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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피티, 거리 문화에서 주류 미술로

  • [등록일]2022-01-18
  • [조회] 2052

그라피티,
거리 문화에서 주류 미술로




사회비판적이고 풍자적인 메시지를 담은 그라피티는 주류문화에서 멀어진 저항문화이자 청년문화의 산물이다. 또한 그라피티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예술이고, 도시의 건물과 벽에 몰래 나타나는 변방의 예술이다. 이러한 그라피티가 제도권에 편입되면서 자본주의와 맞물린 상업화 현상, 공공의 의미와 소유권의 문제, 적법과 위법의 형태에서 오는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라피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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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출처: rawpixel.com


1. 들어가며


그라피티(Graffiti)하면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영국의 예술가 뱅크시(Banksy)의 작품일 것이다. 뱅크시는 영국 브리스톨(Bristol)에서 익명으로 낙서화를 시작했고, 정치적, 사회적 비판과 풍자가 담긴 작업을 통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는 전 세계 도시의 거리와 벽에 스탠실(stencil) 기법을 통해 빠르게 작품을 제작하고 이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 그라피티의 행위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그가 이러한 행위를 한 것은 자신의 작업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역설적인 부분은 상업미술계에 거리를 두고 활동했던 뱅크시의 작업이 그 희소가치로 인해 오히려 미술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고, 급기야 옥션으로까지 들어온 사실이다.


2018년 영국의 소더비(Sotheby’s)에서 뱅크시의 <붉은 풍선과 함께 있는 소녀(Girl With Red Balloon)>(2006)란 작품이 £1,042,000(약 15억 3천 7백만 원)에 낙찰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낙찰되자마자 액자 안에 미리 설치된 파쇄기에 의해 작품의 반이 파손되었고, 그 과정이 그대로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기록되었다. 뱅크시는 피카소(Picasso)의 “파괴하려는 욕구도 역시 창의적인 욕구이다(The urge to destroy is also a creative urge).”라는 인용구와 함께 파손된 작품을 <사랑은 휴지통에 있다(Love is in the Bin)>(2018)라고 새롭게 명명하고 자신의 인스타그램(Instagram)에 올렸다. 뱅크시의 이러한 행위는 익명으로 몰래 그리는 그라피티가 거래의 대상이 되어 옥션에서 낙찰되는 자본주의 현상에 대한 비판이자 상업주의에 대한 저항의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또한, 익명의 그라피티 작가가 유명인으로 둔갑되고, 작가의 이름과 스타일이 브랜드화되어 상품화되는 상황, 그리고 현대미술 담론이 엘리트주의를 모방하는 일종의 거품이자 자본주의의 농락일수도 있음에 대한 강한 우려의 목소리를 담은 것이기도 했다.



그라피티(Graffiti)는 주류문화와 사회, 지배 권력에 대항하는 행위로 형성된 주변 문화이자 저항의 산물이다. 주로 거리나 벽, 건물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로, 역사적으로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제국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라피티는 단순한 서체에서부터 사실적이고 섬세한 벽화에 이르기까지 그 표현 기법과 방식이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낙서화이자 벽화인 그라피티의 행위에는 정치적, 사회적 반동 내지는 유희와 풍자, 소통과 발언과 같이 여러 목적과 요구가 존재한다.


동시대 그라피티는 1960년대 중후반 미국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1970년대를 거치며 뉴욕에서 하위문화의 한 장르로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며 발전하였다. 당시의 그라피티는 간단한 문자와 이미지를 코드화하여 건물이나 거리의 벽, 열차, 공공기관 및 기물에 태깅(Tagging)을 남기는 작업이 주를 이루었고, 1980년대 들어 예술가들의 의도와 개성이 담긴 매체와 기법이 출현했다. 그라피티는 익명성을 전제로 공권력과 사회 제도, 정치 체계, 인종 차별, 정주민과 이주민과의 갈등, 소외된 개인과 집단의 문제 등과 같은 다양한 이슈를 언어적 상징과 기호, 그리고 이미지와 텍스트를 통해 나타낸다. 하지만 소유자가 있는 건물이나 거리에 행해지는 그라피티는 공공기물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인 반달리즘(Vandalism)으로 간주되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재산 소유자의 허가 없이 건물이나 거리에 낙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재물손괴죄로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그라피티는 다양한 메시지를 담아 대중들과의 소통을 이끌었고, 이렇게 변모하는 그라피티계는 자본주의와 상업주의의 유혹을 쉽게 거부할 수 없었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뉴욕의 미술계에서는 하위문화, 청년문화, 대항문화에 대한 그라피티의 속성을 무너뜨리고, 이를 미술의 제도권 안으로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상업 화랑에서는 그라피티를 하나의 예술 형식으로 인정하며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고, 그라피티 예술가들은 도시의 건물과 벽이 아닌 정형화된 캔버스에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청년문화를 선도하는 그라피티의 상품가치는 올라갔고, 새로운 미술의 트렌드로서 고가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거리를 누비며 전시하는 그라피티 예술가들에게 갤러리와 옥션이라는 공간은 익명성, 저항정신, 비주류 문화의 가치를 잃은 채 자본주의의 논리에 편승한 것으로 보여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다.


