가 놀이의 반대가 아니라 놀이의 원리와 형태가 발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놀고 싶은’ 본능을 자극하는 모든 활동을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game)에 ‘무엇이 되게 만들다’라는 의미의 접미사(-fication)를 붙인 게이미피케이션은 게임의 원리를 활용해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고, 교육하고, 행동 변화를 발생키는 과정이자 결과다. 재미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시간을 끊임없이 점유하는 게임적 사고와 기법을 비게임 분야에 적용해 이용자들의 관심과 행동 변화를 유도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게이미피케이션은 게임의 원리와 기능을 앞서 언급한 의료나 교육의 영역뿐 아니라 정책, 환경, 비즈니스, 공공정책, 사회공헌 등 거의 모든 분야로 확대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이자 방법론이 된다.
게이미피케이션은 기업의 마케팅 기법에 게임의 원리를 적용하며 시작되었다. 기업은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고 계속 소비하도록 도전, 성취, 포상, 경쟁 등 게임적 요소를 주입하여 원하는 행동을 유도한다. 카페나 음식점에서 제공하는 쿠폰 서비스는 가장 고전적인 게이미피케이션 사례로 스타벅스의‘마이 스타벅스 리워드’제도는 매장을 더 많이 방문할수록 무료 커피는 물론 나의 취향, 생일, 장소를 기억해주는 특별한 경험으로 보상해준다. 나이키의 ‘나이키플러스’ 앱과 ‘Bid Your Sweat’ 캠페인은 운동할 때마다 트로피를 주고, 다른 사람과 순위를 표시해 경쟁 심리를 자극하며, 운동량만큼 가상화폐를 지급해 나이키 제품을 경매형식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선의의 경쟁을 유발하여 전체 이용자들의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동시에 제품 사용을 효과적으로 촉진했다고 평가받는다.
최근에는 도시발전이나 사회문제 해결에 필요한 사람들의 인식 전환과 행동 변화를 유도할 목적으로 게이미피케이션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유럽의 살아있는 실험실, 리빙 랩(living lab) 중 하나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마트 시티(Amsterdam Smart City, ASC)는 플라스틱 재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재활용을 하는 만큼 코인으로 돌려주고, 이 코인으로 상점의 물건을 사거나 할인받을 수 있도록 하여 재활용률을 50%나 높였다. NHN엔터테인먼트는 성남시 주민들이 지역 독거노인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공동마을 부엌’에 참여하는 시간만큼 <한게임 맞고>와 같은 자사 게임의 아이템을 살 수 있는 포인트를 쌓아 돌려줬다. 독거노인의 공동체 참여를 늘리면서 자사 게임 이용률도 높이는 효과적인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성공 사례였다. 삼성스마트스쿨은 사회적 기업과 협업하여 발달장애인을 위한 배송업무 VR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발달장애인들이 지하철 배송업무를 할 때 경험할 수 있는 돌발상황에 대처하도록 반복적인 훈련을 지원함으로써 효과적인 직업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공공의 영역에서 사업의 성과를 확대하는데 게이미피케이션이 성공적인 방법론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이용자들이 ‘나도 모르게’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공유가치 창출에 기여하도록 만든다는 점에 있다. 놀이의 본능을 활용한 게임의 가장 부정적인 산출은 중독이겠으나, 이처럼 다양한 집단적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잠재적 힘 즉,사람의 본성을 자극하여 움직이게 만들고, 그것을 반복하고 증대시킴으로써 결국 사회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긍정적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3. 지속 가능한 게임의 시대, e스포츠를 국민 생활체육으로
골드만삭스는 2022년에 전 세계 e스포츠 시청자 수가 야구, 농구 등 전통 스포츠를 모두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e스포츠는 2014년부터 매년 수익이 30% 이상 증가하고 신규 이용자가 15% 이상 유입되는 폭발적인 성장을 지속하면서 작년(2019년) 총 수익이 1조 원을 돌파했다. 아시안게임과 같은 글로벌 메가 이벤트가 e스포츠 종목 등록을 고려하는 이유 역시 엄청난 시청자 수로 인해 높아질 중계권료의 이슈와도 맞물려있다. 미국과 중국은 일찍부터 e스포츠를 국가 문화산업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삼고 국민 생활 전반에 풀뿌리 e스포츠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지원을 이미 시작했다. 미국은 주요 66개 대학이 참여한 NACE(National Association of Collegiate Esports) 협회를 통해 대학생 게이머들에 장학금과 전문 교육을 지원하며 대학 리그를 진행, 아마추어 게이머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수도인 L.A.를 중심으로 e스포츠 전용 구장과 관련 인프라를 공격적으로 확충하여 우수한 게임 인프라에 대한 접근성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상하이를 ‘세계 e스포츠 수도’로 성장시키고 광저우, 충칭 등 주요 도시를 e스포츠 산업 거점으로 구축할 목표로 e스포츠 비즈니스 활성화에 필요한 각종 지원과 규제 완화 정책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 또, 베이징대를 포함한 20여 개 명문 대학에 e스포츠 관련 학과를 개설해 양실의 e스포츠 전문 인재 양성에도 힘을 쓰고 있다.
