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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연예술, 세계 무대로

  • [등록일]2021-04-02
  • [조회] 75

전통공연예술, 세계 무대로




“서양 흉내 내지 말고 한국인만 가진 장점에 깊은 속 얘기를 꾹꾹 눌러 담아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만들고, 탄탄한 철학으로 포장해 들고 나와라. 그런데 기억해야 한다. 세계 정상급 시장이 빼꼼히 문 열어 반긴 것은 대체 불가능한 최고 명인뿐이다.” 합종연횡 중인 OTT, 우후죽순 만들어지는 각종 플랫폼을 채우는 것은 고급 취향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문화다. 국제교류를 원하나? 그럼 ‘전통’을 가두는 관습부터 벗어라. 현재를 사는 전통, 심장을 움켜쥐는 고수면 족하다. 권위 있는 전 세계 극장이 문 활짝 열어젖힌 스페인 플라멩코(Flamenco)에는 이름만으로 유학생을 긁어모으는 명인이 포진했다. 여기에 공공?민간의 전략적 투자가 보태졌고 이후 시장질서에 따른 음반 산업 진입, 대중적 스타 발굴이 이어졌다. 세상을 손바닥 안에 넣고 사는 지금, 강요는 금물이다. 문화는 ‘스며들어 만나는 것’이므로 Korea 떼고 Welcome으로 나가자. 브랜드 자체에 날개를 달아줘 브랜드가 ‘K’를 이끌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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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출처: 양정환/ 전통예술공연개발원


1. 앗살라무 알라이쿰


“건물 안에 있는 남자는 다 나가라.” 이렇게 우리는 리허설을 하다 말고 극장 밖으로 쫓겨나왔다. 왜냐면, 왕족 여자가 문화센터 내 미술관에 전시를 보러 왔기 때문에. 다음 날 저녁, 이건 또 뭔가. 왕족 남자가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은 8등신 미인들을 몰고 들어와 객석 가운데 제일 앞자리 두 줄을 차지해버린다. 그녀들은 호주에서 온 문화사절단이라는데. 좀 더 뒤로 가야 소리를 듣기에도, 공연을 보기에도 좋다는 말은 개나 줘버리라는 듯, “왕족이 서민의 뒤통수를 보는 불경한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거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다. 거만하게 치켜 올라간 콧수염을 휘날리던 그가 아부다비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다는 것을. 니스를 잔뜩 바른 무대 벽면에 부딪히는 꽹과리 소리에 나도 머리가 지근지근 아플 지경인데 이를 어쩌나. 당장 5분 후면 공연 시작인데, 별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는 것을. 자, 할 수 없다. 가자. 태평소는 저 뒤로 빼고, 우리 어르신 손에는 암쇠(저음을 내는 꽹과리)를 쥐어드리고.


여기는 아랍이다. 로비까지 나갔다가 부지불식간 무례를 범하면 큰일이니 무대 위에서 끝을 봐야 한다. 오늘도 우리는 공연 마지막에 강강술래 판을 벌렸고, 이제 보자. 누가 앞서나. 하나둘씩 객석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던 사람들이 무대에 걸쳐놓은 계단을 밟기 시작하는데, 역시나 호주 문화 사절이다. 이어 칸두라(흰색 전통의상) 차림의 남자들이 따라 나오는데, 이에 질세라 현대적 의상에 히잡(스카프 형식의 전통의상)을 둘러쓴 여자들도 합류한다. 845년께 아랍 역사학자 이븐 쿠르타르비가 쓴 <왕국총람>에 “중국 동쪽에 금이 많고, 살기 좋은 왕국에 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고 눌러사는 우리 동족이 많다”는 기록이 있다더니, ‘처용신’을 낳은 신라에 마을을 이루고 살던 사람들의 후예이기 때문일까, 어르신들의 내공 덕이었을까. 어쨌건 우리는 사막으로 비를 몰고 갔고, 공연으로 그들의 심장을 움켜쥐었으니 이것으로 되었다. ‘앗살라무 알라이쿰(평화가 깃들기를).’