2. 전시장으로 들어간 그라피티


1980년대 이후 개성이 담긴 그라피티 예술가들의 다채로운 양식이 출현했고, 이는 기법과 매체, 표현의 다양화로 연결되었다. 그라피티 예술은 자본주의에 편승하는 사회 속에서 미술의 제도권에도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저항의 본질’을 잃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비판을 가하기도 했지만, 도시의 벽 외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들과의 소통을 모색한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렇게 그라피티가 현대미술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 데는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와 키스 해링(Keith Haring)의 노력이 상당히 크다. 바스키아는 사람들이 외면한 거리나 골목, 지하철 외관, 버려진 건물의 외벽에 그림을 그리며 예술과 낙서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고, 그림을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드러냈다. 바스키아가 다루는 주제는 인종문제, 정체성, 폭력, 죽음, 마약, 비행청소년의 문제에서부터 만화와 해부학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를 포괄하고 있다. 그는 정치, 종교, 철학을 비판하는 사모(SAMO)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그 예명으로 활동했고, 앤디 워홀(Andy Warhol)과의 협업으로도 유명하다. 바스키아의 짧은 생애와 작품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았다. 키스 해링은 뉴욕의 거리와 벽면, 지하철 플랫폼, 클럽 등을 캔버스 삼아 그라피티를 그리기 시작했고, 간결한 선과 모양으로 인간과 동물의 형상을 그려낸 그의 그라피티는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모두가 관람할 수 있는 대중들을 위한 예술을 제작하고자 했고, 그의 작업에는 인종갈등과 차별뿐만 아니라 에이즈, 약물 남용과 같은 사회문제도 담고 있었다.


그라피티는 최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등의 주요 미술관에서 다양한 방식의 전시를 통해 소개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다양한 그라피티 전시가 주목받고 있다. 2021년 서울 롯데월드몰에서 열린 <스트리트 노이즈(Street Noise)>전에서는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 제우스(Zevs), 존원(JonOne), 매드사키(MADSAKI), 라틀라스(L’Atlas)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라피티 예술가 10명과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스트리트 노이즈>전은 한국의 1세대 그라피티 예술가인 알타임 조(Artime Joe)와 커스텀 디자이너 웨스(Wes)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통해 그라피티의 생생함을 미술관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2016년 예술의전당에서는 <위대한 낙서(The Great Graffiti)>전이 열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7명의 작품을 볼 수 있었고, 2017년에는 <위대한 낙서 셰퍼드 페어리: 평화와 정의>란 전시가 열려 그 열기를 이어갔다. 셰퍼드 페어리는 미국의 그라피티 예술가로서 사회, 환경, 정치 반전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하는 작품들로 유명하다. 또한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에서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미디어 작품: 거리미술로 대화하기(Media-dossier: Dialoguer avec le street art)>란 주제로 프랑스의 그라피티 예술가인 JR(Jeane Rene)과의 협업으로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박물관과 대조를 이루는 그라피티의 일시적이고 즉각적인 표현을 통해 공공기관과 거리미술의 예술적 결합을 탐구했다.