반면 글로벌 게임 산업 내에서 e스포츠 종주국이자 세계 4위 게임 강국인 대한민국의 존재감은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대박 게임 출시나 프로선수들의 월드컵 우승 등을 제외하면 좀처럼 커지지 않고 있다. 게임이 우리나라 콘텐츠 수출액의 67%를 벌어오는 4차산업 시대의 효자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는 자본, 자원, 인프라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내부적으로는 게임의 역기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계속 확산하면서 침체 위기에 빠지고 있다. 국내 e스포츠는 탄생 후 지난 20년간 민간이 주도하는 특정 종목과 프로게이머 위주의 성장으로 산업 저변 확대나 다양화 노력이 부족했고, 온라인게임 결제 한도, 웹보드 게임 규제 등 정부 규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왔다. 또, 수익성에 치중해 롤플레잉 장르만 집중 개발했던 결과 대중화에 실패,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게임을 하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e스포츠는 일반 스포츠로 발전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이는 결국 국내 게임 산업 생태계를 빈곤하고 비대칭적인 구조로 만들면서 한국 게임의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게임과 e스포츠 중장기 활성화 전략(2020~2025)’ 등의 정책을 마련하여 게임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제고하고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의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은 올해 초 업무계획발표에서 ①PC방 르네상스 부활, ②게임인재원 등을 활용한 우수인재양성, ③상설 경기장(3곳) 구축, ④한·중·일 e스포츠 국가대항전 개최 사업을 통해 ‘e스포츠를 일상화’ 함으로써 게임을 대한민국의 문화경제를 견인할 콘텐츠이자 신한류를 촉진할 핵심 동력으로 삼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e스포츠가 성장하려면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을 기반으로 게임이 건전한 여가이자 생활 문화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시설, 시스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게임을 생활체육으로 건전하게 즐기는 인구가 확대되고, 아마추어 시장이 두터워질 때 튼튼한 e스포츠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 이 생태계는 종합 미디어이자 문화산업으로서 게임 개발사, 퍼블리셔(유통사), 미디어 플랫폼, 구단, 스폰서십 등 다양한 이해관계와 구조로 구성되기 때문에 e스포츠의 성장은 결국 거대한 게임 산업의 동반성장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게 된다. PC방이 체육관으로 인식될 때 게임은 온디멘드 콘텐츠를 넘어 온 국민의 진짜 일상으로, 여가 문화로 뿌리내리며 게임 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들뢰즈(Gilles Deleuze)는 현실과 허구, 실재와 재현의 경계가 섞이고 뒤바뀌어 영화와 구분할 수 없게 된 현대사회를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말로 설명한 바 있다. 미디어, 콘텐츠, 플랫폼, 스포츠 등 다양한 문화산업을 흡수하고 융합하는 오늘날의 게임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상상력과 기술 능력의 한계를 계속 높이고 있다. 그가 30년을 더 살았더라면 이렇게 말을 바꾸지 않았을까. ‘앞으로 세상은 게임이 될 것이다!’
참고자료
권보연(2015). 『게이미피케이션』.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배기형(2019). 『콘텐츠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서울: 클라우드나인.
한국콘텐츠진흥원(2019).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 나주: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2019). 『2019 대한민국 게임백서』. 나주: 한국콘텐츠진흥원.
글ㅣ박지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교류기반팀 주임/사내 e스포츠 동호회 KOFIZ 단장
(출처 : 한류NOW 2020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