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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한국 사회의 거울

  • [등록일]2016-06-24
  • [조회] 1632

사실상의 독점이다. 지금 한국 대중음악계 얘기다. 방송부터 포털 사이트까지, 음악 관련 뉴스에 아이돌이 빠지면 얘기가 안된다. 언제나 다양성 부족이 문제가 되어왔던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도 이만큼 아이돌이 사실상 시장을 독점했던 때는 일찍이 없었다. 아이돌의 주된 활동 무대인 TV에서 아이돌 그룹이 총파업이라도 한다면, 예능국이 마비될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이돌은 음악 프로그램뿐 아니라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춘다. 아니, 얼굴을 비추는 정도가 아니라 주력 콘텐츠다. 그러니 지금 한국 대중음악 시장을 아이돌 공화국을 넘어 아이돌 제국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프로듀서 101>과 <소년24>는 남아도는 아이돌 멤버들을 ‘땡처리’하는 프로그램처럼 보일 정도다.


한국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아이돌은 90년대 중반 탄생했다. 최초의 현대적 아이돌이 바로 H.O.T.였다. 그 이전에 아이돌이라 부를 수 있던 댄스 그룹들이 대부분 20대 초중반의 나이에 멤버들의 개성이 뚜렷하지 않았던 반면, H.O.T.는 10대 소녀들의 원초적 판타지 그 자체를 공략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멤버들이 주축이 되고 멤버들의 캐릭터가 분명했으며 노래 뿐만 아니라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10대 소녀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H.O.T.가 제공했다. H.O.T.의 성공 이후 동일한 시스템의 아이돌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며 가요계의 판도는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대중음악 시스템의 주도권이 작곡가와 가수에서 기획사로 넘어가고 만 것이다. 이전의 아이돌은 그룹 내에서 작사 작곡을 담당하는 멤버가 있거나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노이즈 등) 혹은 백댄서 경력 등을 통해 이미 가요계에 어느 정도 기반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H.O.T. 이후의 아이돌은 그렇지 않았다. 기획사가 주체가 되어 미리 팀의 컨셉이 정해지고 이에 맞춰 멤버를 선발한 후 트레이닝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보컬, 댄스, 의상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개입했다. 물론 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최종 역할은 기획사에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아이돌 제조의 공식이 됐다.


대중 음악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예술로서의 음악과 상품으로서의 음악이 그거다. 내면의 영감을 음악으로 풀어내며 자신의 작품을 남기는 과정이 전자고, 그 음악이 세상에 나와 공연이나 음원, 음반 등의 여러 형태를 통해 팔리는 과정이 후자다. 예술로서의 음악은 뮤지션이 주체가 되어 음악을 만들고 이를 부르거나 연주하고 대중은 그 아티스트에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 평단은 그의 작품세계에 주목해서 이를 언어로 풀어낸다. 하지만 아이돌에는 이런 개념과 과정이 성립하지 않는다. 아이돌은 기획사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획사에서는 뮤지션을 기획하지 않는다.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논리에 의해 시장의 요구와 트렌드를 파악해서 이에 맞는 아이돌을 '기획'한다. 이는 일반적인 회사에서 물건을 생산하고 파는 과정과 같다. 아이돌이 데뷔할 때 SM이나 YG, JYP같은 대형 기획사에서 내놓았다는 사실이 중요한건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제품을 소비할 때 제품 그 자체보다는 브랜드를 본다. 마찬가지다. 똑같은 아이돌이라도 기획사가 어디냐에 따라 사전 주목도와 성공 가능성이 달라진다. 그래서 예술로서의 대중음악에서 주체가 뮤지션이라면, 산업으로서의 대중음악에서 생산의 주체는 기획사다.


여기서 산업의 속성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산업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효율성과 생산성이다. 이 가치의 달성을 위해 분업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산업혁명시기의 일이다. 단순하고 동일한 작업의 반복을 통해 개별 노동자의 기교가 향상되고 한 노동자가 전체 작업을 총괄하는 경우보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효율성과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개별 노동자는 컨베이어 벨트의 정해진 위치에 서서 자기가 맡은 역할만을 할 뿐이다. 하지만 분업은 각각의 노동자에게 생산물 전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생산의 일부만이 그에게 속할 뿐이다. 그렇게 생산된 결과물은 이 시스템을 구축하고 노동자를 고용한 자본에 귀속된다. 또한 노동자는 생산물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 설명한 내용이다.