기억해야할 것은 그라피티는 청년 세대가 만들고 주도한 매우 특별한 미술운동이라는 점이다. 그라피티는 문자와 이미지를 주요 시각언어로 사용하고,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져 불법적이고 저항적 행위에서 시작된 하위문화에서 출발했다. 대중문화와 밀접한 그라피티가 거리의 예술이라는 특수함에도 불구하고 제도권에서 주목받고 있음에 여러 비판을 면할 수 없지만, 거리의 예술가들은 대중들과의 또 다른 방식의 소통을 원하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작업하길 원한다. 즉, 그라피티는 팝아트 이후 현대미술의 두 축인 대중성과 상업성을 모두 지닌 셈이다.


정리하면, 그라피티는 비록 낙서로 시작되었지만 동시대 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아 새로운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 제도권과 타협한 그라피티 예술가들은 미술관과 갤러리에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제품 브랜드와 협업하며 디자이너로서 그 영역을 넓혀 활동하기도 한다. 초기의 그라피티 예술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예술의 개방성과 평등성을 강조했던 것처럼, 이렇게 상업화된 예술이 그라피티의 대중화에 성공했다는 부분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술가들의 자세이다. 상업화에 편승하는 것에 그칠 것인지 아님 자신만의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며 그라피티가 지닌 정체성을 잃지 않을 것인지 말이다.


3. 한국의 그라피티


1990년대 한국에 유입된 그라피티는 미국의 힙합(Hip-hop) 문화와 더불어 하위문화로 일반인들에게 인식되었다. 국내에 소개된 힙합은 대중문화 전반으로 확산되었고, 청년 세대들에게 기존 문화와는 다른 새로운 장르로 받아들여졌다. 서구화, 흑인문화, 자유로움과 즉흥성에 매료되어 그라피티는 힙합과 함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전파되었다. 홍대와 이태원, 압구정동 주변의 클럽과 거리에서 그라피티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주요 상업 건물 내부에도 스프레이와 페인트, 마커 펜, 아크릴 물감 등으로 그라피티가 그려지게 되었다. 이후 힙합 가수들의 음악 앨범과 뮤직비디오에 그라피티가 종종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라피티 예술은 대항문화(Counter-culture)로서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지배세력에 맞서 인종, 종교, 소수자의 자유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청년문화의 한 형태로 시작되었다. 1950-1960년대 서구권에서는 히피문화를 시작으로 청년층은 정치적 신념이나 의지를 문학이나 음악을 통해 드러내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는 정치적, 경제적 침체기와 함께 사회 전반에 깔린 무기력함과 상실을 급진적인 문화로 극복하고자 했다. 1980년대 이르러 흑인문화를 중심으로 급부상한 하위 장르인 힙합 문화는 그라피티와 랩, 댄스 등의 새로운 유행을 낳았다. 이는 소수 집단의 소외와 억압을 표현한 것이었지만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 저항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했다. 그라피티는 국가, 사회, 정치체계에 대한 분노와 부조리를 표출하는 통로이기도 했지만, 반전문제와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를 다룸으로써 화합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겨있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에서 발전한 그라피티가 적어도 30년 이상의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존 세대에 저항과 도전을 하며 변화 발전했다면, 국내에 유입된 그라피티는 힙합 문화와 함께 일종의 트랜디한 스타일로 기능하게 되었다. 즉, 저항과 타협, 화해와 공존과 같은 거창한 의식보다는 청년 세대의 멋과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작용한 것이다.


한국의 그라피티 예술가들은 도심이나 건물의 외벽뿐 아니라 온라인과 같은 가상공간에서도 연대하여 그라피티 관련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여러 장르를 만들어 창작 활동을 했으며, 이들 중 일부의 노력으로 그라피티 강좌가 열리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그라피티 수업이 열릴 정도로 그라피티는 젊은 층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라피티 강좌는 그라피티에 대한 역사와 예술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그라피티에 사용되는 전문적인 기법을 직접 배워봄으로써 이를 일상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이는 국내 그라피티 예술이 발전하는데 상당히 큰 기여를 했다.