밖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은 딱 하나뿐이라, 여자들이 눈 화장에 여러 시간 공을 들인다는 오만의 풍경은 또 사뭇 다르다. 무대로는 남자들과 현지에 사는 외국인 여자들만 올라오는데, 이 사람들 도통 끝낼 생각이 없다. 그럼 좋다, 가자 로비로. 이 광경을 니캅(눈만 드러내고 전신을 감싸는 전통의상) 차림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던 여자들은 한참을 뭉그적대고 나서야 수줍게 다가와 “부채를 줄 수 없겠냐”고 묻는 거다. 왜 콕 집어 부채인가 했더니 교방춤 명인의 눈이 보일 듯 말 듯 부채 뒤로 숨바꼭질하던 모양에 홀딱 반한 것이었다. 큰 눈망울의 수줍던 소녀들의 추억을 기리며, 귀국 후 인사동을 탈탈 털어 구한 ‘Made in Korea’가 선명하게 찍힌 부채로 주오만한국대사관을 통해 인사를 전했다. ‘슈크란(고맙습니다).’


2.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천둥


첫마디가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천둥...” 이란다. 공연내용을 묻는 기자에게 우리 명인 어르신 답이 걸작이라. 통역 스태프가 황당한 얼굴로 구조를 요청하는데, 할 수 없지. 장황한 얘기 다 듣고 멋대로 설명해나갔다. “올림포스에만 신이 12인인데 이게 다가 아니다. 인도에도 브라흐마, 시바, 비슈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 똑같다. 한국에도 천지사방에 신이 있다.” 오래전 터키에서 벨리 댄서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 바람은 머리를 지나 가슴을 타고 팔 위로 사뿐히 날아와 손끝으로 빠져나갑니다. 내 몸은 바람에 얹혀 날아다니는 나뭇잎입니다.” 늦은 밤, 춤을 설명하는 낮은 목소리는 잎새처럼 내려앉았고, 다음날 클럽에서 그녀의 허리춤에 걸린 새틴은 사위를 바람처럼 휘감았다. 어느 나라나 전통은 그런가 보다. 자연 만물과 하나가 되어 하늘로 통하는 무엇, 신을 청해 질펀하게 놀며 기쁘게 한 후 돌려보내는 의식. 즉, 청신(淸神)?오신(誤神)?송신(送神). 간절한 부탁 하나, 절실한 청 하나라도 더 넣으려면 신을 즐겁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터. 재주가 빼어난 인간이 신을 즐겁게 만들어야 또 일 년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빼어난 인간들의 재주를 모아 <판굿(Pan Gut)>이라 이름 붙였는데, 아! 이 제목에는 비자가 나오지 않더라. 프랑스도 <Tresors Vivants(살아있는 보물)>를 제안하더니 미국은 <Forever...>로 하잔다.


선수들이 길을 나서면 시나리오도, 연습도 필요 없다. 무대 작업 하루, 공연 당일 리허설 한 번이면 족할 뿐. 춤으로 눈 홀리다 앉으면 찰진 장구 소리에 구성진 소릿가락까지 얹을 수 있는 노름마치들만 있으면 관객성향이나 무대 상태, 문화와 관습 등 무엇에건 맞춰 판을 뒤집어도, 내용을 싹 바꿔버려도 접신(接神)이 가능하니 프랑스에서 집에 가지 않고 놀아달라는 관객들 때문에 자정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숙소에 몸을 누인 것도, 미국에서 분장실까지 쫓아온 관객으로부터 “죽기 전에 이렇게 가슴 뛰는 공연을 볼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들은 것도 바로 이 고수들이다.



시계추가 너무 빠르구나. 몽펠리에 발 《APF통신》이 송고한 사진 속 김덕명 선생, 강선영 선생은 장삼자락 휘휘 날리던 기억 속 흔적으로만 남았고, 샤또발롱 객석을 울렸던 장금도 선생의 먹물 염색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는데. 솜털까지 간질이던 유순자 선생의 부포 기록은 오만으로 날아가 방송국 자료실을 뒤져야 나올게다. 이렇게 하나둘씩 별이 져가고. 무심타, 먼지 낀 공기 너머로 더는 별을 찾을 수도 없으니.