이 논리는 아이돌 시스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돌은 기본적으로 대량생산/대량소비를 목적으로 삼는다. 아이돌에 요구되는 건 오래 두고 남는 명곡이 아니다. 발매되자 마자 차트 1위를 점령하며 빠른 인기 몰이를 한 후 빨리 잊혀지는 노래들이다. 최단 기간에 최대의 이익을 낸 후, 새로운 노래로 같은 코스를 밟아야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분업이다.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작곡가와 편곡자, 안무가와 코디네이터 등이 기획사가 마련해둔 컨베이어 벨트가 서서 각각의 직무에 충실한다. 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움직이는 제품은 아이돌 그룹이다. 무명의 소년소녀 상태로 벨트에 투입된 아이들은 이 벨트의 끝자락에서 아이돌이라는 제품으로 완성된다.


예술로서의 음악이 자신의 음악적 표현으로 시장을 움직인다면, 산업으로서의 음악은 시장의 요구에 맞는 음악을 제공할 때 의미가 있다. 불특정 다수의 욕망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최대한의 만족도를 주기 위해서는 개성보다는 보편성을 강조해야 한다. 즉, 불특정 다수가 요구하는 개성과 취향과 스타일의 공통 분모를 공급하는 거다. 여기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모두 다른 현실 안에 살아가고 있다. 현실에서 필요한 수요 또한 굉장히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상, 즉 판타지란 현실만큼 다양하지 않다. 이상형을 꼽는 질문의 답이 몇 가지 카테고리로 수렴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이돌이란 제품은 대중의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공략하기 쉽고, 또한 성공의 가능성과 보상이 가장 큰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타지란 현실 바깥에 있을 때 성립되는 법. 그래서 아이돌에게는 아티스트로서의 자의식이 애시당초 허락되지 않는다. 개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욕망 또한 마찬가지다. 만들어진 이미지에 충실할 때, 그래서 대중의 판타지를 충족시킬 때 아이돌은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얻는다. 그래서 본래의 성격과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본래의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한다. 물론 그 캐릭터와 이미지는 당초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주연을 맡았으되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못하고 감독과 제작자가 원하는 연기만을 해야하는 배우와 같다. 가수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덕목인 가창력 또한 아이돌에게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다. 발달된 레코딩 기술은 부족한 가창력을 충분히 매꿔주고도 남는다. 음정과 박자, 모두 편집 기술에 의해 다듬어진다.


그저 목소리라는 원료를 제공하면 레코딩 기술이라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 꽤 듣기좋은 음악이라는, 제품으로 만들어진다. 게다가 지금의 아이돌 그룹에서 각각의 멤버들이 노래 부르는 시간은 길어야 30초를 넘지 않는다. 서로 돌아가면서 정해진 부분을 부르는, 마찬가지의 분업 시스템이다. 그들의 노래는 있어도 그의 노래는 좀처럼 없다. 정교한 기획과 시장의 욕망이 맞아 떨어질 아이돌 그룹은 스타가 된다. 정교한 기획이란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즉 시장에서 성공하는 기획을 말한다. 기획이 정교할수록, 즉 시장의 요구에 부합할수록 아이돌 그룹의 멤버는 그래서 더욱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아이돌에 대한 열광이 온전히 그 멤버의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H.O.T.의 멤버였던 강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룹이 해체하고 솔로 활동을 하면 그 때 팬의 5분의 1은 따라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강타 뿐 만 아니다.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를 풍미했던 아이돌 그룹들이 있었다. 신인들이 등장하며 인기의 뒷자락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해체했다. 그 중 이효리를 제외하고 아이돌 그룹에 속해있었을 때와 비슷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누가 있는가.