즉, 한국 그라피티는 낙서화나 그라피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시기에 한국 힙합 문화의 특징인 자유로움과 도전 정신, 트랜디함과 개성 등을 표출하는 하나의 장르로서 기능했다. 하위문화로서 청년층에 받아들여진 그라피티는 2000년대 이후 점차 발전했고, 그 결과 단순한 이미지나 텍스트를 복사 혹은 태깅하는 수준을 넘어 수준 높은 그라피티 예술가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중, 알타임 조(Artime Joe), 반달(Vandal), 제바(XEVA), 심찬양 등 젊은 그라피티 예술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이들은 홈페이지나 SNS를 통해 자신의 작업을 직접 정리 및 홍보하고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 및 다양한 기업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넓혀갔다. 알타임 조는 국내 1세대 그라피티 예술가로, 제이엔제이 크루(JNJ CREW)와 스틱 업 키즈(Stick Up Kids)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이엔제이 크루는 제이 플로우(Jay Flow)와 결성한 그룹으로 버려진 도심의 벽을 탈바꿈한다는 슬로건 하에 활동했고, 2010년에는 아시아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1993년 창설된 국제적인 그라피티 크루, ‘스틱 업 키즈’의 멤버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는 2013년 첫 개인전 <어떤 사람(Some People)>을 통해, 미술계에 발을 들인 후 여러 갤러리를 포함한 다양한 공간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다. 또한 여러 예술가들과의 협업 및 나이키(Nike), 크리틱(Critic), 롯데백화점 등과 같은 기업과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그라피티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이후, 홍대에 위치한 스트릿 편집샵에서 <어떤 사람 2회(Some People 2nd round)>전을 열며 아트 상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패션, 음악, 비디오 등 여러 장르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국내외에 알리며 스스로를 브랜드화 시키고 있다.



알타임 조와 마찬가지로 1세대 그라피티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반달은 미국 그라피티 웹사이트인 ‘아트 크라임즈(Art Crimes)’에 한국인 최초로 등록된 작가이기도 하다. 반달은 국내에 그라피티에 관한 인식이 부족하던 시절, 그라피티 스쿨을 만들어 청년 세대들에게 그라피티를 교육한 예술가이다. 반달은 그라피티와 회화, 디자인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다양한 재료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다. 반달도 국내외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자신의 그라피티를 알리는 한편 다양한 전시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또한, 제바(Xeva, 유승백)는 ‘매드 빅터(Mad Victor)’에 소속되어 활동하다가 개별 작업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그라피티 예술가이다. ‘매드 빅터’는 매니저, 사진작가, 그라피티 예술가 등 각자의 역할이 뚜렷하게 구분된 7명의 크루로 구성된 팀으로, 그라피티 배틀에서도 우승할 정도로 실력을 갖춘 팀이었다. 제바의 초기 작업을 살펴보면,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미국의 하이퍼리얼리즘 예술가인 척 클로스(Chuck Close)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그는 밝힌다. 제바는 극사실적인 얼굴 시리즈를 통해 희노애락을 표현함과 동시에 내밀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런 작품 스타일은 세 차례 개인전을 열면서 조금씩 변모하기 시작한다. 그는 일상을 둘러싼 물리적 장소의 한계를 넘어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추상화로 나아갔다. 이는 작가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자 하는 우주적 상상의 공간이었다. 제바는 뉴욕, 런던, 도쿄, 상하이 등에 작품을 선보였고, 스포츠 브랜드와 주류 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시켰다.



마지막으로 심찬양(활동명 Royyal Dog)은 MZ 세대를 대표하는 그라피티 예술가로 한복을 입은 여성 시리즈로 세계에서 주목 받고 있다. 그는 2016년 미국에서 힙합 아이콘과 다문화주의를 담은 벽화로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고, 세계적인 농구선수인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와 미셀 오바바(Michelle Obama) 등과 같은 유명 인사를 작품에 등장시키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종교적인 신념으로 인해 여러 국가를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동서양 문화를 잇는 화해의 메시지를 담은 작업으로 호평을 얻었다. 이후 작가는 2017년 글로벌 스포츠웨어 브랜드 언더아머(Under Armour)와 협업을 진행했고, 당시 농구선수 커리의 도전정신과 의지를 한국적인 요소를 반영해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작업에는 이순신 장군, 거북선 등이 등장하며 동서양 문화의 융합을 보여주었다. 또한 작가는 청와대 사랑채(방문자 센터) 앞마당에도 벽화 두 점을 남기며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이들의 작품은 대체로 서사적인 구조 방식을 지닌다. 작품의 유형에 따라 텍스트, 인물, 동물, 명화의 패러디에서부터 사회 현상, 국가 권력, 자본주의와 소비사회 비판, 환경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1990년대 한국으로 유입된 그라피티는 변방의 소외된 예술에서 미술계의 제도권으로 편입되면서 여러 문제에 당면하게 되었다.



