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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를 장악한 좀비, 공멸을 막는 메신저가 되길

  • [등록일]2017-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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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월한 상상력에 사실을 뛰어넘는 표현으로 두려움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공포영화는 여름철 별미중 하나다. 늑대인간이나 흡혈귀, 온갖 형태의 귀신에서부터 기괴한 형상의 괴물들까지 공포영화의 주역은 다양하지만 최근엔 장르 불문 좀비(zombie)가 대세다. 
  좀비가 대중문화에 등장한 것은 한 세기도 채 되지 않았다. 괴이한 모습은 오컬트(occult) 캐릭터의 하나쯤으로 여겨졌고, 잔혹한 묘사는 B급 취급받는 마이너 인디 장르였다. 그러다 말겠지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스멀스멀 공포가 엄습해 오듯 좀비는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씩 그 모습을 변화시켜가며 대중문화 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2017년 상반기 국내 흥행 2위에 등극한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미이라(The Mummy)>는 좀비를 히어로물로 끌어들였다. 전 세계 1억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 넷플릭스는 드류 베리모어 주연의 <산타클라리타 다이어트(Santa Clarita  Diet, 2017)>를 통해 유쾌한 좀비를 등장시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방송 예정인 드라마 <킹덤(2018년 예정)> <킹덤>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스릴러 사극이다. 현빈, 장동건, 김의성 등의 캐스팅을 확정한 김성훈 감독의 <창궐(2018년 예정)>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액션 블록버스터 좀비영화다. 도대체 왜 모두 좀비일까.


<싼타클라리타 다이어트> 극중에서 인육을 먹고 있는 드류 베리모어 - 사진 : 필자 제공


좀비, 넌 누구니?
  핏기 하나 없는 피부는 청회색이다. 헝클어진 머리, 뜯기고 찢긴 상처엔 검붉은 피의 잔상이 남아있다. 초점 잃은 눈빛에 뒤틀린 팔 다리로 몰려다니는 그들을 사람들은 좀비라 부른다. 서아프리카와 카리브 해, 미국 일부 지역에서 발견되는 민간신앙인 부두교(voodoo cult)와 얽혀있다. ‘죽은 사람의 영혼’ 또는 ‘주술로 인해 움직이는 시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좀비는 ‘좀비영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 1968)>, <시체들의 새벽(Dawn Of The Dead, 1979)>, <시체들의 날(Day Of The Dead, 1985)> 등 시체 3부작을 통해 그 이미지가 형상화되었다.
  원래 좀비는 주술에 의해 생겨나 대부분 독자적 의식이 없는 수동적 존재이다.  시체의 형상을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을 자아내지만 누군가의 조종을 받으며 주어진 일을 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초기 좀비는 무섭지만 나약한 존재이기도 했다.
  영화나 드라마 등 좀비물에 등장한 좀비는 느리게 움직이지만 쉬이 멈추지도 않는다. 피로감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은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본능은 남아있지만 사고능력이 없어 도구를 사용할 줄 모르고, 오로지 물어뜯는다. 좀비의 에너지는 인육 또는 가축 등 고깃덩어리.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좀비에게 물린 인간은 좀비가 되어 다른 인간을 공격한다. 예외 없는 전염성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좀비들의 눈은 흰자위로 덮혀 있어 시력이 점점 약해진다. 대신 청력은 발달하여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살아있으나 시체이고, 시체이지만 움직이는 존재, 그들이 좀비다.


현대 호러영화사의 새 장을 연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한 장면 - 사진 : 필자 제공


좀비는 어떻게 문화 코드가 되었는가
  1960년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제작하던 당시 컬러 영화가 대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흑백영화를 선택했던 조지 로메로 감독은 어설픈 컬러 영화보다 흑백의 대비를 통해 더 잔혹하고 혐오스럽고 소름끼치는 장면들을 만들어내면서 상업화의 길로 치닫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 시스템을 정면으로 비꼬았다.
  어슬렁거리며 몰려다니는 좀비들 및 이들과 사투를 벌이는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냉전시대와 대량 실업, 베트남 전쟁과 마틴 루터 킹 암살 등 당시 미국 현대사를 흔들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은유적으로 보여준 그는 좀비를 기괴한 대상이 아닌 정치 사회적 메신저로 포지셔닝시켰다.
  하지만 주류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인 좀비물은 그저 마니아들의 장르물로 한동안 명맥을 유지하다 새로운 세기가 열리면서 서서히 빛을 보게 되었다.
  소비가 미덕이고, 눈앞의 풍요만을 마음껏 누렸던 20세기 경제는 중산층의 붕괴를 불러왔고, 냉전시대의 종말은 핵전쟁의 공포를 가져왔으며, 환경의 파괴와 과도하게 발달된 의료 기술은 신종 바이러스의 공포를 가져왔다. 정치는 극단화되고, 목적을 상실한 이유 없는 폭력은 채워지지 않는 잔인한 본성을 키워갔다. 0과 1로 구분되는 디지털 시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계는 해킹이라 불리는 디지털 전염으로부터 어느 곳도 안전하지 못했다. 원인도 알지 못한 채 공멸이 가능한 시대, 그것이 바로 좀비의 세상이었다. 좀비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좀비가 될 수 있다는 것, 통제할 수 없는 공포의 세계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파괴의 실행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듯 영화 <28일 후(28 Days later, 2002)>에 등장한 좀비는 느릿한 걸음으로 조용히 엄습해오던 이전의 좀비와 달리 무서운 속도로 쫒아왔다.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 2004)>에서의 좀비는 훨씬 강력하고 초인적인 힘으로 무장하고 감당할 수 없는 극한의 공포감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변종되어가는 인류의 모습으로 문화 전면으로 등장한 21세기 좀비는 이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좀비, 장르를 넘어 확장되다
  좀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새로운 공포의 대상에 관심을 보였다. 기괴하지만 그가 갖고 있을 이야기가 궁금했다. 러브크래프트의 단편소설 「허버트 웨스트 리애니메이터(1922)」는 미치광이 과학자 허버트 웨스트의 시체를 되살리는 실험을 소재로 한 소설로 좀비 소설의 시초라 불리운다. 윌리엄 B 시브룩의 단편 소설집 「마법의 섬(1929)」에 수록된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시체들」과 「투셀의 창백한 신부」는 좀비 관련 소설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지만 좀비 소설의 고전은 역시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1954)」이다. 주술이 아닌 병원균에 의해 생겨나고, 감염에 의해 확산되며, 감염 후에는 이성을 상실한 채 오로지 파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이후 수많은 좀비 콘텐츠의 원형이 되었다. 영화 <월드워 Z(2013)>의 원작이기도 한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 Z」, 스티븐 킹의 「셀」, 스페인의 스티븐 킹으로 평가받는 마넬 로우레이의 「종말일기 Z」 등도 좀비 소설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TV 드라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4월 시즌7을 끝낸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2010-)>는 단연 좀비 드라마의 걸작이다.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워킹 데드>는 좀비로 가득한 세상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사투 속에서 종말을 향해가는 인간 군상을 그려내고 있다. 좀비에게 물리지 않아도 죽은 사람은 모두 좀비가 되는 설정을 통해 공멸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섰다. 어쩌면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살아남기 위해 극단의 이기적 본성을 드러내는 인간일 수도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미국 케이블 방송사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현재 시즌8을 제작중이다. 좀비를 통한 종말과 그 이후의 이야기가 아닌 좀비의 재건과 복귀를 그린 설정이 돋보였던 <인 더 플래쉬(2013)>도 현재 시즌2까지 방송되었다.