아이돌 그룹의 해체란 단순히 멤버들이 각자의 길을 걷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룹이 갖고 있던 판타지 또한 끝난다는 거다. 판타지의 종결 후, 각 멤버들이 갖고 있던 캐릭터와 상품성 또한 사라진다.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 그리고 권리는 멤버 개개인이 아닌 기획사에 영원히 종속된 채로. 아니, 그건 애시당초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그들은 그룹 해체 후에야 깨닫는다. 세계의 중심에 자신이 있었던 것 같지만 실상은 유효기간이 정해진 제품으로서 존재했음을,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느끼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팬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아이돌 지망생 또한 마찬가지다. 축적된 경험, 그리고 발달한 미디어 환경으로 인해 그들이 숭배하는 아이돌이 실제가 아닌 판타지에 존재하는 대상이며, 기획사와 아이돌이 얼마나 불공정한 계약을 맺고 있는지를. 그럼에도 아이돌은 10대의 일상을 지배한다. 기획사에서 응모하는 오디션마다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한다. 알면서도 빠지고, 알면서도 되고 싶어한다. 그만큼 10대가 처해있는 현실이 각박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실제 우리 아이들의 삶이란 아이돌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사교육은 입시지옥을 거쳐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도 스펙을 쌓기 위해 치러야 하는 온갖 시험과 경험들로 이어진다.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와 학원에 있어야 하는 현실은 대부분 아이의 자발적 의지에 의하지 않는다. 부모의 강요, 그리고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공포심에서 기인한다. 교육이 아니다. 학벌이다. 스펙이다. 여기에 자유는 없다. 사회의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는 당위만 있을 뿐이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어릴 때부터 철저히 경쟁 사회라는 시스템의 부품으로서 성장할 것을 요구 받는 셈이다. 지금의 행복을 저당잡히면 미래의 행복을 구매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아이들도 알고 있다. 지금 취업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종신고용의 신화가 진작에 사라졌음을. 평범한 삶을 살며 성공할 가능성이 얼마나 희박한지를.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이 이미 과거의 말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돌 스타가 될 가능성 또한 마찬가지로 희박하다. 엄청난 경쟁을 거쳐야하고 가혹한 트레이닝을 거쳐야 한다. 학교는 학교대로 다니고, 트레이닝은 트레이닝대로 받아야 한다. 학원에 다니는 거나, 연습생으로 학교 밖의 삶을 사는 것이나 자유와 주체적 사고를 거세당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돌아오는 보상이 다르다. 대학 진학에 성공하고 취업난도 뚫었을 때의 삶, 데뷔에 성공하고 스타가 되었을 때의 삶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미래를 보장한다.


이는 닫힌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신분제 사회인 영국에서 노동계급 청년들이 인생역전을 하는 방법은 둘 밖에 없다. 축구선수가 되거나 록스타가 되거나.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부모의 직업과 재산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사교육의 질이 다르다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다. 평범한 부모를 만난다면 타고난 재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명문대 진학, 즉 학벌이라는 무기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 또한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돌은 다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부모의 후광이 없어도 자신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스타가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곳이 아이돌의 세계다. 게다가 성적이라는 수치가 아닌,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몸이라는 온전한 자기자신의 소유물이 그 확률에 반영된다. 비록 환타지 속의 삶일지라도 주체로서의 영역이 일반적인 인생보다는 상대적으로 중요하다. 보상 또한 크다. 부당한 계약 조건으로 인해 수익의 상당부분을 기획사가 가져갈지라도 최소한 인기를 얻는다. 적어도 외면으로 보자면 평범한 또래의 아이들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즉 10대에는 대학입시, 20대에는 취업, 30대에는 내집 마련이라는 한국의 통상적 인생 매뉴얼을 벗어날 수 있다는 매력도 있다. 자본주의의 생산 시스템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나, 그 자본주의가 낳은 아이돌 시스템의 판타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나 소외라는 측면에서는 같다. 어차피 정해진 프로그램을 따라 살아야한다면, 그리고 노동의 댓가를 통해 창출되는 이익을 자본이 가장 많이 차지한다면, 좀 더 보상이 큰 쪽으로 움직이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닌가.


그래서 아이들은 아이돌에 열광한다. 아이돌 스타가 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기획사의 오디션에 응모한다.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 남지 않은, 현실 탈출의 길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꿈을 꿀 수 있는 세계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돌이라는 판타지는 결국, 한국 사회를 투영하는 거울이다. 소외의 시스템과 현실이 그 거울에 맺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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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명 : 김작가
  • 약력 : 대중음악평론가