4. 소유와 공공성의 문제


그라피티가 사유재산이나 공공기물을 파괴하는 반달리즘적 행위냐 아니면 도시환경을 개선해주는 공공미술이냐는 문제에는 여전히 첨예한 대립이 존재한다. 그라피티를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봐야 하는지 아님 위법행위로 보아 지우고 없애야 하는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또한 몰래 그림을 그리는 속성을 지닌 그라피티 예술가들의 작업을 문화생산자로서 작품에 대해 저작권이 있다고 판단해야 하는지 아님 작품이 그려진 건물과 벽의 주인에게 그 소유권이 있다고 봐야하는지 등 여전히 그라피티에는 많은 논쟁거리들이 있다.


2018년 청계천에 설치된 베를린 장벽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린 그라피티 예술가 정씨가 소송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가 그림을 그린 베를린 장벽은 1961년 동독에 설치된 장벽 중 일부로, 2005년 베를린에서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의미로 서울시에 기증한 것이다. 베를린 장벽의 소유권을 지닌 서울시는 장벽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2018년 10월 정 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국내에서 그라피티는 재물손괴죄와 건조물침입죄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또한 2010년에는 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쥐 형상의 그라피티를 그린 박씨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건이 있었다. 그라피티를 그린 박씨는 G20의 ‘G’에 담긴 여러 의미를 언어유희를 통해 한국어 발음 쥐로 여겼고, 자연스레 쥐 형상을 떠올렸다고 그라피티의 의도를 밝혔다. 일반적으로 공공물 훼손은 약식기소로 끝나는 예가 대부분이지만 검찰은 이를 국가 중대 행사를 폄하하기 위한 반국가적인 행위로 여겨 그에게 징역을 선고했다. 이에 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예술의 표현과 발언의 의지를 억압한다는 의유로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지어 이 사건은 뱅크시의 팬 사이트에도 소개되며, 박씨에 대한 구명운동이 벌이지기도 했다.


이 두 사건은 한국사회에서 그라피티의 예술을 어떠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공공제의 훼손’ 혹은 ‘예술적 발언’의 첨예한 대립을 넘어 행동주의 미술의 자율성이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라피티 예술이 지닌 저항과 도전정신에는 많은 위험이 존재함을 알게 한 사건이다.


이와는 반대로 2006년 영국에서는 그라피티의 소유와 보존을 위한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브리스톨 시의회에서 주관한 투표에서 성보건 클리닉(Sexual Health Clinic) 건물 측면에 그려진 뱅크시의 작품을 영구히 보존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뱅크시의 그라피티 <잘 매달려 있는 연인(Well Hung Lover)>(2006)은 건물 이층 벽면에 벌거벗은 한 남성이 위태롭게 창틀에 매달려 있고, 창문 안쪽에는 속옷차림의 여성과 양복을 입은 한 남성이 누군가를 찾고 있는 모습으로 흡사 간통현장의 발각처럼 위험하고 불안한 상황을 블랙 유머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업은 그라피티가 우리의 삶과 일상의 공간에 적극 개입했음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보존을 둘러싼 결정에 많은 논란이 일었다. 우선, 시의회의 많은 예산이 도시 정화를 목적으로 거리의 그라피티를 지우는데 할애되는데, 이 결정은 반대의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국에서 그라피티는 합법인가?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유주가 있는 건물과 벽, 공공건물과 거리에 그림을 그리거나 낙서를 하는 행위가 불법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영국에서 그라피티는 불법이고 범죄 피해로 간주 될 수 있다. 1971년의 형사법(Criminal Damage Act 1971)에 따르면, 낙서를 한 사람은 최대 1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으며, 그 피해가 5,000 파운드 이상이면 벌금이 부과 될 수 있다. 결국 뱅크시라는 작가의 명성과 가치가 불법인 그라피티를 합법화를 넘어 보존할 가치가 있는 고급예술작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라피티는 합법과 불법 사이, 개인과 공공의 소유와 저작권의 문제, 일시성과 영구성 사이에서 여전히 많은 갈등을 낳고 있다.