그래 잘 안다. 일반적인 국제무대가 전통원형을 민속에 분류해놓고, 유통대상으로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을. “뻘겋고 퍼런 옷부터 벗고 나오라”는 이들에게 “동시대를 사는 우리가 즐기는 문화이므로 컨템포러리”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도. 나 역시 ‘전사들의 춤’이나 ‘우물가에서 부르는 아낙네의 노래’와 같은 남의 나라 민속에 돈을 낼 생각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기억하자. 상상축제는 하용부, 이춘희에게 문을 열었다. 에든버러 국제축제(프린지와 다른 공식 축제)는 안은미와 오태석을 데려갔다. 아비뇽은 김소희만을 위한 무대를 만들었고, 세르반티노는 누구보다 먼저 김매자를 알아봤다. 후학이 있으되 누구도 대체하지 못하는 명인들을 말이다.


어른들은 그렇다 치고, 안은미와 오태석은 좀 쌩뚱맞나? 잘 생각해봐라. 이들은 치열한 작가주의를 전통에 담아 현대적으로 얘기하는 선수들이다. 외국인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안은미는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했다. 존재 자체가 화제인 그녀는 일상에서나, 작품으로나 늘 “즐거워야 한다”고 강조하는 매우 한국적이며 이국적인 안무가다. 실제로 전문가고 관객이고 할 것 없이 그녀의 작품은 “즐겁고 인간애가 넘친다”고 얘기한다. 즉, 한국인 작가로서 하고 싶은 얘기를 세계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보편적 어법에 담아 철학을 드러내 보여주는 그런 안무가다. 국제 유수 축제들이 앞다퉈 찾는 오태석의 <템페스트>, <로미오와 줄리엣>은 전 세계인이 너무 잘 알고 지극히 사랑하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뼈대를 차용했다. 그런데 의상에서 소품, 무대장치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상님 것을 대놓고 혹은 살짝 빌려 쌓고, 지금 우리가 사는 모양을 지독한 작가적 고집으로 얹어낸 작품이다. 이렇게 우리가 아직 활짝 열어젖히지 못한 고급시장 자물쇠를 푼 것은 바로 전통, 한국 정체성이다.


3. 판소리로 뮤지컬을 만들어라


몇 해 전 유독 한국 작품에 관심 많은 네덜란드 친구가 본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얘기하며, 한국이 가진 장점에 작가의 철학을 꾹꾹 눌러 담은 작품은 어디에 있냐고 한탄했다. 뻔히 사정 다 꿰뚫는 이 친구는 “너네는 고급시장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어. 판소리 좋잖아. 그걸로 뮤지컬을 만들어봐, 태권도로 무용을 만들어 보는 건 어때”라며, “전쟁을 겪었는데도 인류 역사를 보편적으로 얘기하는 완성도 높은 연극도 나는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지금 있는 그대로 판소리를 들고 나오면 국가행사라면 모를까 티켓파워가 중요한 극장은 받지 않는다”는 거다. “차라리 <디바>를 만들어라. 완성도 높은 창작곡을 갖고 있는 소리, 현악, 타악, 관악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를 모아서 스토리를 입혀주면 유럽 고급시장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는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들이라니. 모두 활동단체를 갖고 있고, 각기 다른 대학 교수며, 감투 한두 개 이상씩 쓰고 있는 선수들이다. 그러니 모이라고 했다가는 협연은커녕 살벌한 기 싸움에 자리가 먼저 폭발할지도 모를 일. 자, 정리하자. 이들은 단발성 행사에서 얼굴 보기로 하고, 장기적 계획에 따라 모을 엄두는 감히 내지 않는 것으로.