만화, 드라마에 이어 게임으로 사랑받고 있는 대표적인 좀비물 <워킹 데드> - 사진 : Rotten tomato


새로운 방식으로 좀비에 접근한 <인 더 플래쉬> - 사진 : 필자 제공


  게임도 좀비를 피해가진 않았다. 좀비를 소재로 한 최초의 게임은 ‘좀비 좀비Zombie Zombie, 1984)’였고, 대중화된 건 ‘바이오 하자드(Bio Hazard, 1996)’부터였다. ‘레프트 포 데드(Left 4 Dead, 2008)’의 세계적인 히트 이후 좀비 게임은 단순하게 전투에 집중하는 ‘레프트 포 데드’ 시리즈나 ‘데드 라이징(Dead Rising)’ 시리즈 뿐만 아니라 서바이벌에 집중한 ‘라스트 오브 어스(Last of us)’, ‘스테이트 오브 디케이(State of Decay)’, ‘데이즈(DayZ)’과 같은 게임 등으로 확대되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두루두루 영역을 확장해온 <워킹데드> 또한 게임으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소설이나 영화, 게임 등 문화 콘텐츠 안에 존재하던 좀비는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좀비 축제로 실체를 드러냈다. 시드니, 파리, 브리스번, 벤쿠버, 시애틀, 프라하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오프라인 좀비 축제는 한여름이나 할로윈에 즈음하여 개최된다. 현실감 넘치는 분장을 하고 거리로 몰려나온 좀비족들은 혹시 이것이 실제 상황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한국도 대구, 부산에 이어 서울에서 열렸던 ‘좀비런’, 한강변에서 개최되는 ‘하트비트 페스티벌’, 대구에서 열린 ‘국제 호러페스티벌’ 등이 매년 열리고 있다.


 지난 6월부터 7월까지 3개 도시에서 열린 ‘2017 좀비런’ 포스터


한국의 좀비 콘텐츠, 어디쯤 왔나
  작년 여름 1,150만 관객을 동원했던 <부산행>은 속도감 있는 연출력과 압도적인 미장센,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한국 최초의 좀비형 재난 블록버스터였다. 강범구 감독의 <괴시>(1980)가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로 기록되어 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이 탑승한 서울발 부산행 열차, 한정된 공간에서 무서운 속도로 공격해오는 좀비와의 사투는 치열했다. 좀비를 표방한 이전의 영화들이 저예산 단편 영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부산행>은 한국형 대형 좀비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였다.
  드라마에도 좀비는 있었다. MBC의 2부작 특집드라마 <나는 살아있다(2011)>는 기존의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좀비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좀비에 대한 인간적 고뇌를 담아낸 한국 최초의 좀비 드라마였다. 폭력성과 잔인함으로 청소년 시청불가인 19금 판정을 받기도 했던 <나는 살아있다>는 좀비를 안방극장으로 불러들여 새로운 공포를 만들어냈다.


한국 최초의 좀비형 재난 블록버스터 <부산행> - 사진 : 필자 제공


 방영 당시 한국의 공중파 드라마의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은 <나는 살아있다>에서 열연한 정선경 - 사진 : 필자 제공


  하지만 아직도 한국에서 좀비물은 주류에 들지 못한다. 한국만큼 다양한 좀비가 공존하는 곳도 없지만 어쩌며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좀비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마트 기기에 중독된 디지털 좀비, 목표를 상실한 회사원 좀비,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백수 좀비, 고시에만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고시원 좀비, 욕망의 전차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정치 좀비, 가진 자의 끝을 보여주는 갑질 좀비 등 수많은 현실 속 좀비가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그 실체를 정면으로 드러낼 수 있다면 공멸을 향해가는 좀비는 정복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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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명 : 공희정
  • 약력 :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