뱅크시는 분명히 자신의 브랜드적 가치와 그라피티와 거리미술이 처한 현실을 잘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자본의 논리에 설득되지 않고, 인터넷을 활용해 자신만의 생산과 소비 양식을 고민하며 주류문화에 여전히 대항하고 있다. 거리예술은 거리에서 생성되고 소비되고 소멸되지만 인터넷을 통해서는 여러 문화의 사람들과 관계한다. 도시 공간을 불법으로 점유하는 그라피티와 거리미술은 주변 문화를 생산하고 주류문화에 편입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가진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고 하나의 문화로서 생산 자체에 개입하기에 정치적이다.


정리하면, 그라피티는 주류 권력과 문화에 대항하며, 개인의 소유라는 폐쇄성 보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예술가를 드러내기 보다는 익명성을 추구하고, 일시적이고, 때로는 법을 위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는 과연 예술가들이 무엇은 요구했냐는 것이다. 이들은 도시에서 자신들을 위한 틈새 공간을 찾아 자유롭게 사고하고 개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여기에는 익명으로 시작된 예술가들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작품을 보호받을 작가성이 존재하게 된다. 작가성이란 예술 작품 생산자와 작품과의 관계, 작품에 부여된 의미, 예술가의 주체성, 개성, 사적 영역 모두를 포함한다. 또한 작품을 제작하면서 생산의 경제적 관계 내에서 점유하고 있는 위치에 대한 부분을 말하기도 한다.


앞서 살펴본 사례들은 거리 미술의 현장에서 예술가와 관람자의 관계를 재정의하고, 그라피티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범주를 확대하며, 생산과 소비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즉, 도시 공간을 관찰하여 발견하고,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거리미술의 전통을 잇는 그라피티는 경제적, 사회적, 예술적, 미학적 토대를 재전유한다.


5. 나가며


사회비판적이고 정치적이며 풍자적인 메시지를 담은 그라피티는 주류문화와 권력의 중심에서 떨어진 저항문화이자 청년문화의 산물이었다. 이러한 그라피티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예술이고, 도시의 건물과 벽, 시설물에 몰래 나타나는 변방의 예술이었다. 이러한 그라피티가 제도권에 편입되면서 자본주의와 맞물린 상업화 현상, 공공의 의미와 소유권의 문제, 적법과 위법의 형태에서 오는 여러 문제들이 생겨났다.


그라피티가 지닌 문화예술적 가치와 시각적 생산을 고려하면 특별한 예술의 한 형식이지만, 공적인 영역인 거리미술로서 그라피티와 예술가들의 활동은 고급 예술에 저항하는 하나의 정치적 미술의 양식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그라피티의 문화적 텍스트와 실천행위에는 도덕적 가치 판단의 적합한 기준이 제시될 수 있고, 작품행위에서 비판적 사고와 통찰력이 중요시 될 수 있다. 따라서 그라피티는 고급문화처럼 대중을 배제하고, 배타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대중과 소통하고 쉽게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친숙함의 전략이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부분은 한국의 그라피티 예술가들이 자본주의와 기득권에 영합하여 부와 명성을 얻고자 하면서, 그라피티가 지닌 본래의 공공성과 저항정신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작업이 거리가 아닌 미술관과 갤러리와 같은 공간에 전시되고, 기업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면서 그라피티가 더 이상 풍자적이거나 교감할 수 있는 거리미술이 아니라 미술계, 즉 제도권 아래 그저 참신하고 트렌디한 미술의 룩(Look)을 생산하고 있음은 반드시 비판적으로 살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동시대 미술의 다원화를 추구하는 현 상황에서 그라피티 예술이 한국의 문화예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본 글은 다음의 논문에서 주요 부분을 발췌 및 요약하였음 알린다. 주하영 (2019). 변방에서 중심으로 : 영국 그라피티 예술의 정치성 비평. 《미술사논단》, 제48호, pp. 237-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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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영 (2019). 변방에서 중심으로 : 영국 그라피티 예술의 정치성 비평. 《미술사논단》, 48호, pp. 237-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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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ㅣ주하영 미술비평가, 전남대학교 미술학과 조교수

     (출처 : 한류NOW 2022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