라띠(Rathi Jafer)는 벵골만 연안의 항구도시이자 인도 남부 최대도시 첸나이에 산다. 상류사회 출신으로 영국문화원에서 일하던 그녀는 2006년 인도 TVS(2륜, 3륜 차를 생산하는 모터사이클 회사)와 현대자동차 인도법인 후원을 받아 인도-한국 문화원(INKO Center)을 만들었다. 아들을 한국에 유학 보내고, 제집 드나들 듯 툭하면 오는 그녀지만 굳이 시간 써 만날 것까지야. 치열한 공연유통 시장에서 인도는 사실 관심권 밖인지라 수년째 스쳐만 지나던 그녀와 피하기 곤란한 상황에서 딱 마주쳤는데, 세상에. 그녀의 입에서 한국 예술가들 이름이 줄줄이 나오는 거다. 어쩌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무심히 흘렸을 수도 있는 그녀 이름 역시 한국 예술가들 입에서 계속 나오니 이제 귀에 확 박혀버린다. 인도를 여는 만능열쇠, 라띠. 그래서 결정했다. 인도를 꿈에서 꺼내어보기로. 4개 단체로 한국특집 가보자. 운송료와 프로그래밍은 내가, 공연료와 파트너를 비롯해 현지 비용은 라띠가.


춤이야 뭐 검증받은 현대무용을 골랐으니 승산이 있다고 봐도 크게 무리 없다. 진짜 모험은 음악인데. <수궁가>에 현대무용을 입힌 작품은 ‘모’ 아니면 ‘도’ 일터. 서양음악이 7음계 ‘솔파시스템’을 10세기에 와서 갖춘 것에 반해 인도의 7음계 ‘사르감’은 기원전에 완성되었으며, 이를 다시 66개로 세분한 기록 역시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니 천재 소리 듣는 타고난 악사래도 긴장할 수 밖에. 돌이켜보면 묘한 승부욕에 이들을 끌어들여 미안하지만, 현대무용과 어우러진 <수궁가>가 잦아들고 조명이 꺼지며 기어이 또 받아낸 기립박수는 오롯이 악사 형제, 박종호와 박종훈을 향한 것이었다. 인도 공연을 끝으로 이들은 작품을 떠났고, 처음부터 같이 만들며 요소요소 숨겨놓았던 우리 타악의 장악력을 고스란히 드러내 원도 한도 없이 풀어냈으니 아름다운 이별의식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공연이 끝나고, 로비를 가득 메운 관객들은 연주자에게 한마디라도 걸어볼 요량으로 음식이 동난 푸드코트를 떠나지 못했다. 장구와 꽹가리, 징, 정, 북 그리고 소리까지 미친 듯이 타고 넘던 형제는 선수를 만난 한국 타악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가르쳐 주었으며, 난 그 이후 단 한 번도 같은 작품이지만 같은 작품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인도를 정점으로 흡인력이 약해졌음에도 형제가 의도한 대로 정박, 엇박이 움직임과 교묘하게 섞여 때로는 같이, 때로는 정반대로 흐르는 음악과 춤의 호흡 덕분에 작품은 비록 안무가 이름만 단 현대무용이었지만 북미, 남미, 유럽, 아시아를 누비며 휘몰이장단으로 기립박수를 몰고 다녔다. 관광공사가 기획해 대박 낸 이날치와 엠비규어스의 ‘Feel the Rhythm of Korea’ 이전, 전통음악과 현대무용의 교배는 이렇게 배팅에 성공했고 앞으로 어떤 조합이 나오건 적어도 국제무대에서 잭팟은 전통이 쥐게 될 확률이 높다.




4. “오늘 경험 때문에 앞으로 내 시각이 완전히 달라질 것”


초가을 여수 밤바다. 풍어제를 요란하게 올리며 그물을 던졌건만 피라미 새끼 하나도 걸려 올라오지 않는다. 여러 나라 기자들을 잔뜩 불러 모았는데 체면이 영 말이 아니구나. 평론문화도 이제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지만,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누가 뭐라 평했는지가 예술가들의 내년을 결정하는데 매우 큰 힘을 발휘했다. 외국 유명 예술가들 자료에 늘 등장하는 이름. 이 사람들이 한국 예술에 관해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자, 그럼 나무에서 감 떨어질 날만 기다리지 말고 저널리스트들을 데려오자. 한번 왔다 가서 될 일이 아니다. 여러 해 계속 불러 지한파를 만들어 욕을 하건, 칭찬을 하건 자꾸 한국 예술을 도마 위에 올리도록 만들자. 이 친구들 분명 우리가 공연 들고 나가면 보러 오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포럼에 프랑스 《르 몽드(Le Monde)》, 영국 《더 타임즈(The Times)》, 독일《발레탄츠(Ballettanz)》를 비롯해 이스라엘, 호주, 일본, 중국, 스페인,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기자와 평론가, 예술감독을 불러 모았다. 공연예술계 신뢰가 워낙 높은 전문가들인데다 많은 매체에 기고하고 있어 어떤 글을 써도 누군가는 볼 터. 단순히 공연만 보여주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문화의 뿌리부터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단단히 채비해야 한다. 그러나 포럼을 준비하며 비로소 알았다. 사방을 뒤져봐도 한국 문화를 체계적으로 맥락에 맞춰, 영어다운 영어로 설명한 변변한 책자 하나 없다는 것을. 막막하지만 이제와 탓해봐야 뭐하겠나.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게 할 수밖에.


국고지원 사업이니 더구나 일분일초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입국한 바로 다음 날 새벽부터 자정을 지나 다음날 새벽까지 4년에 걸쳐 매 일주일씩 포럼과 세미나 그리고 공연은 기본. 안동, 고성, 통영, 여수로 문화가 살아있는 곳, 뿌리내린 나뭇가지가 울창하게 뻗어난 곳에 가서 동네 할머니가 손으로 찢어 입에 넣어주는 김치를 받아먹었다. 장구 둘러메고, 북치다 지치면 탁주 한 사발 들이켜고, 비빔밥에 청국장도 먹어라, 문화다. 벼 베낸 논에서 너울너울 춤추다 고깔모자 씌워 장기자랑 시키는데 인간문화재 어르신들은 들러리. 바닷가 칼바람 맞으며 둘러앉아 용왕굿 제단에서 만복 깃든 음식으로 배불리며, 서양식 프로시니엄 무대에 올라간 우리 예술의 뿌리를 짧고 굵게 몸으로 살았다.




이 유명한 사람들이 ‘한국’에 관해 본인들 매체에 쓰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들은 어느새 정말로 친한파가 되어있었다. 수없이 보여 준 공연 중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찍은 일본 기자는 여러 나라 축제에 추천하더니 끝내 공연을 성사시켰다. “한국한테 배워야 한다”고 말하던 중국 평론가는 지원사업에 한국 사례를 참고했음을 고백했다. 호주 기자는 굳이 늘 인천공항을 경유해 여행한다. 정중동 미학을 몸으로 깨달았다던 이스라엘 기자는 공연이 끝나는 밤 10시에 만나자더니 텔아비브 거리에서 새벽 4시까지 놔주지를 않는 거다. “네가 우리를 바로 이렇게 몰고 다녔다”면서. 통영남해안별신굿 보존회관에서의 마지막 날, “이 경험 때문에 앞으로 공연을 보는 내 시각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던 영국 기자는 방탄소년단의 웸블리 공연이 있던 밤 한국 공연이 있다는 소식에 우리가 있는 극장으로 달려왔다. 바로 전해 덴마크에서 봤을 때는 기자들의 멘토였는데, “나 이제 예술가야. 그런데 걱정 마. 글은 계속 쓰니까”라며 보라색 꽁지머리를 자랑하더니 객석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래서 재외 한국문화원에 갈 기회가 있으면 늘 부탁했다. 현지 예술계 인사들, 전문 기자들과 꾸준히 교류하며 친하게 지내 달라고. 실시간으로 정보가 날아다니고, 고전적 형태의 예술 마켓 무용론이 나온 지도 오래. 바로 이들의 입이 프로그램을 결정하는데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므로.


5. 심장을 움켜쥐지 못하면 무대는 열리지 않는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매년 진행하는 ‘저니 투 코리안 뮤직(Journey to Korean Music)’은 세계 월드뮤직 전문가를 데려와 가급적 전형적이지 않은 공간에서 월드뮤직, 즉 현대화된 전통음악을 질리도록 보여주고, 들려주는 행사다. 2019년 기준 전략적으로 해외 전문 마켓에 보내는 것을 포함해 차기 년 진출 성과가 67%에 이르는데, 관광공사 덕에 몸값이 뛴 이날치를 비롯해 잠비나이, 블랙스트링, 이희문, 박지하, 고래야 등 국악계가 주목하는 어지간한 단체들이 모두 거쳐 갔다. 이들이 한 해에도 몇 번씩 뻔질나게 국경을 넘나들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 음악에 대한 관심이 인디, 재즈, 포크 등 다양한 분야로도 옮겨오게 되었다. 가장 활발히 진출하는 월드뮤직에 이어 현대무용 그리고 거리예술이 부상하는 것이 근래 국제교류 추세인데, 월드뮤직을 제외하면 타 장르에서는 아주 없지는 않으나 시장형 교류 대상지에 진출한 전통작품을 찾기 쉽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통코드를 차용하거나, 기본에 깔린 작품이 심심찮게 보인다.




느닷없이 닥친 비대면 시대. 비행기는 운항을 멈췄고, 극장은 문을 꽁꽁 닫아걸었으며,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는 파산했다. 4차 산업이 화두에 오를 때도 크게 실감하지 못했던 플랫폼이 일상을 지배했고, 채 5분도 인내하기 힘든 실시간 스트리밍을 알리는 소식만 켜켜이 쌓이는데, 힙합?장구?철현금?구음과 유명 CF감독이 손을 잡았다. 어차피 관객을 만날 수 없으니 상영을 목적으로 만들기로 한 것. 무대는 온갖 장비로 어수선한데. 연주도, 노래도 끊고, 붙이기를 좀 과장해 골백번. 그 와중에 누가 선수 아니랄까봐 무대 벽에서 반사되는 공명까지 반주로 써먹는구나. 과연 저 소리를 어떻게 담아낼까. 꽤 더디 시간이 가고 드디어 시작, 유튜브에 접속했는데 10여 분이 지루할 틈 없이 후딱 가는 거다. 역시, 매체 어법을 아는 사람이 손을 대니 다르구나. 헌데, 아뿔싸. 음악방송 PD도 붙었어야 했다.


학자들 말처럼 남은 것은 플랫폼 뿐, 혹자는 무대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으므로 과거에도 위기를 넘었듯 무대는 무대대로 계속 살아갈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팬데믹이 이렇게 오래 갈지도, 세상을 이렇게까지 흔들 줄도 몰랐는데 누가 감히 앞을 예단하겠나. 시원스런 답 나올 곳은 어디에도 없고, 예술계에서는 매일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플랫폼 진입을 위해 기술 및 영상과 뭐라도 해보려는 시도다. 전통음악가가 현대무용에 도전하고, 힙합이 전통에 러브콜을 보내기도 한다. 이러한 긍정적 움직임이 위로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아슬아슬하다. 드라마나 영화가 제작비에서 크게 차지하는 비중에도 불구하고 비싼 스타와 작가를 쓰는 이유. 미친 듯 스크린을 장악하는 연기, 의표를 찌르며 무릎 치게 만드는 대본 아니겠나. 시장을 여는 열쇠 말이다. 내일 우리와 만날 관객은 25조를 벌어 18조를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는 넷플릭스 회원들이다. 즉, 고급 취향을 가진 소비자라는 뜻이다. 이러니 먼지 낀 공기 뒤에서 빛을 내는 별이 나와야 플랫폼에도, 무대에도 올릴 수 있지 않겠나. 내공 실어 툭 펼치는 부채 바람, 치맛자락 살짝 들어 놀리는 버선코가 심장을 움켜쥐지 못하면 무대는 열리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에게는 ‘Korea’고 ‘K’고 다 떼고 브랜드 자체로 존중받은 BTS, 기생충, 손홍민, 김연아, 그리고 ‘K’가 만들어낸 브랜드 방역이 있다. 덕분에 국가 위상은 전과 크게 달라졌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예술은 이러한 공신들과 국가 위상에 기대어 덕을 보아야 한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그리움에 사무친 관객들을 얼싸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얹혀간 선수들이 주전을 거치지 못하고 은퇴하는 것을 수없이 보지 않았나. 자! 이제 예술가들은 아날로그로, 기획자들은 디지털로 가자.



글ㅣ김신아 (재)국립극장진흥재단 사무국장 

     (출처 : 한류NOW 2021년 3+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